마사 쿨리지는 꾸준히 상업영화를 연출하는 여성 감독이 여전히 소수에 불과하던 1980~1990년대 할리우드에서 에이미 헤컬링, 페니 마셜, 노라 애프론, 수전 사이들먼, 제니 리빙스턴, 질리언 암스트롱, 캐스린 비글로, 미미 리더 등과 함께 선구적인 물결을 만든 감독 중 하나다. 액션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캐스린 비글로와 미미 리더 같은 매우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면 당시 여성 감독 대다수는 중·저예산의 청춘·가족 드라마나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집중되어 있었다. 쿨리지는 한 인터뷰에서 청춘 드라마와 코미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면서도 여성 감독들에게는 다른 장르를 시도할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고 비판적으로 회상한 바 있다. 쿨리지는 2002년 여성 최초로 미국감독조합 회장에 취임하는 등 경력 내내 할리우드의 다양성 성취를 위해 노력해 왔다.

 

한편 쿨리지의 극 장편 데뷔작도 하이틴 로맨스 코미디인 〈밸리 걸 Valley Girl〉(1983)이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제작사 조에트로프(Zoetrope)에 소속되어 있던 쿨리지는 초저예산이었음에도 〈밸리 걸〉을 깜짝 흥행 시켰을 뿐 아니라 데버라 포먼과 함께 당시 신인이었던 니컬러스 케이지를 파격적으로 캐스팅해 청춘 스타로 만들었다. 데뷔작의 성공으로 쿨리지는 바로 이어 발 킬머 주연의 하이틴 SF 코미디 〈21세기 두뇌게임 Real Genius〉(1985)을 연출했고 이후 자타공인 하이틴 장르의 스페셜리스트가 되었다. 쿨리지의 하이틴 코미디는 처음부터 확실히 달랐다. 여성 주인공에 대한 동일시를 보다 잘 이끌어낼 수 있도록 감정선 개발에 상당히 공을 들인다거나, 약간 얼빠진 것 같은 남성 주인공들에게 다정함과 무해함의 캐릭터를 부여한 접근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당시 기존 청춘 드라마의 남성 캐릭터들이 지금이라면 ‘강간문화’라고 비판할 만한 행동과 태도를 스스럼없이 보이면서도 매력적인 인물로 포장되곤 한 사실을 고려하면 쿨리지의 하이틴 코미디는 정말로 특별했다.

 

쿨리지의 페미니즘 관점은 상업영화 경력 이전에 연출한 독립 다큐멘터리에서 선명하게 찾아볼 수 있다. 쿨리지는 뉴욕에서 영화학교를 졸업한 후 독립적으로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미국 독립영화감독조합 창립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 쿨리지는 자신의 오빠와 할머니를 다룬 두 편의 단편 다큐멘터리 〈데이비드: 오프 앤드 온 David: On and Off〉(1972)과 〈구식 여성 Old-Fashioned Woman〉(1974)을 제작한 후 장편 다큐멘터리 〈예쁜 영화는 아니야〉(1975)를 만든다. 두 편의 단편 다큐멘터리는 인물 1인의 인터뷰와 특별한 개입 없이 잘 듣기에 중점을 둔 비교적 단순하고 전통적인 스타일인 반면, 〈예쁜 영화는 아니야〉는 재연과 리허설 장면이 포함된 드라마-다큐로 복잡하고 반영적인 형식을 갖고 있었다.

 

〈예쁜 영화는 아니야〉는 여러 면에서 시대를 앞서간 정치적 페미니스트 다큐멘터리였다. 이 영화는 쿨리지의 반자전적 영화로 그가 기숙학교를 다니던 1962년, 열여섯에 데이트 강간을 당한 경험을 다루고 있다. 쿨리지는 어린 시절에는 ‘강간’으로 언어화하지도 못했던 자신의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재연을 통해 무대화하는 방식을 택한다. 이 영화의 제작 시기가 수전 브라운밀러가 자신의 저서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남성, 여성 그리고 강간의 역사』를 통해 ‘데이트 강간’이라는 용어를 처음 제안한 1975년과 맞물려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쿨리지는 강간을 당했다는 사실의 폭로를 넘어서 성적 무지와 교육, 친밀한 관계에서의 강제성, 2차 가해와 피해자 침묵시키기, 수치심과 분노의 감정 등이 제기하는 복잡한 문제를 맥락화하기 위해 하이틴 문화를 입체적으로 극화하고, 비극적인 개인적 과거를 넘어 정치적이고 교육적인 영화가 될 수 있게 캐스팅에 공을 들인다.

 

영화의 오프닝은 강간이 일어난 아파트에서 리허설을 하는 도중 자신의 과거 경험과 현재 상태를 토로하는 여자 배우의 인터뷰 클로즈업으로 시작된다. 이야기 사이에 숨을 고르며 힘겹게 단어를 찾는 배우는 자기가 연기하고 있는 상황이 개인적 경험과 너무 가까워 혼란스럽다고 말한다. 이 배우의 이름은 미셸 마넨티로 그 역시 강간 생존자이다. 마넨티는 10대의 마사 쿨리지를 연기하는 동시에 자신을 연기하고 있는 중이다. 픽션과 논픽션, 감독과 배우, 카메라 앞과 뒤, 60년대의 과거와 70년대의 현재, 자전적 경험과 집단적 문화, 사적 감정과 구조적 인식의 경계가 무너진다. 기숙학교 시절 쿨리지의 실제 룸메이트였던 (촬영 당시 20대 후반인) 앤 먼스턱이 재연 장면에서 열여섯의 자기 자신(앤)을 연기하면서 영화는 더 복잡해진다. 마사뿐 아니라, 미셸, 앤, 그리고 가해자인 컬리를 연기한 짐 캐링턴까지 자신의 역할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다중 레이어의 동일시와 성찰적 거리를 갖게 된다.

 

한편 영화는 친밀한 사이의 성적 폭력이 얼마나 복잡한 역학 속에서 벌어지는지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기숙사의 소녀들은 한방에 모여 남자와 섹스에 대해 장난스럽게 이야기한다. 잔뜩 들떠서 떠들썩하게 드러내는 성적 호기심은 역설적으로 소녀들의 성적 무지를 드러낸다. 이후 마사는 친구들과 함께 파티에 가기 위해 컬리가 운전하는 차에 타고 뉴욕으로 향한다. 차 안에서의 잡담과 상점에서 코냑과 콜라를 구입해 섞어 마시는 장면은 지나칠 정도로 길게 묘사된다. 로맨틱한 기대감을 갖고 있던 마사는 여기서 컬리의 폭력적 태도와 차별적인 언어에 어색하고 예민해진다. 마사는 명확하게 지적하기 어려운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술을 마신다. 이미 술에 취한 친구들을 부축해 비어 있는 아파트에 왔을 때의 마사의 긴장은 스크린을 뚫고 관객에게 느껴질 정도다. 컬리는 그런 마사를 구슬려 친구들이 없는 다른 방으로 데려간다.

 

강간 장면의 리허설에서 마사, 미셸, 짐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분명히 “싫다”고 말했음에도 강제로 밀어붙이는 컬리(짐)와 문자 그대로 얼어붙은 어린 마사(미셸)의 강간 재연 장면을 카메라 뒤에서 관찰하며 마사는 스물한 살까지 자신이 당한 폭력을 강간으로 인식하지 못했으며 자기가 약탈적인 남자를 끌어들인 건 아닌지 자책하는 시간을 보냈다고 말한다. 미셸은 연기를 하는 동안 자신이 당한 폭력이 반복되는 것 같은 트라우마에도 배우로서 상황을 통제하며 계속 연기를 이어 나가겠다고 한다. 짐은 가해자를 연기하면서 그 인물에 동일시하고 자연스럽게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스스로에게 당황한다. 또한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 또래 소녀와의 성적 경험을 떠올리며 대다수의 소년들이 이 상황을 강간이라고 인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고통스럽게 고백한다.

 

리허설 장면은 마사와 미셸에게는 생존자로서 폭력적 경험에 대한 자기 언어를 찾아가는 성찰적 과정이자 통제권을 되찾아오는 심리적 치료의 순간이 된다. 반면 짐과 다른 남자 배우들에게는 성적 관계에서의 ‘폭력’과 ‘강제성’에 대한 감수성을 교육하는 장이 된다. 더불어 마사와 짐이 강간 장면에서 폭력을 어느 강도까지 연기할 것인지를 두고 의견 대립을 하는 장면, 트라우마를 겪은 미셸이 연기를 계속하는 것이 괜찮은지를 두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제작 현장의 강간 장면 연출을 새삼 성찰하게 만든다. 미투 운동과 성적 장면에서 배우들의 안전한 연기를 돕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할리우드에 도입된 현재에 이 장면은 새롭게 보일 수밖에 없다.

 

하이라이트인 강간 장면의 리허설 이후 영화는 학교에서 컬리가 마사에 대한 루머를 퍼트리고 또래 소녀들이 슬럿 셰이밍(slut shaming, 여성의 품행이 원인을 제공했다며 낙인찍기)을 하며 마사를 따돌리고, 교사는 마사를 학교에서 내쫓아 피해 사건을 덮으려는 상황을 상세히 극화한다. 이 에피소드들은 2차 가해가 일어나는 전형적인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다큐멘터리에서 재연 장면의 삽입 그 자체가 정치적이고 교육적인 성찰을 형성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카메라가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느냐이다. 그런 면에서 (〈예쁜 그림은 아니야〉를 연출하기 전 쿨리지도 봤다고 인정한) 단편 다큐드라마 〈거짓말이 아니야 …No Lies〉(미첼 블록, 1973)와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다이렉트 시네마 스타일을 전유한 〈거짓말이 아니야〉에서 외출 준비를 하던 영화과 학생은 갑작스럽게 여자친구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며 인터뷰를 시도한다. 급작스럽게 카메라 앞에 놓이게 된 여자는 성폭력 경험을 고백한다. 여기서 남학생의 카메라는 그의 경험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냉담한 태도를 취하며 충격을 준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픽션과 논픽션을 섞은 도발적인 형식을 보여줬다는 긍정 평가와 지나치게 관음증적이고 선정적인 카메라가 2차 가해 그 자체일 수 있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은 바 있다. 쿨리지의 카메라는 강간 생존자로서 어떻게 공감과 성찰이 공존하는 카메라가 가능한지를 보여줬다는 측면에서 페미니스트적 ‘거리 두기’의 미학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