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노선 위를 달리는 철도로 시작한다. 철도는 시간과 떼어 놓을 수 없는 매체인데, 철도의 등장이 시각표라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이는 이전과는 다른 감각으로 시간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열차의 창 너머로 풍경은 빠르게 지나가고 창은 점차 괘종시계의 프레임이 된다. 이후 수탉의 울음소리가 이어지고 나이 든 집주인은 해시계의 모형 같은 골동품을 보여 주며 어떻게 시간을 보는지 설명한다.

 

영화에는 이 외에도 시간을 상징하는 여러 요소를, 아니 시간이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것으로만 이루어졌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풍부하게 보여 준다. 먼저 영화의 배경은 텅 빈 고(古)민가가 문제가 될 정도로 많은 고세라는 나라현의 오래된 도시로 젊은 남자는 집주인도 곧 떠날 집을 이어받아 하나씩 고쳐 나간다. 남자는 집을 고쳐 나가며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 사이로 마을의 과거를 찍은 사진들과 에도 시대의 지도와 전통 방식으로 진행되는 인형극 같은 것이 비추어진다.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시간은 집이 건축된 1914년 5월 27일이라는 날짜와 집주인의 아버지가 출정을 갈 때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 정도이다. 마치 시대라거나 공식적인 역사라는 것은 어렴풋하고 오래된 집과 사람들의 기억이 이 집과 이 거리에 흐르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집주인은 자신이 어린아이였을 때 시계를 고치는 일을 하던 할아버지의 작업실이 위층에 있었다고 말하며 할아버지에게 들은 시계와 시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양이의 눈이 둥그렜다가 가늘어졌다가 하는 것 알지? 그건 빛과 시간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야. (······) 바보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그런데 옛날 사무라이들은 가슴팍에 고양이를 안고 다니면서 고양이 눈을 보고 벌써 이 시간이라니! 하며 시간을 봤단다.”

 

손자는 그럼 고양이가 잘 때 시간은 어떻게 보느냐고 묻고 할아버지는 그건 어쩔 수 없지만 겨울에 품에 안으면 따뜻하고 떨어뜨려도 부서지지 않으니 좋은 시계라고 말한다. 손자는 냥냥거리기까지 하니 좋다고 납득한다. 이후 할아버지가 된 집주인과 젊은 남자가 산책을 할 때 담배 가게에 고양이가 있고 고양이 옆에는 시계가 있다. 어린아이가 할아버지가 되고 고양이 시계라는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 주인을 찾지 못한 고민가는 철거되고 그렇게 계절이 바뀌는 식으로 이곳의 시간이 흐른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동네 담배 가게에는 고양이가 살았었군 같은 것, 이제는 철거된 그 집이 이전에는 이런 형태였다는 것을 영화라는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마음인 것 같다. 그 모든 이야기를 듣는 젊은 남자가 할아버지가 되어도 그 이후에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마음. 마치 젊은 남자가 집을 수리하면서 들은 이웃들의 이야기를 모아 잡지를 만드는 일을 시작한 것처럼 영화는 집과 거리를 담는다. 그래서인지 영화에는 시간을 표현하는 요소는 넘치지만 지금이 언제인지 이 사람들의 이야기 속 시간은 어느 때인지 쉽게 파악되지는 않는다. 그 모든 시간들을 담으려는 것이 이 영화이고 주인공 남자가 고치는 집의 시간으로 보았을 때 지금은 짧은 일부일 것이기 때문에. 그러니 새삼스럽게 산책을 권하는 집주인처럼, 그 옛날 할아버지의 손님처럼 언제라고 말하기 힘든 어떤 시공간을 천천히 걷는 느낌으로 영화를 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