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멋대로 해라!! 영웅계획Suit Yourself or Shoot Yourself!! VI: The Hero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KUROSAWA Kiyoshi | Japan | 1996 | 84 min | Fiction | 시네필 전주Cinephile JEONJU
나는 당신의 감상이 궁금하다. 이 작품으로 구로사와 기요시의 〈네 멋대로 해라!!〉 시리즈를 처음 만난 당신 말이다. 그리고 그런 당신이 〈네 멋대로 해라!!〉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을, 나아가 기요시의 다른 영화들을 보면서 어떻게 느낄지 궁금하다. 왜냐하면 〈네 멋대로 해라!! 영웅계획〉(이하 〈영웅계획〉)은 〈네 멋대로 해라!!〉 시리즈의 종결작이자 기요시의 OV1 시기 끝자락을 장식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종결작이란 사실을 제쳐 두더라도, 〈영웅계획〉은 〈네 멋대로 해라!!〉 시리즈에서 가장 이질적인 작품이다.
〈네 멋대로 해라!!〉 시리즈의 재미는 무엇보다도 상쾌한 엉뚱함에서 나온다. 야쿠자물과 버디 액션물의 관습을 애정으로 해체하며 장르적 세계관을 부조리적 코미디로 물들인 기요시의 시도는 언제나 미소와 함께 ‘저게 뭐야!’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상쾌한 엉뚱함을 발산했던 것이다(기요시의 다른 OV 작품 대부분도 마찬가지였지만, 〈네 멋대로 해라!!〉 시리즈에서 이런 성격이 특히 두드러진다). 그런데 〈영웅계획〉은 어떠한가? 물론 곳곳에 헛웃음을 자아내는 장면들이 있지만, 그보다는 정의에 대한 딜레마를 품은 정치 우화의 다소 무거운 공기가 작품을 지배한다. 이와 같은 무드는 이 시리즈는 물론 이후 기요시의 전체 궤적에서도 퍽 드문 편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예외적이고 이질적인 작품을 마주친 당신의 감상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영웅계획〉에서 이런 무거운 공기를 흥미진진하게 파급시키는 것은 주로 ‘상이한 사람들과 길거리를 걷는 것’과 ‘드러나는 것’의 주제들이다. 여기서는 후자에 주목해 보자. 아마미야가 사실 야쿠자가 아니란 비밀은 집 내부를 꼭꼭 감춰야지만 발화될 수 있다. 거꾸로 그가 마을에서 퇴거하는 것은 거실 커튼을 걷고 마을 주민들과 (영화 속에선 처음으로) 마주한 직후에 이뤄진다. 아오야기의 음흉한 계획은 코사쿠가 실수로 던져 버린 가방 속에서 권총이 드러남과 동시에 밝혀진다. 1년간 종적을 감추었던 유지는 (나타났다기보다는) 쭉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어둠 속에서 천연덕스럽게 드러난다. 유지는 1년 전의 계획을 폭로하겠다며 아오야기를 협박한다. 이렇듯 〈영웅계획〉(과 여타 기요시의 영화)에 있어 ‘드러나는 것’은 서사적으로도 시각적으로도 캐릭터의 운명을 일순 결정짓는 실정적인 주제로 활용된다.
하지만 ‘드러나는 것’이 진정 과격하게 활용되는 것은 역시 마지막 10분가량이다. 폐공장을 점거해 경찰에 둘러싸인 영화의 주역들이 공장을 빠져나가는 ― 즉 공장 바깥으로 드러나는 각자의 방식을 차례대로 보여 주는 시퀀스. 여기서 뒤로 갈수록 공장 바깥의 성질은 급격히 변화한다. 낮은 밤으로, 분명했던 경찰과 마을 주민의 존재는 가스와 함께 간접적이고 추상적으로, 그로써 다른 장소들과의 상관은 허공에 놓인 듯이 혼탁하게. 이들이 어디로 향하는 건지, 무엇이 이들과 대적하고 있는 건지, 이들이 있는 공간은 어디인지 모두가 의아해지도록 만드는 연출은 앞의 한 시간여와는 다른 방식으로 〈네 멋대로 해라!!〉 시리즈의 상쾌한 엉뚱함을 근간부터 뒤흔든다.
혹자는 이를 두고 시리즈의 마무리를 짓기 위한 단절의 제스처라고 하겠지만, 그 대신 이 시리즈의 부조리적 코미디의 성격에 대한 자기 반영이라고 보면 어떨까? 완전히 왜곡된 세계를 유쾌한 분위기로 쭉 가로지르는 것은 낙천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여러모로 몹시 기괴하고 가혹한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기요시는 시리즈 전반에서 억압되었던 이 가혹함을 마지막에 드러내고자 한 게 아닐까? 다만 낙천성을 덜고 진지한 표정과 말을 섞는 쉬운 방식 대신, 그 낙천성이 펼쳐질 수 있는 영화적 공간이란 실은 허공에 놓인 추상적 공간임을 철저히 영화 내적으로 소화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공장 바깥을 향한 유지와 코사쿠의 질주/롱 테이크는 바로 이를 위한 처절한 승부수일 테다. 이후 기요시의 시그니처로 자리 잡는, 극히 비현실적인 공간 상관성의 연출을 떠올려 보면 이 승부수는 기요시 자신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 Original Video. 비디오 상영을 기본값으로 제작 및 유통되는 저예산 장르 영화를 일컫는 일본식 표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