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흔들리는 순간,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나 역시 갑작스럽게 아파서 일상이 통째로 진동하는 그러한 순간이 찾아오면, 아마 우리가 발 딛고 있던 땅도 조금씩 함께 무너져 내릴 것이다. 어디에 무게 추를 두어야 할지, 어디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할지 알 수 없는 시간이 지나가며 몸과 마음은 더욱 커다란 붕괴로 향해 갈 수도 있다. 그러한 시간 속에서 어떻게 하면 다시 세상 속으로 발을 내디딜 수 있을까? 어떻게 다시 지면을 찾고 몸을 바로 세우며 걸음을 뗄 수 있을까? 〈마사유메〉는 그 답을 찾는 과정을 기록한다. 영화를 만든 요시가이 나오는 몸이 아파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일,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일 등을 간략히 서술하고 일상의 기록을 모아 화면을 채운다. 수없이 마주쳤지만 그렇다고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할 수 없는 일상적 풍경을 간직한 사진들 사이로, 그가 절에서 보낸 수행의 시간이 스며든다.

 

보통 ‘선종’, ‘선 수행’ 등을 이르는 ‘Zen’의 규칙과 가르침에 따라, 절에 모인 수행자들은 쌀 한 톨도 소중히 여기며 식사하고, 불경을 읽고 명상을 하며, 다 같이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한다. 외부의 자극을 배제하고 내면의 고요에 집중하는 이러한 과정은 마치 몸과 마음의 ‘영점’을 맞추는 작업처럼 보인다. 영화는 음식을 만들고 먹으며, 낙엽을 쓸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찬찬히 비추면서 그 속도를 온전히 담아 보려 한다. 그 사이에 스님의 말씀과 수행자들의 목소리를 배치해 선의 가르침을 좀 더 또렷하게 전하는데, 그건 행복도 불행도 모두 마음이 만들어 내는 환상임을 깨닫는 것, 불교적 구원이란 즐거운 꿈을 찾고 좇는 대신 꿈에서 깨어나는 것임을 아는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을 마주하고 깊은 어둠을 지나던 중 인간의 삶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스님의 말을 듣고 이유 없이 웃음이 터졌다는 감독의 말이나, 끝나지 않는 고통을 드디어 평온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되리라 기대한다는 어느 수행자의 목소리는 그러한 깨달음을 내면에서 흡수한 이들의 진솔한 반응을 보여 준다.

 

‘마사유메’는 현실과 꼭 맞는 꿈, 사실에 들어맞는 꿈을 이르는 단어다. 이러한 표현은 현실과 꿈 사이에서 번역의 과정을 지우는 작업을 떠올려 보게 한다. 불행과 죽음을 포함한 모든 일은 바로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일어날 일이기에 발생하는 것이고 이야기와 꿈이라는 장치에서 벗어나 그러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불가의 가르침은 자칫 허무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있지만, 〈마사유메〉는 그것을 존재에 대한 온전한 긍정과 깊은 이해로 받아들인다. 맨몸으로 무대에 올라 몸의 물질성을 탐색하는 퍼포먼스, 뼈와 살과 피를 떠올리게 하는 사물들로 채워진 실험적인 화면 같은 것들이 수행의 과정을 살갗에 닿을 듯 생생하게 형상화한다. 그 과정의 종착역에서 감독은 어머니를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을 다시 만난다. 이 만남은 이전과 같지 않다. 우연의 산물인 눈송이의 착지조차 필연으로 받아들이는 불교의 깨달음과 더불어, 어떤 수식어도 없이 만남과 이별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사유메〉는 종교적 깨달음을 현실 속에서 이해하고 일상에 정착시키는 과정을 보여 주는 하나의 독창적인 예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