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카르노영화제가 끝나고 며칠 뒤 스위스 매체 ‘Keystone SDA’가 영화제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지오나 나자로 위원장과 진행한 인터뷰가 소셜 미디어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다음을 비롯한 여러 이야기를 했다. “문제는 영화 애호가가 보기에 로카르노의 영향력이 줄고 있다는 점이 아니다. 배급사가 [다른 종류의 영화에] 별 호기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나자로의 이 발언은 올해 영화제 라인업의 단점(문제점으로 거론되는 것들)이 조직위까지 전해졌음을 감지하게 한다.
배급사를 탓하는 것은 이상해 보인다. 배급사로서는 시장에 판매할 영화가 필요하고 로카르노의 전통적인 성격에 부합하는, 대중을 타겟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작품을 배급사가 적극적으로 밀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해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시장은 영화제에 난제가 되곤 한다. 시장 관계자들은 ‘시장성 있는’ 영화에만 관심을 두는 반면 영화제는 반드시 그 영역 안에서 운영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시장과 영화제의 관계는 복잡하며 이는 여기에서 깊이 파고들기에는 너무 방대한 주제다.
이보다 덜 공식적이고 가십에 가까운 사건이 하나 있었다. 한 로카르노 프로그래머가 ‘모이레MOIRÉE’라는 비평가 그룹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들의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곧장 “Critics’ ratings from film festivals around the world(전 세계 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에 대한 비평가 평점)”이라는 모토가 보인다. 영화감독 블레이크 윌리엄스가 이끄는 이 그룹은 자신들이 참석하는 영화제에서 팟캐스트를 제작하고 작품 평점을 그리드 형태로 관리한다. 해당 프로그래머가 불만을 품은 까닭은 로카르노에서 처음 공개된 영화들이 낮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는 비평가들이 영화를 다소 불공정하게 평가한 것이다.
비평가와 프로그래머의 역할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거나 심지어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지만 두 직업 사이에는 유사점보다 차이점이 훨씬 많다. 비평가는 재정적으로나 조직적으로나 독립되어 있지만—특히 신문이나 잡지 같은 주요 언론 매체가 사라져 가는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프로그래머는 체계화된 위계 안에서 일한다. 다시 말해 프로그래머에게는 상사가 있으며 영화제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그들 자신 혹은 그들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영화에 대한 생각에 따라 결정되지는 않는다. 비평가는 자신의 진실성에 충실하면 되지만 프로그래머는 다른 요소들과도 씨름해야 한다. 이를테면 비전이나 취향이 다르기도 한 동료와 상사, 영화제가 더 ‘대중적’이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요구하는 정치인, 영화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이들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은 영화제 위원회, 예산의 제약, 같은 작품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는 라이벌 영화제, 그리고 언제나 과거가 나았다고 주장하는 비평가 등과 말이다.
문제는 아마도 영화제가 시대의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면서 사명을 이어 온 반면 오늘날 비평가의 역할은 매우 특수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비평이 사라졌다거나 사라지기 직전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비평은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수백만 개의 의견과 텍스트로 파편화되어 이제 좋은 글과 나쁜 글, 진지한 글쓰기와 단순한 홍보를 구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현대 미디어가 가하는 조회 수 늘리기에 대한 압박은 많은 비평가로 하여금 같은 주제와 작품을 다루게 하고, 그 결과 이미 높은 인지도를 확보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에 관심이 집중되며 관련 담론이 증식한다. 본질적으로 비평가는 같은 영화에 관해 몇 번이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로카르노는 월드 프리미어를 중심으로 프로그래밍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영화제와 마찬가지로 여러 난관에 직면해 있다. 첫째는 칸이나 그보다는 덜한 베니스와 같은 여타 영화제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해당 영화제들은 모든 것을 원하는 듯하며 막강한 재정력으로 대체로 무엇이든 손에 넣는다. 기성 유명 감독이 자국 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하기 꺼린다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예를 들어 이창동이나 루크레시아 마르텔이 각각 한국과 아르헨티나 영화제에서 신작 프리미어 상영을 하려 하지는 않을 터다). 신진 감독 역시 가능한 한 큰 영화제를 목표로 삼음으로써 경력의 미래를 확보하고 싶어 한다. 한 로카르노 프로그래머가 말해 주기를, 로카르노에 공식 초청을 받은 영화 중 꽤 많은 수가 그 초청을 발판 삼아 베니스에 압력을 넣어서 적어도 감독이 보기에는 ‘승격’에 해당하는 제안을 받아 내려 한다고 한다. 우리는 다름 아니라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여섯 개 영화제 중 하나인 로카르노영화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중이다. 이런 현상은 대부분의 외부인이 깨닫지 못하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앞서 언급했듯 적어도 대다수의 영화제는 ‘원하는’ 영화가 아니라 ‘구할 수 있는’ 영화를 선보인다.
더욱이 영화계와 그 산업이 끊임없이 위기를 겪고 있음에도 오늘날에는 역사상 어느 때보다 많은 영화가 제작된다. 그 세계는 방대하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다(프로그래머로서의 내 경험을 통해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수천수만의 영화가 프리미어를 선보일 장소를 찾는 와중에 각각의 완성도와 고유한 특성은 종종 그 방대한 수량 안에서 길을 잃고 만다.
한때 영화제가 누렸던 전성기—가령 전주국제영화제가 설립되었을 무렵인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는 이제 과거가 되었다. 당시 영화제들은 하나의 정전을 확립했고 그것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정전은 실질적으로 어떤 갱신도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시기에 이름을 알린 인물들에 관해 이야기하며 그간 목록에 합류한 다른 이름은 그리 많지 않다. 한국에서는 홍상수, 이창동, 박찬욱 같은 인물들이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국제적인 상을 받고 세계 영화계에서 핵심적인 참조점으로 기능한다. 아르헨티나에서도 루크레시아 마르텔, 리산드로 알론소, 마리아노 지나스와 같은 감독들을 중심으로 비슷한 상황이 존재한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운 이름들이 등장했지만 그 수는 많지 않으며 그처럼 강력한 작품군을 구축한 경우도 드물다. 나와 가까이에 있는 두 나라를 사례로 들었는데, 그 밖에도 그때부터 활발한 활동을 이어 온 다른 이들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페드로 코스타, 라브 디아스, 차이밍량, 제임스 베닝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변화의 시대에 비평가와 프로그래머가 각각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규정하는 것은 복잡한 문제다. 하지만 그들이 분명히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가시성이 부족한 작품에 더 나은 가시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대형 스튜디오가 블록버스터 제작과 마케팅에 막대한 자원을 쏟아붓는 시대에 〈호프〉(2026) 같은 영화에 관해, 그것이 이미 수없이 다뤄진 뒤에도 또다시 글을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들의 역할은 상업 극장에서든 영화제 라인업에서든 간과되기 쉬운 작품을 부각하는 것이다. 프로그래머는 영화제 작품 선정이라는 방식으로, 비평가는 글쓰기를 통해 그렇게 해야 한다. 아래와 같은 예를 들어 볼 수 있겠다.
〈이행Übergang〉(2026)은 독일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토마스 하이제의 마지막 프로젝트로, 그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협력자들인 페터 바델과 크리스 라이트가 작품을 완성했다. 로카르노에서 처음 공개된 이 다큐멘터리는 하이제의 삶을 다루며 그가 분단된 독일에서 보낸 젊은 시절, 그리고 경찰의 감시가 시민을 억압하던 그 암울한 시기에 영화가 일종의 피난처로서 떠오른 과정을 따라간다. 그의 이야기는 베를린 장벽 붕괴를 비롯해 독일을 휩쓴 여러 변화와 맞물려 있는 동시에 그 자신의 내밀하고 개인적인 변화와도 얽혀 있다.
감독의 삶과 작업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 이 영화는, 엄격하고 까다로우며 형식과 담론을 아울러 언제나 정치적이었던 그의 필모그래피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한다. 한편 감독을 잘 아는 관객에게 이것은 영화를 표현 수단으로 택했던 몇 안 되는 지식인 중 한 사람에게 보내는 감동적인 작별 편지로 기능한다. 예술 작품은 대개 교훈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지만 때로는 어떤 교훈을 남기기도 한다. 영화 중반부에 우리는 당시 하이제가 진행하던 수업을 듣고 싶어 했지만 정원 제한에 가로막혀 그러지 못한 어느 청년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하이제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쓴다.
“미안하지만 당신을 도와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 바로 시작하는 겁니다. 처음부터 시작하고 부디 예술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마세요. 시간이 지나면 예술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겁니다. 당장은 그에 대해 걱정하지 마세요. 독립적으로 행동하세요.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관계망을 뒤로하고 떠나세요.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작업을 시작하세요. 이때 스스로에게 물으세요. 이 관심은 정확히 무엇이지? 또 이 관심이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자문하세요. 자신을 들여다보세요. 매일 만들어지는 끝없는 이미지의 흐름에 당신의 이미지가 더해져야 할 이유는 무엇이죠? 이 질문을 출발점으로 삼으세요. 혼자 작업하세요. 대상을 이미지로 변환하기 전에 충분히 살펴보세요. 익숙하지 않은 장소를 촬영하세요. 집을 나설 땐 꼭 노트 한 권을 챙기세요. 보고 듣는 것을 적으세요. 관료주의의 언어를. 거리와 술집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을. 다투거나 사랑할 때 하는 말을. 버는 돈은 한 푼도 빠짐없이 무언가를 배우는 데 쓰세요. 재정적인 안정을 절대로 기대하지 마세요. 재정적으로 안정되는 일은 없을 테니 그것으로 만족하세요. 공장에서든 어디서든 일자리를 찾으세요. 교대가 끝난 뒤 지친 노동자를 담으세요. 그들의 상사와 고객도 촬영하세요. 밤에 도시를 걸어다니세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세요. 인내심을 가지세요.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세요. 그들 삶에 관해 질문하세요. 계속 움직이세요. 휴가를 갈 때는 누구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곳으로 떠나세요. (······) 어쩌면 이 문장들은 내가 가르치는 수업을 설명해 주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으로서는 더 해줄 조언이 없습니다. 이런 일들을 1년간 계속하십시오. 2년이면 더 좋고요. 그리고 중요한 무언가를 말하고 싶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다시 수업에 지원하세요. 하나의 경험. 직접 겪은 경험. 세계에 대한 비전을 갖춘 뒤에 말이죠. 행운을 빕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편지에서 하이제는 미래에 영화감독이 될지도 모르는 한 사람에게 말을 건네고 조언한다. 그런데 그의 말은 비평가와 프로그래머에게도, 그리고 왜 안 되겠는가, 어쩌면 관객에게도 어떤 교훈을 전하는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