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영화제를 찾을까?
소셜 미디어에서 전주국제영화제 티켓 사진과 함께 지난 9년간 연속 방문했다는 글을 봤다. 티켓에 인쇄된 영화 제목들을 보니 국내 개봉이 되지 않은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역사의 풍파에도 변하지 않는 국제영화제의 역할이 있다면 각 국가에서 개봉이 힘든 영화를 소개하는 것이다. 영화제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영화들이 그 존재를 드러내도록 하는 것, 그것이 국제영화제의 임무다. 당연한 것 아니냐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요즘 영화제의 경향은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최근 전주국제영화제의 사례를 보면, 특이하거나 실험적이라 수입 배급사가 반신반의하던 작품이 영화제 기간에 호응을 얻어 수입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중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바는 수입사가 관객이 들 만한 유명 영화를 선수입한 후 영화제에서 쇼케이스성으로 홍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화제 관객의 반응 덕에 움직이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좋은 프로그램에 반응하는 관객과 관객이 추동한 수입 배급은 영화제가 창출할 수 있는 시장의 이상적인 역할이자 순기능으로 보인다. 이런 예시가 있음에도 왜 영화제들은 수입사가 이미 선택한 영화를 가져오는 것일까? 안전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픈 욕구 때문이다.
프로그래머에게는 호기심과 탐구 정신이 충만한 관객을 위해 원석을 찾고자 노력하기보다 수상작과 수입작, 배급사가 제시하는 영화 목록 내에서 상영작을 찾는 편이 훨씬 쉽고 안전하다. 심지어 관객은 후자에 더 환호한다. 무명 감독의 이름을 내밀면 모르기 때문에 반응하지 않고, 영화를 보기도 전에 좋은 프로그램이 없다고 판단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감독이나 실험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은 크게 표시가 나지 않으니 관계자들은 관객이 반응하는 영화를 틀어야 한다고 판단한다. 그러니 영화제 프로그램이 점점 더 비슷한 영화, 시장에서 반응할 영화로 채워지는 데는 프로그래머와 관객 양측의 책임이 있다. 다행히 지난 몇 년, 전주의 대안적 사례는 영화 생태계가 순리에 따라 움직이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 줬다.
영화제와 필름 마켓은 상생할 수 있나?
최근 한국 영화계는 산업을 살리는 데 집중한다. 여러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명확히 알 수 없는 변화의 시기를 지나며 다양한 대책을 내놓지만 정답은 알 수 없다. 정부 기관은 영화제가 산업을 지원하는 ‘마켓’을 운영하면 예산을 더 받을 수 있다고 유혹한다. 문제는 마켓의 경우 수익성을 중심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기에, 세일즈사의 선택을 받은 영화 위주로 구성되어 소외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소수작 중심의 마켓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영화제는 서로 충돌하게 된다. 그러나 ‘마켓’이라는 단어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분명한 현실을 볼 수 있다. 많이들 저예산 영화가 산업에 진입하기 전의 연습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 독립·예술 영화와 상업 영화가 작동하는 시장은 분리되어 있다. 거대 기업 주도의 상업적 시장 외에 다른 시장은 없다고 보는 시각이야말로 더 비현실적이고 모든 것을 일원화한다. 지난 8년간 국제영화제를 다니며 배운 것은, 독립·예술 영화의 경우 영화제 자체가 배급의 핵심 장소이고 저마다 추구하는 방향과 색깔에 따라 뻗어 나갈 수 있는 영역이 다르다는 것이다. 단편, 장르, 아트하우스 등 각 분야에 맞는 시장이 따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진정으로 건강한 시장이란 백만 명이 보는 영화를 수용하면서 백 명이 보는 영화 또한 꾸준히 소개하는 상태일 것이다. 영화제, 최소한 전주국제영화제가 개최되는 열흘간은 두 세계가 조화롭게 존재할 수 있다. 이러한 시장의 지속성을 위해 프로그래머들의 역할과 책임이 요구된다.
글로벌 플랫폼이 등장하고 온라인 비즈니스가 가능해진 오늘날, 실제 필름 마켓의 역할은 수출입 자체에서 경향 파악(교육)과 인적 네트워크 형성으로 이미 넘어가 ‘콘퍼런스’ 시대가 도래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오랜 고정관념 때문에 마켓을 버리지 못하고 산업이 살면 영화에 관련된 모든 것이 살아날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영화 산업과 영화제는 공생할 수 있지만 분리해 생각해야 한다. 산업 안에서 영화는 투자를 받아 제작되므로 수익이 평가의 척도가 된다. 그러나 영화제는 셈이 달라야 한다. 영화제는 대부분 정부 공금으로 운영되며 산업의 대안으로서 사회적 가치를 수행할 의무가 있다. 그렇다면 영화제의 공익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산업에서는 국민의 4분의 1이 특정 영화를 보면 이를 유익한 사례로 여긴다. 이는 산업 자체를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그 한 편 외의 다른 영화들은 보이지 않게 가린다. 공공의 영역에서는 백 편, 천 편의 영화가 보여야 한다. 즉, 산업이 단 한 명의 성공 신화를 써갈 때 영화제는 빛을 넓게 퍼트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자본의 영역 바깥에 다른 삶의 방식과 가치가 있음을 보여 주는 다양한 영화가 관객을 만나게 하는 것이 영화제 프로그래머의 역할이다.
한편 예술·독립 영화를 지지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주의할 점이 있다. 최근 국외 영화제를 다녀 보니 흔히 예술·독립 영화라 통칭하는 저예산 영화에도 어떤 경향이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북미에서는 선댄스영화제나 오스카상을 탄 독립 영화 몇 편을 섞은 듯한 데뷔작이 복제품처럼 쏟아진다. 유럽에서는 대개 비전문 배우를 쓰고, 실제 공간에서 촬영하고, 허구와 실제의 경계를 섞고, 장르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기도 한다. 거장이라 불리는 페드로 코스타, 다르덴 형제, 리산드로 알론소, 션 베이커 등이 선구적으로 해온 작업이 30여 년이 지나 이제는 유행이 됐다. 이들의 후계자라 자처하는 감독 중 자신만의 방식으로 진정한 탈형식을 구현하는 이도 있지만, 유명 감독의 성공 사례를 분석해 몇 가지 장치만 있으면 예술이 된다고 착각하는 듯한 경우도 많다. 자신만의 비전을 가지고 어떤 세계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요소를 고민하기보다는 그럴듯한 주제와 의도, 구성 요인을 선취해 영화를 완성하는 본말전도의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때로는 영화의 소재와 의도가 영화의 결과인 것처럼 여겨지는데, 문제는 방법이다. 인간이 이야기를 발명한 이래 새로움이 도래한 것은 몇 없는 사례다. 심지어 AI 시대에 차별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왜’ 다루는가보다 ‘어떻게’ 다룰 것인지가 중요하다. 그럴듯한 말의 전달이 아니라 어떻게 느끼게 해줄 것인지가 관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프로그래머의 덕목은 수많은 복제품 속에서 진정한 영화를 골라내는 눈을 갖추는 것이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밍의 배경
이러한 맥락에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밍은 ‘어떻게’라는 방법론에 집중했다. 주류든 비주류든 비슷한 영화를 투자, 제작, 배급하는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늘 하던 대로 하는 선례 복종이 아니라 판 자체를 깨부수는 생각의 변화가 필요하다. 특히 현재 한국 영화계에는 파괴의 정신이 필요하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눈 밝은 관객이라면 이미 느꼈겠지만 올해 프로그램 전반에서 영화의 전위성을 발견할 수 있다. 특별전(‘뉴욕 언더그라운드’, ‘조금 낯선 안성기를 만나다’)뿐 아니라, ‘시네필 전주’ 섹션 내 대부분의 영화는 혁신성을 내포한다. ‘홍콩귀환: 시네마 + 아방가르드’ 또한 영화 산업 밖에서 만들어진 영화, 체제 전복을 꿈꾼 영화, 형식적 파격성을 시도한 영화를 선보인다. 과거의 혁신 정신이 현재 한국 영화 속 잠재된 에너지를 깨우는 기회가 되길 바라며, 단순히 훌륭한 복원 영화가 아니라 당대 변혁을 불러일으킨 영화를 큐레이팅했다.
올해 신설된 ‘가능한 영화’ 섹션은 대안적인 제작 방식을 지지하려는 결정이다. 지난해 특별전에서 소개한 아이디어였고 동명의 책을 출간한 바 있다. 놀라운 점은 책이 출간 6~7개월 만에 동나고 관계자들이 관련 논의와 확장된 기획을 내놓으며 반응했다는 것이다. 영화를 논할 때 우리는 늘 ‘이야기’가 전부인 듯 말하지만 실제로는 ‘시청각 재료의 구성’과 ‘제작 방식의 선택’이 영화의 정신을 만드는 중핵이라는 견해에 많은 이들이 공감해 준 것이다. 이 섹션은 박스 오피스 순위와 수익, 명성에만 관심이 있으며 그 야망을 결코 멈추지 않는 시스템을 직면하면서 예술적 창의성으로 다른 방식을 취하는 차별된 영화를 소개한다. ‘가능한 영화’의 창작자들은 혼돈의 시대에도 삶의 본질과 영화의 가치를 연결하며 희망을 잃지 않는, 달리 말해 영화를 가능하게 하는 이들이다. 이를테면 전주국제영화제가 추구하는 정신을 잘 구현한 인물, 스페인의 감독이자 제작자 페라 포르타베야와 벨라 타르의 영화를 특별 상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프로그래머로서의 야망
프로그래머마다 목표가 다르겠지만, 나로서는 문화가 할 수 있는 일, 영화가 예술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관객에게 전하고자 한다. 의식주나 돈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인간 영혼의 영역에 기여하는 것이다. 모나고 부족한 자신을 포용하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영화부터 극도로 높은 수준의 예술로서의 영화까지 다채롭게 발굴하고픈 욕심도 있다.
오래전 〈바베트의 만찬〉(1987)을 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규율은 할 수 없는 방식으로 문화적 풍요가 주는 경험, 인간의 부족함과 불순함을 받아들이면서 영혼의 즐거움을 한 뼘 늘일 수도 있겠다고 상상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바베트의 만찬’은 인간이 최소한의 여건에서 생존할 수는 있으나 행복을 위해서는 문화의 풍부함(영화에서는 화려한 프랑스 음식으로 대변되는 지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영화 〈24시간 파티하는 사람들〉(2002)에는 1976년 록 밴드 섹스 피스톨스가 라이브 공연을 하는데 극소수의 관객만이 보러 온 사연이 나온다. 그러나 당시 관객으로 왔던 대부분이 이를테면 조이 디비전과 같은 밴드를 결성해 훗날 음악계를 흔든 인물이 되었다. 예술에서 진정한 성공이란 영원성과 독창성을 내포한 창작물을 만드는 것일 테다. 프로그래머로서의 가장 큰 야망이라면 시대를 초월해 기억되는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다. 다른 창작자에게 영감을 주고 예술의 확장에 기여해 독보적 자리를 구축하는 영화를 발굴할 수 있다는 것은 영광일 테다.
마지막으로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크든 작든) ‘현상’을 영화라는 형식으로 보여 주고자 한다. 최근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소식을 접하며 전 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미 ‘봤다는 착각’을 한다. 어쩌면 실제 삶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간극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현재를 사는 프로그래머로서 할 일은 시간을 들여 ‘지금의 현상’을 기록하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시선’을 제시하는 영화를 찾는 것이다. 다행히도 올해 전주에는 그런 영화들이 초청되었다. 맥락이 사라진 이미지가 아니라, 현재의 도구로 우리 삶과 사회를 사유하도록 하는 영화들 말이다. 전주국제영화제라는 한 공간에서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스스로 맥락을 만들고, 영화와 영화 사이의 고리를 찾아 현재 우리 삶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응시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머는 판을 만든다.
고맙게도 전주국제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은 대사 하나 없는 영화나 여덟 시간이 넘는 영화도 매진시키며 다른 가치에 반응한다. 돈이나 숫자로 평가할 수 없는 정신의 다양성을 찾는 관객들에게 의지해 올해도 프로그래밍을 한다. 영화제는 천 개의 빛을 밝히려 노력하는, 1년에 단 열흘간 벌어지는 축제이다. 그 이후의 시간은 다른 이들의 몫이다. 다행히 최근 작은 시네클럽, 기획 상영회 들이 생겨나고 있다. 다양한 영화의 존재만큼 다양한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 주는 기획들이 더욱 많이, 끈질기게 일어나기를 바란다.

바베트의 만찬Babette’s Feast
감독 가브리엘 악셀Gabriel Axel | Denmark | 1987

24시간 파티하는 사람들24 Hour Party People
감독 마이클 윈터보텀Michael Winterbottom | United Kingdom | 2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