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얼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박세영의 영화를 볼 때면 특유의 정신 사나운 얼굴을 향해 무언가 말을 걸고 싶어진다. 갑작스레 화면 위에 나타나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얼굴에선 모든 일이 벌어진다. 얼굴은 사방에서 강렬하게 쏟아지는 조명을 고스란히 흡수한다. 입속에선 이해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말이 흘러나온다. 기묘한 질감의 피부는 땀과 피를 배출하며 얼룩진다. 박세영은 얼굴을 부위별로 해체해 신체와 기관의 기능을 재구성하는 해부학자처럼 화면을 조각낸다. 그의 도구는 칼이 아니라 카메라와 편집 프로그램이다. 그의 타임라인 위에서 피사체의 얼굴은 부위마다 판이하게 다른 질감의 충돌로 폭발한다.
커플의 이별과 곰팡이의 탄생을 그리는 〈다섯 번째 흉추〉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많은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는지, 왜 이별하는지, 매트릭스 위에선 왜 곰팡이가 피어오르는지 완벽하게 이해할 순 없다. 이해할 수 없는 기호는 또 한 가지 있다. 여자의 피부에서 생겨나는 땀방울이다. 여자가 서 있고 남자가 누워 있을 때, 여자의 피부에선 땀방울이 생겨나고 아래로 떨어져 남자의 얼굴에 닿는다. 말과 피부와 체액이 닿는 자리에서 인간의 감정은 폭발하고 곰팡이가 탄생한다. 얼굴이 변형되면 영화는 변형된다. 변형은 박세영의 영화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다. 그의 영화에서 키스와 감염을 포함한 신체 접촉이 그토록 아름다우면서 위태로운 것은 이 때문이다.
절실한 감정에 사로잡힌 얼굴은 명확한 의미를 남기는 대신 사라지고 흩어지는 감정을 출현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얼굴은 터무니없을 만큼 쉽게 변형되는 상태에 놓여 있다. 박세영에게 있어 인간은 연약하기 짝이 없는 피부의 표면으로 이루어진 감정의 집합이다. 이 무대에서 캐릭터의 정체성은 무척이나 임의적인 상태가 된다. 그의 영화에서 흔히 정체성을 결정짓는 요인으로 여겨지는 얼굴은 어딘가 불안정하다. 얼굴의 피부 위로 말라붙은 피, 흘러나온 땀, 체액, 토사물, 얼룩, 상처와 긁힌 자국이 달라붙는다. 더러운 액체와 점멸하는 빛에 손상되기 쉬운 얼굴 피부는 인물의 개별성과 내면을 증명하는 단단한 장소가 아니라 위태롭게 흔들리고 진동하는vibrating 임의적 평면이 된다. ‘필름’의 어원은 얇은 가죽과 피부를 뜻하는 단어 ‘pellis’이며 이는 특별히 곰팡이학에서 곰팡이의 세포벽과 버섯의 껍질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쓰인다. 박세영은 영화(필름), 피부, 껍질, 곰팡이 세포가 유사한 영토에 거주한다는 언어적 문맥을 비유의 차원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수용한다.
적은 예산의 프로덕션으로는 과감하게도 디스토피아 SF 장르를 선택한 〈지느러미〉의 도입부에서 사진에 기록된 사람들의 얼굴은 이목구비를 식별할 수 없는 형체로 뭉개져 있다. 사진 속 얼굴이 뭉개지고 오염된 물질로 피부가 더러워진 무대에서 〈지느러미〉가 꺼내 드는 것은 단순한 이야기다. 통일 한반도에 ‘오메가’라고 이름 붙여진 돌연변이 종족이 나타났고, 그들을 색출하는 정부의 요원들이 있다. 오메가는 몸에 지느러미가 달렸고 발가락이 뭉개져 있지만, 육안으로는 식별되지 않아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모두가 더러운 오염 물질을 얼굴에 칠하고 다니는 곳에서 오메가와 인간을 외형적으로 구분하기란 어렵다. 〈지느러미〉는 정부 요원과 돌연변이, 그리고 그 사이에서 정체를 숨기고 인간인 척 살아가는 위장한 오메가의 삶을 장대한 태피스트리로 꾸민다. 만났음에도 서로를 지각하지 못한 자들의 뒤늦은 자각과 엇갈린 감정이 서로 다른 종족의 얼굴의 결합에서 생겨난다.
몸 전체의 질서로부터 떼어져 나가는 얼굴, 피부, 말, 체액······. 그것들은 나의 의식과 통제로 조정되지 않는 것들이다. 한 장면에서 다음 장면으로 바뀌면 스크린 위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영화의 숏과 리듬. 그 또한 영화 전체를 조율하는 연출자의 의도와 통제에서 벗어나기 쉬운 것들이다. 영화는 얇은 막의 피부 조각이 일시적으로 출현하고 결합하는 활동의 총체다. 관능적으로 서로를 매만지는 몸짓과 그들을 장식하는 탐미적인 빛의 이미지는 박세영의 영화에서 화면의 외양을 덧칠하는 탐미적인 도구가 아니라 영화의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상태로 화면 속의 인물을 물들이는 도구로 쓰인다. 〈미쉘〉에서 두 연인이 나누는 키스와 눈빛, 〈특근〉에서 오래된 극장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나누는 정체불명의 헛소리는 마치 하나의 세계가 끝날 듯한 불안 앞에서 인간이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활동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박세영의 영화는 〈지느러미〉처럼 디스토피아 무대를 설정하지 않더라도, 거의 모든 작업이 종말과 연결되어 있다.
박세영의 화면 위에 나타나는 ‘얼굴들’은 끝없이 흔들리고 찢어지는 불안의 삶을 통과한다. 그 화면에 서로의 얼굴을 뚫어질 듯 쳐다보고 상대방을 간절하게 끌어안고 잡아먹을 듯 키스하는 몸짓이 빈번하게 묘사된다. 언제든 다른 무언가로, 그것도 너무 빠르게 다른 무언가로 변형될지도 모르는 픽션의 불안을 흡수한 피사체들은 운명 앞에서 감정을 터트린다. 박세영의 인물들은 폐쇄적으로 닫힌 작은 무대 안에서 서로의 소원이 무엇인지 묻고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나는지 질문한다. 이 작은 무대 위에 새로 태어난 얼굴들은 찢어지거나 부서지지 않고 다음 장소로 이동할 수 있을까? 〈지느러미〉의 종결부에서 두 얼굴은 뜻밖의 장소에서 서로를 만난다. 이것은 세계를 끝장내는 파국의 신호지만, 동시에 어느 때보다 격정적으로 영화를 들끓게 하는 감정의 신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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