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라우라 페레스 Laura FERRÉS | Spain, France | 2023 | 94min | Fiction | 국제경쟁
라우라 페레스의 첫 장편 데뷔작인 〈불변의 이미지〉는 ‘시간이 약이 될 수 있는가?’라는 하나의 질문을 중심으로 기구한 삶을 살아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10대의 어린 소녀 안토니아는 출산 직후 자신의 딸 카르멘을 남겨두고 마을을 떠난다. 50년이 흐른 후 카르멘(마리아 루엥고)은 광고 회사의 캐스팅 디렉터로 일을 하던 중 좌파 정당의 선거 캠페인 비디오를 만들기 위해 평범한 얼굴을 가진 여성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그는 우연히 거리에서 향수를 파는 안토니아(로사리오 오르테가)의 얼굴을 보고 강한 끌림을 느낀다. “모든 사람은 평범한 얼굴 뒤에 숨을 수 있다.”는 영화 속 대사처럼, 이 작품은 여성들의 얼굴에서 사라졌거나 그 얼굴이 감추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대비의 원리를 따라서 이미지와 이야기를 구성한다. 영화 첫 장면에는 어린 안토니아와 그의 어머니가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이 등장한다. 두 사람은 사진사의 지시에 따라 검은 천을 배경에 놓고 의자에 앉은 채로 사진을 찍는다. 흥미롭게도 그 촬영의 결과물은 안토니아의 죽은 아버지 얼굴이 이중 인화된 일종의 심령 사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스페인에서 죽은 자의 얼굴을 이중 인화한 사진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졌던 것을 반영한 이 장면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가 한 이미지에 담기는 마법을 만들어낸다. 영화 첫 장면이 명백히 대비되는 두 개의 성질을 가진 대상을 다룬다는 점은 다분히 상징적이다. 비슷한 논리를 따라서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공존 가능한 것과 공존 불가능한 것으로 구분되는 이질적인 두 대상 간의 대립과 화해가 영화 전반에 걸쳐서 다루어지고 있다.
한편 이 작품은 멜로드라마의 장르적 관습을 부분적으로 활용하여 여성 인물들이 겪는 삶의 역경과 함께 그들이 타인으로부터 인정과 사랑을 얻는 과정을 중요하게 다룬다. 안토니아와 카르멘은 타인에게 말하지 못한 사연과 아픔을 간직하고 있으며, 고독한 일상에서 자신을 위로해줄 수 있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겪는 상실과 고통은 질적으로 다소 다르다. 안토니아가 자신을 괴롭히던 사회적 편견과 억압을 피해 무언가를 남기고 떠난 쪽이라면, 그의 딸 카르멘은 자신에게 원인 모를 상처를 주고 떠난 누군가를 찾는 쪽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50년의 세월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잊어버린 채 살아왔을 두 여성이 만나고, 서로에 대해 오해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다룬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서서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상호 교감하는 모습을 시적인 이미지의 배열과 정적인 영화적 리듬감으로 표현하고 있다. 넓은 화면비를 통해서 스페인 시골 마을이나 소도시의 풍광을 담아내고, 고정된 카메라와 배우들의 절제되고 느린 움직임으로 시간의 지속을 생생하게 포착하고, 배우들의 미묘한 표정이 담긴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담아낸 장면 등이 그러하다.
퍼즐을 맞추듯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완성해 나가는 서사 구조는 전통적인 관습에 균열을 내는 반-영화적인 형식과 조화를 이루어 유령과 같은 여성들의 집단적 초상화를 완성한다. 유령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위치하는 존재이다. 그것은 시공간적으로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지만 아무에게나 보이지는 않는 그런 독특한 존재다. 또한 그것은 베일에 가려진 상태로 우리 앞에 나타나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길 바란다. 그런 점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떠난 안토니아와 자신의 이야기와 감정 모두를 숨기고 살아가는 카르멘 모두 스스로 유령과 같은 삶을 사는 인물로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영화는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보수적이었던 스페인의 과거, 현재, 미래를 염두에 두면서 유령과 같은 삶을 살아온 여성들이 더 많이 존재할 것임을 암시한다. 그런 점에서 〈불변의 이미지〉는 스페인의 사회·역사적 맥락 속에서 유령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에 대해서 성찰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