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코구 신사는 ‘고양이 신사’라 불릴 만큼, 이 주변 많은 길고양이들의 터전이다. 오랫동안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다큐멘터리 감독 소다 가즈히로는 일본으로 돌아와 이 동네에 정착했고, 이곳에서 마을 주민들과 고양이가 어떻게 어울리고 있는지 탐색하기 시작했다. 아직 코로나19가 창궐하고 노년층은 백신을 접종하던 시기였다. 많은 주변부 지역이 그렇듯 고코구 지역 또한 노인 인구가 대부분인 터, 〈고코구 신사의 고양이들〉의 카메라가 만나는 두 집단은 고양이, 그리고 어르신 들로 대별할 수 있다. 이들은 이 다큐멘터리의 공동 주연으로서 맹렬히 불화하고 또 화합하는 기이한 유대 방식을 지닌 채 살아간다.

 

영화의 시놉시스는 말한다. “문명화된 생활에 자연은 공생하기 어렵다는 불편한 진실을 담은 연대기적 다큐멘터리.” 어떤 면에서든 영화를 적절히 소개하기 위해 선택된 낱말들의 조합이겠지만 나는 이 문장이 내심 아쉬울뿐더러 영화를 잘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우선 이 〈고코구 신사의 고양이들〉은 공생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불편한 진실’씩으로 포장하기보다 공생을 고민하는 과정에 투여되는 일상의 복잡다단한 고충을 드러내는 쪽에 가깝다. 달리 말해 공생이 어렵다는 결론을 섣불리 짓는 대신 어떻게 공생할까(혹은 어떻게 공생이 〔불〕가능해지는가)를 감독 본인을 포함해 여러 인물과 고양이 들의 관계를 통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태풍의 여파로 비바람이 몰아칠 때 마을 주민들은 각자의 집에 머물며 돌풍을 피한다. 고양이들의 안위가 걱정되지만 모든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올 수도 없다. 다만 이들은 태풍이 지난 다음날 고양이들을 찾아와 식사를 제공하고 보금자리를 재건해줄 뿐이다. 우린 이 방식을 공생이 아니라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물론 어떤 노인들은 고양이들의 배변 문제, 위생 문제, 그리고 자신의 정원을 망가뜨리는 문제를 불편하게 여기지만 이 불편함을 시스템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을 찾고자 나서는 일 또한 이들의 몫이다. 마을의 중요한 의제로 고양이에 관한 안건들이 대두될 때, 우리는 시트콤처럼 다소 귀엽게 보이는 이 장면이 실상 인간 이외의 종과 어울려 사는 일을 인간의 입장에서 고려해야 할 때 불가피하게 거쳐야 하는 단계임을 확인하게 된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고양이들을 중성화 후 방생(TNR, Trap-Neuter-Return)하기 위해 사람들이 고양이를 유인해 한 마리씩 케이지에 넣을 때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원인 불명의 감염병이 전염될 때조차, 고양이들과 싸우면서까지 이들을 구조한다. 몇 장면이 지나 우리는 아직 마취가 풀리지 않아 사지를 쭉 늘인 채 옮겨지는 고양이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마치 죽은 것처럼, 수많은 시신들이 도열된 것처럼 고요한 이 풍경은 나른하고도 느긋한 기운을 전달한다. 어떤 안간힘으로 인해 성취된 고요. 이는 인간이 조금 더 져야 할 부담을 환기하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역할에 질문을 던진다.

 

고양이들의 자연스러운 삶의 동선과 리듬은 어떤 인위적인 간섭도 없이 행해진다. 생계를 위해 낚시를 하는 남자의 트럭 근처로 고양이들이 몰려든다. 뭐라도 받아먹을 수 있을까 싶어 주위를 어슬렁거리더니, 한 마리가 생선 하나를 무는 데 성공한다. 자신의 다큐멘터리를 ‘관찰영화’라고 일찌감치 명명했듯 소다 가즈히로의 카메라는 이 성묘의 궤적을 초연하게 좇는 데 집중한다. 생선을 들고 유유히 걸어가던 고양이는 저편에서 다가오는 두 마리의 새끼 고양이 중 아무래도 자신의 새끼인 듯 보이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양보한다. 생선을 맛보지 못한 다른 고양이는 물끄러미 그 광경을 바라볼 뿐이다. 다음 장면은 그 성묘가 다시 트럭 앞으로 가 타이밍을 노리더니 유연하게 생선 하나를 집어와 이동하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다시 저 멀리 걸어가던 고양이는 어쩌다 생선을 놓치고, 때마침 조금 전 생선을 먹지 못한 새끼 고양이가 이를 낚아챈다. 생선을 두 번이나 갖고도 두 번 다 먹지 못하게 된 이 고양이의 우스꽝스러운 사연은 그 자체로도 영화에 귀여운 활력을 더하지만, 인간이 개입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고양이들만의 시간을 유유하게 제시한다. 〈고코구 신사의 고양이들〉은 인간과 고양이의 이토록 다른 세계, 그러나 어찌 되었든 함께하기로 약속된 둘의 시간을 넉넉하게 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