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가족 Hit the Road
감독 파나 파나히 | Iran | 2021 | 93min | 월드시네마
영화는 시작과 함께 차 안의 가족을 롱테이크로 비춘다. 뒷좌석의 아빠는 다리에 깁스를 한 채 불편하게 앉아 있고, 그 옆에서 초등학생 정도쯤 되는 막내 아들이 시끄럽게 장난치느라 여념이 없다. 보조석의 엄마는 까부는 아이를 말리느라 정신이 없는 듯해도 눈에는 자식을 향한 사랑이 가득하다. 첫째 아들만 뾰로통한 표정으로 가족과 심리적인 거리를 두고 있다. 이들 가족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억압에 굴하지 않는 카메라
이란 출신의 파나 파나히 감독의 장편 데뷔작 〈길 위의 가족〉은 주인공 가족이 처한 앞뒤 사정을 구체적으로 밝히기를 지양한다. 대신 장남이 국경을 넘어 해외로 탈출하는 것을 가족이 돕는다는 상황만 최소한 노출하여 관객이 이들의 처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래서야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나, 걱정이 들법도 하다. 감독이 이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파나 파나히 자신이 이 영화를 해석하는 중요한 열쇠인 까닭이다.
파나 파나히는 이란의 거장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아들이다. 자파르 파나히는 〈3개의 얼굴들〉(2018)로 칸영화제 각본상을 받고 〈하얀풍선〉(1995), 〈써클〉(2000), 〈오프사이드〉(2006)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이란의 정치개혁을 지지하기 위한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2010년부터 20년간 영화 연출과 제작과 시나리오 등에 참여하는 것이 금지됐다.
그에 굴하지 않고 자파르 파나히는 직접 택시 운전사가 되어 택시 안에 카메라를 설치해두고 승객과 나눈 이야기와 경험을 가지고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가 모호한 〈택시〉(2015)를 만드는 등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파나 파나히는 아버지를 도우며 영화를 익혔다. 그런 전력 탓에 〈길 위의 가족〉의 첫 장면은 〈택시〉의 카메라 운용을 변용해 사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아버지의 작품에서 고정되어 있던 카메라는 아들의 영화에서는 차 안에만 갇혀 있지 않고 차 밖으로 나가는 데 주저함이 없다. 영화의 말미에 이르면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별들의 우주로까지 확장하여 환상 장면을 연출한다. 자파르 파나히가 향유하지 못한 상상력의 자유를 파나 파나히가 누리는 듯해도 사실 이의 카메라는 어딘가 천진난만한 구석이 있다. 가족을 놔두고 도피해야만 하는 첫째 아들의 희망의 퇴로가 끊긴 마음, 즉 절망감과 대비되는 것이다.
가족이 맞닥뜨린 현실
영화 속 막내아들은 형이 이란을 탈출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그저 자동차로 여행하는 게 좋아 들떠 있다. 그러면서 머지않은 미래에 맞닿게 될 세상의 이치란, 이란 사회의 폐쇄성과 개인의 이념을 통제하는 정부의 억압일 터다. 첫째와 가족이 헤어지는 장면에서 영화는 멀찍이 거리를 둔 채 풀숏으로 바라만 볼 뿐이다. 풍경의 아름다움과 상관없이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가족의 무력함이 결국, 가족 여정의 종착지인 셈이다.
자파르 파나히와 다르게 파나 파나히는 정부의 허가를 받고 이란 외딴 지역에서 〈길 위의 가족〉을 촬영했다. 그렇다고 마음 편히 영화를 만들 수 없었던 건 파나 파나히가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감시받는 모습을 보면서 자란 탓에 관련한 공포를 가지고 있어서다. 극 중 아들과 헤어진 가족이 다시 길을 떠나는 것처럼 파나 파나히는 앞으로 계속 영화를 만들겠지만, 미래가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