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탈 아커만이 카메라로 본 첫 번째 시선 Chantal Akerman: Her First Look Behind the Camera
감독 샹탈 아커만 Chantal AKERMAN | Belgium | 2023 | 14min | Experimental | 마스터즈
Collections CINEMATEK – © Chantal Akerman Foundation
샹탈 아커만은 1967년 여름 브뤼셀에 있는 예술학교 인사스(INSAS)에 입학하기 위해 8mm 카메라로 각각 4분가량 되는 4편의 포트폴리오를 제작한다. 당시 17세였던 아커만은 친구인 마릴린 와틀레, 그리고 동생 클로딘과 함께 10대 여성의 발랄한 일상을 촬영한다. 사운드가 없는 영화는 상점이 있는 해변 거리의 풍경, 윈도쇼핑을 하는 사람들, 놀이공원의 회전그네와 야경, 근육을 자랑하는 무대의 남자들, 신발을 신어보고 옷을 구경하는 소녀들, 고데기로 머리를 다듬고 설거지를 하고 담요를 접는 등 집안일을 하고 서로 농담을 나누는 소녀들의 파편적인 점프컷 푸티지로 구성되어 있다. 카메라는 관찰적이지만 종종 친밀감을 강하게 드러내고 피사체인 마릴린 역시 카메라를 기다리거나 슬쩍 쳐다보며 협업의 태도를 취한다. 상당 부분 포커스가 나간 실내의 미디엄숏 및 클로즈업 숏들은 자연스러움 혹은 아마추어스러움을 배가시킨다.
이 영화는 애초에 하나의 완결된 작품으로 제작되지 않았으며 아커만 사후인 2021년 발견되어 복원되었다. 그런 만큼 초기 영화 시절의 뤼미에르 영화처럼 분류와 배급을 위해 ‘샹탈 아커만이 카메라로 본 첫 번째 시선’(이하 〈첫 번째 시선〉)이라는 직설적인 제목이 붙게 되었다. 이미 거장이 된 감독이 청소년 시절 영화학교 입학을 위해 친구들과 함께 만든 습작을 그의 작업 세계 내에 어떻게 배치할 수 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이 영화를 무언가의 ‘원형’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 원형은 선명하게 설명이 가능한 선형적이고 인과적인 서사 속에 있기보다는 혼란과 가설, 간격과 봉합, 설렘과 그리움, 과거의 현재화와 미래의 과거화라는 특징 속에서 미끄러지며 의미화된다. ‘첫 번째 시선’이라는 제목처럼 아카이빙이란 늘 이후의 모든 것을 설명해줄 기원과 원형의 발견에 집착하지만 또한 지금 발견된 ‘첫 번째’가 새로운 발견과 의미화로 인해 최초라는 자격을 잃을 수 있는 미끄러짐과 덧붙임을 전제한다. 그래서 기록되지 않았던 또는 그 영화를 만든 아커만조차 잊고 있거나 공개되기를 그다지 원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영화는 그의 필모그래피 내에 위치하면서도 끊임없이 바깥을 맴돈다.
원형으로서의 의미화 방식을 열거해 보자. 정서적으로는 어린 아커만의 영화(학교)를 향한 순수한 열정, 다시 말하면 미래를 향한 설렘과 기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 포트폴리오로 입학한 아커만은 1년 만에 예술학교에서 배울 것이 없다며 자퇴를 하고, 다이아몬드 거래소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돈을 모아 〈내 마을을 날려버려 Blow Up My Town〉(1968)라는 단편을 제작한다. 영화의 고유한 작업 방식인 협업과 네트워크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아커만과 함께 파라다이스 영화사(Paradise Films)를 설립하고 〈잔느 딜망 Jeanne Dielman, 23 Commerce Quay, 1080 Brussels〉(1975)의 조감독이었으며 아커만의 영화 중 보다 실험적이고 독립적인 대다수 영화들의 프로듀서였던 마릴린 와틀레와의 최초의 협업으로 볼 수 있다. 영화에는 마릴린뿐 아니라 아커만 본인도 잠깐 등장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아커만은 주제적으로 여성과 이주·망명·난민들을 비롯한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다뤘을 뿐 아니라 가능한 여성 제작진과 함께 일하려 했다는 점에서 ‘여성의 창조성과 함께 일하기’의 원형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커만의 필모그래피에서 일관되게 반복된 주제와 형식의 원형을 찾아보는 접근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자칫 과잉 의미화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아커만 고유의 스타일로서 미니멀리즘적이고 구조주의적인 형식이라고 평가받았던 롱테이크와 고정 숏은 이 영화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영화저널 「시네마스코프 Cinema Scope」(96호)에 게재한 리뷰에서 케이트 레너봄이 날카롭게 관찰했던 것처럼 1년 후 연출한 〈내 마을을 날려버려〉와의 유사점들을 찾아볼 때 처음부터 아커만의 시선을 사로잡은 영화적 대상이 무엇이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내 마을을 날려버려〉는 그의 극 장편 데뷔작이자 대표작 〈잔느 딜망〉의 응축된 버전으로 평가할 수 있기에 이 영화는 느슨하게 ‘원형의 원형’의 위치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재를 구매하고, 자신을 치장하고, 가사노동을 하고, 불규칙하게 짬짬이 생겨난 사이-시간을 친구와 보내는 여성적 제스처를 포착하려는 욕망, 부엌을 비롯한 집이라는 공간을 향한 관심, 10대 여성의 발랄하지만 의심과 방황 속에 놓인 움직임, 거리 두기와 애착적 친밀함이 공존하는 카메라는 〈첫 번째 시선〉과 〈내 마을을 날려버려〉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전자가 극적 구성 없는 파편화된 푸티지들의 나열이라면 후자는 통제된 효과와 완결된 서사를 갖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내 마을을 날려버려〉에서 (아커만 본인이 연기한) 젊은 여자는 꽃다발과 파스타 면 등을 구입하고 부엌으로 들어와 집안일을 하고 거울을 보며 치장을 하다 가스레인지의 밸브를 열어 부엌을 통째로 날려버린다. 여자의 마을-세계는 부엌이라는 가부장적 공간에 갇혀 있고, 그의 이미지-신체는 가부장적 시선이 내재된 거울(looking mirror) 안에 프레이밍 되어 있다. 젊은 여자는 자신을 포함해 그 세계와 이미지를 해체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파괴 욕망은 우울증적 자살과 거리가 멀다. 여자의 제스처는 지나치게 발랄하고 흥겹다. 심지어 매번 실패하는 것 같은 그의 서툴고 어색한 노동은 슬랩스틱 혹은 뮤지컬 코미디를 유발시킨다(아커만의 코미디와 뮤지컬 장르에 대한 사랑은 필모에서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폭발음이 들린 후에도 블랙 스크린 너머로 허밍 소리가 지속된다는 점에서 영화는 오프스크린의 다른 세계를 지향한다.
집안일이나 치장을 하는 움직임이 억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 역시 주목해야 한다. 아커만 특유의 ‘제스처의 미학’은 첫 영화(〈첫 번째 시선〉 혹은 〈내 마을을 날려버려〉)부터 찾아볼 수 있다. 제스처는 가치화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진지한 노동이나, 리액션을 인과적으로 야기하는 액션과 다르다. 제스처는 언어적 표현과 노동 사이에 있는 움직임이며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관계적 특징을 갖는다. 여러 인터뷰에서 아커만이 누차 강조했던 것처럼 가부장제하에서 일어나는 여성들의 노동은 억압적 성격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친밀한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애착의 표현이자 뉘앙스이다. 가사노동과 감정노동은 배제 불가능한 여성의 역사이기도 하다. 더불어 부엌과 집은 폭파한 이후 돌아갈 ‘기원 없는 기원’ 혹은 ‘집 없음의 공간(No Home Movie)’이 된다. 거리 두기와 친밀함, 분리와 애착이 공존하는 시선은 이후 〈방 La Chambre〉(1972), 〈호텔 몬터레이 Hotel Monterey〉(1973), 〈나, 너, 그, 그녀 I, You, He, She〉(1974), 〈집에서 온 소식 News from Home〉(1976), 〈잔느 딜망〉 등으로 이어지며 더 세련된 방법으로 구현되지만 “첫 번째 시선”부터 내재했을 수 있다.
〈첫 번째 시선〉이 상기시키는 또 하나의 영화는 두 벨기에 소녀의 파리 방랑기인 〈춥고 배고픈 I’m Hungry, I’m Cold〉(1984) 같은 10대 여성의 방황과 욕망을 다룬 영화들이다. 〈춥고 배고픈〉에서 집을 나온 것처럼 보이는 두 소녀는 식당에서 어설픈 노래를 부르며 음식과 잠잘 곳을 구한다. 그들은 한 나이 든 남자의 집에서 머물게 되고, 그중 한 소녀는 남자와 섹스를 한다. 그런데 남자와 섹스를 하지 않는 다른 소녀는 음식을 먹은 후에도 끊임없이 배고파한다. 이 허기짐은 이성애 중심적인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들의 성이 거래되는 순간에도 포섭과 통제를 벗어난 동성애적 욕망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들은 주류 사회가 규정한 단순한 소비 주체, 일탈 청소년, 이성애 결합을 준비하는 미숙한 존재로 규정되지 않는다. 그들의 이유 없는 흥겨움, 어색함, 맞는 자리를 찾을 수 없음, 불확실, 기존 사회로부터의 부유 등의 날것의 이미지를 〈첫 번째 시선〉에서 발견할 수도 있다. 혹은 그것은 그저 영화감독 지망생의 의미 없는 촬영 실습이었을 수도 있다. 어느 것이든 17세 아커만의 시선을 통해 세계를 보는 일은 이상하게 감동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