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다큐멘터리 〈말께리다스〉는 칠레의 여성 교도소 수감자들의 알려지지 않은 삶을 내밀하고도 강렬한 초상으로 보여준다. 여성 교도소는 수감자들에게 갓난아이가 있는 경우 두 살까지만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허용한다. 복역 기간이 남아 있는 수감자는 강제로 아이와 헤어져 지낼 수밖에 없다. 영화는 아이를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 삶의 통제력을 잃은 것에서 온 무력감, 유사한 처지에 있는 엄마 수감자들이 만들어낸 특별한 우정과 사랑의 정서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영화는 독특하게도 복역 중인 수감자들이 휴대폰으로 촬영한 사진과 영상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7년여의 제작 기간을 통해 수집된 4천 개 이상의 사진과 2천 개 이상의 영상 중에서 선별된 소리와 이미지들은 날것의 상황과 감정을 급진적으로 제시한다. 교도소는 휴대폰 소지 그리고 녹음 및 촬영을 전적으로 금하고 있기 때문에 몰래 촬영한 저화질의 사진과 영상은 종종 흔들리고, 노출이 맞지 않거나 초점이 나가 있으며, 교도관의 급습으로 휴대폰은 침대 밑으로 숨겨지고 소리만 녹음되는 경우도 있다.

 

오프닝 신은 그와 같은 불안하고 파편적이며 친밀한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블랙 스크린 너머로 철창문이 달그락거리고 여기저기로 움직이는 소리, 아기의 울음소리와 가쁜 숨소리, 엄마가 아이를 재우려 다정하게 달래는 소리가 뒤섞여 들린다. 마치 함께 어두움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서서히 형체가 드러나며 엄마가 아이를 안고 있는 저화질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여러 사진의 몽타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아이는 점점 다가오는 교도관의 열쇠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두 살도 채 안 된 아이는 이미 교도소의 감시 체제에 익숙해져 있다. 아이 엄마인 카리나는 복역 기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렇게 아이와 함께 있는 순간도 곧 끝나게 될 것을 알고 있다.  

 

오프닝에 등장한 카리나가 영화의 상당 부분에서 보이스오버로 수감자들의 상황을 설명하지만 영화는 인물 중심으로 전개되지 않으며 구체적인 사적 서사, 즉 개별 인물의 수감 연유나 동정을 자아낼 만한 성장 배경 등의 정보는 의도적으로 제거된다. 감독은 관객이 성급하게 수감자들을 판단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감독은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스무 명이 넘는 엄마 수감자와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지만, 그들의 구별 가능한 얼굴과 매칭된 이름은 영화 마지막에 가서야 확인할 수 있다. 대신 창밖의 고양이, 쏟아져 내리는 비, (아이의 것이었던) 미키 마우스 모양이 들어간 빈 침대, 서로에게 키스하며 애정을 드러내는 두 수감자의 친밀한 영상, 음악을 틀고 함께 춤을 추는 여자들, 신호가 좋지 않아 자꾸 끊기는 아들과의 영상통화 등 여러 시점이 뒤섞인 흐릿하고 추상적인 이미지는 비좁은 공간에서의 감시와 통제라는 수감 생활의 물질적 조건과 상심, 무력, 사랑, 희망, 연대가 응축된 감정을 전달하며 여성들의 집단 기억을 형성한다. 선명하지 않은 정보와 이미지는 오히려 관객들이 그 공간에 수감자들과 함께 있는 것 같은 생생한 체험을 제공한다. 공동생활 속에서 수감자들의 모성애는 헤어진 아이를 향한 그리움을 넘어 동료 수감자들에게로 확장된다. 50대, 20대, 10대의 서로 다른 세대 여성들은 서로를 엄마와 딸로 부르며 아픔을 공감하고 돌봐준다. 그런 식으로 그들은 주체성과 존엄성을 되찾는다.

 

상실과 부재는 또 다른 충만함과 연대를 낳는다. 베니스국제영화제 비평가 주간 대상 수상 때 받은 심사위원단의 평가처럼 추상적 이미지를 통한 집단 기억은 “오프스크린에 생명을 불어넣는 급진적인 몸짓”이자 “시적 자유”를 가능케 한다. ‘말께리다스’는 ‘사랑받지 못한 자’라는 뜻을 갖는다. 특정 계급과 지역의 여성들은 적당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어릴 때부터 ‘범법자’로 낙인찍힐뿐더러 타인을 돌볼 권리조차 빼앗긴다. 여성 수감자들이 악조건에서 기어이 몰래 촬영한 사진과 영상은 잊히고 소외된 집단에 비전과 목소리를 부여하며 저항의 기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