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작품이라는 사물에 자주 매혹되곤 하는 나는 그만큼 자주 예술의 장소에 매혹되곤 한다. 이 진술은 물론 두 가지 다른 경우를 담는다. 첫 번째는 오래된 예술의 경우인데, 사물과 장소가 항상 결합해 있어 그것을 보기 위해서 나는 반드시 여행을 떠나야만 한다. 두 번째는 현대성의 예술, 장소의 상실로부터 탄생한 무언가의 경우다. 사물과 장소가 결합해 있기는 하지만 필연적인 것은 아니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그렇게 종종 신비로운 집이 형성될 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은 예술 작품 자체보다 예술의 장소가 더 매혹적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내가 지금 내 삶의 방향을 지키도록 마음먹게 만든 순간은 어둡고 허름하지만 친구들이 종종 공연을 했던 한 공연장에서 일어났다. 거기에는 음악 자체를 초과하는 무언가가 있었고, 그것은 삶의 모양을 주무른다. 나는 이것이 현대적인 예술의 독특한 경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오래된 예술에서는 사물과 장소, 둘 중 하나만 파괴되어도 예술 작품은 상실된다. 반면 현대적인 예술에서는 사물이 파괴되어도 장소는 남아 다른 사물을 품을 수 있고, 장소가 파괴되어도 사물은 거처를 옮겨 갈 수 있다. 본질적인 결합이란 존재하지 않고 항상 임의적일 뿐인 결합만이 있다. 나는 오늘날 우리가 참여하는 모든 예술 활동에서 공간이라는 것이 임의적 결합이 수행되기 위한 조건으로서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면서도, 동시에 언제든 사라져도 이상할 게 없다는 언뜻 모순된 견해가 있다. 새로운 집이 지어지기 위해 오래된 집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 너울 속에서 예술의 개념은 변하고 의미는 출렁댄다. 단언컨대 우리는 우리의 남은 삶 동안 여러 집을 전전하며 방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한 숙명이라 하더라도, 누구에게나 고향 같은 장소, 혹은 더 오래 머물고 싶고 가능하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아니면 반드시 지켜 내야만 하는 집이라는 것이 있다. 내가 사물과 장소 사이를 오가면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물도 장소도 아닌 임의성 그 자체다. 특정한 결합 방식 속에서만 특수하게 산출되는 것이 있고, 그것이 열어 내는 허구가, 혹은 가능한 삶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임의적 체계에 참여하고 또 거기에 잠시 머물며 살아가기를 선택하기도 하는 것이다.

 

〈서서히 사라지는 밤〉은 영화관의 위기를 배경으로 삼는다. 이 영화가 그려 내는 영화관의 위기란 곧 타자의 불가능성이다. 바꾸어 말해 보자면, 이 영화는 타자성에 할애된 이미지와 장소의 임의적 결합 양식이 지금 얼마나 협소해지고 있는지를 호소한다. 주인공 펠루는 시립 영화관 우고 델 카릴에서 오랫동안 영사 기사로 일해 왔지만 운영 예산 삭감을 이유로 야간 경비원으로 보직이 바뀌게 된다. 밤의 영화관에서 펠루는 경비원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지 않는다. 그는 스크린 뒤편 비밀 공간에 몰래 자신의 거처를 꾸리고, 밤 속에서 갈 곳 없는 부랑자들에게 영화관의 문을 열어 준다. 경비원은 안과 밖의 경계에서 밖을 주시하며 안을 지키는 사람이지만, 펠루가 지키는 밤의 시간 동안 영화관은 안과 밖의 경계가 흐려지는 장소가 된다.

 

펠루는 부랑자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고, 〈서서히 사라지는 밤〉은 우리에게 그 모습을 자주 보여 준다. 영화는 타자를 보여 주고 또 보는 일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 그리하여 영화관은 다른 무엇보다도 타자들의 자리라는 것이 밤의 파수꾼이 지키고자 하는 영화와 영화관의 관계성일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관의 위기가 표현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타자의 불가능성 그 자체다. 이를 강화하는 것이 펠루의 친구 발레가 영화관을 배경으로 온리팬스에 올릴 성인용 콘텐츠를 촬영하는 모습이다. 오직 소비되기 위해 만들어지고 존재할 뿐인 바로 그 이미지는 밤의 영화관 안에서 펠루와 그의 세계를 위태롭게 한다. 한편, 펠루의 부랑자 친구 막시는 펠루의 핸드폰을 빌려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긴 음성 메시지를 보낸다. 하지만 그 메시지의 대부분은 잘려 나가 고백은 전달되지 못한다. 발레의 이미지와 막시의 메시지는 언뜻 모두 사랑의 불가능성을 암시한다. 하지만 메시지는 불완전하고 정확한 발신과 수신은 불가능할지언정, 막시의 교환에는 타자를 향한 서로의 의식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영화라는 예술이 작동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서서히 사라지는 밤〉은 그러한 특수한 의미로서의 영화와 영화관을 지키고자 하는 열렬한 파수꾼을 자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