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들은 지금 우리가 그의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한다. 외롭고 가난한 사람, 운이 지지리도 없는 사람, 무뚝뚝하지만 심성은 고운 사람, 그런 그들이 만나게 되는 연인, 묵묵하고 성실한 노동자, 공동체 안으로 편입되어 환대받는 이방인,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술꾼, 그들에게 우연히 찾아온 행운과 불행,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타인을 돕는 마음씨, 갑자기 일어난 기적, 바 테이블에 쌓여가는 술병, 연인에게 줄 꽃다발, 오래된 캐딜락, 동네 골목에 있는 바, 부정확한 발음이지만 정서만큼은 절절한 일본 노래, 흥겨운 로큰롤, 선량하고 지혜로운 개, 저 멀리서 잠깐 내비치는 희망의 순간이 그러하다. 무엇보다 그와 함께 오랜 시간 영화를 촬영해 온 동료들에 대한 믿음과 영화로 인해 맺어진 우정을 빼놓을 수 없다. 티모 살미넨이 촬영하지 않은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를 상상할 수 있을까. 살미넨의 카메라에 담긴 청회색 톤과 그리 밝지만은 않은 헬싱키의 야경과, 무채색인 주물 공장에 쇳물이 넘실대며 만들어내는 붉은 빛의 생동감은 보는 즉시 우리의 마음을 건드린다. 카우리스마키 남자 주인공의 ‘전형’을 만들어낸 마티 펠론파의 우수에 찬 얼굴과 귀 뒤로 가지런히 넘긴 단발머리도 잊을 수 없다. 순수한 소녀, 남자에게 거짓말을 일삼는 나쁜 여자, 죽을병에서 살아난 기적을 체험한 카티 오우티넨의 한결같이 무표정한 얼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카우리스마키의 인장만큼이나 그의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 그의 영화를 드러내고 있음도 알고 있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엔 인물이나 그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는 숏과 한 신을 시작할 때 으레 사용하는 설정 숏이 없다. 매 숏이 왜 이렇게 구성되어 있는지 친절하게 설명하려는 의지도 없고 차곡차곡 쌓아가는 이야기의 아슬아슬한 묘미도 없다. 가상선을 마구 넘나드는 무표정한 얼굴의 정면 숏이 아무렇지 않게 이어지지만 우리는 인물들이 시선을 마주하지 않아도 그들이 서로에게 어떤 마음을 지니고 있는지 알게 된다. 화려한 의상이나 실내 장식도 없고 자연광을 위주로 한 조명에 어떠한 인위성도 끼어들지 않는다. 고집과 애상과 유머를 기반에 두고 동일한 세계를 만들어가며 불필요한 것들을 모조리 제거해서 본체만을 남겨두는 그의 영화는 빈한함으로 이루어진 세계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우리를 웃게 만들고 마음 한구석을 가만히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카우리스마키는 이미 노동자와 영화와 극장에 대한 사랑을 담은 영화를 만들었다. 칸영화제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프로젝트 〈그들 각자의 영화관〉(2008)에 포함된 단편 〈주물 공장〉이 그것이다. 3분 남짓한 이 영화는 그의 작품 속 공장의 배경이 된 카르킬라 주물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시계가 6시를 알리자 노동자들은 모두 계단을 올라 작은 극장으로 줄줄이 들어간다. 체격에 비해 헐렁한 옷을 입은 왜소한 노인은 검표를 한 후 옷과 모자를 걸어두고 극장 안에서 8mm 영사기 앞에 앉아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영사기를 튼다. 뤼미에르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Workers Leaving the Lumière Factory〉(1895)이 상영되고 영화를 보고 있는 노동자들의 얼굴이 보인다. 붉은 커튼에 가려진 후줄근한 스크린에 영사되는 뤼미에르의 영화 속 노동자들을 카우리스마키가 사랑해 마지않는 노동자들이 눈을 부릅뜨고 보는 장면은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감동적이다. 그저 영화를 보는 노동자, 19세기 말 노동자를 바라보는 21세기 노동자가 여기 존재하고, 일과를 마치고 극장에 들어선 노동자의 여가 시간이 우리 곁에 머무른다.

 

벨리코 비다크가 연출한 〈라이카 시네마〉는 카우리스마키가 카르킬라 마을에 비어 있는 제철소 부지에 재활용품을 이용해 극장을 짓는 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카우리스마키는 이전에 헬싱키 시내에 ‘키노 안도라’라는 극장을 운영한 바 있다. 재개발로 인해 폐관된 극장이 못내 아쉬웠을까. 자신이 오랜 시간 살아온 카르킬라의 주민들에게 줄 선물을 생각했을까. 겨울이 되면 체육관이나 도서관만으로는 주민들의 여가 생활을 채우기 부족하다고 생각했을까. 혹은 주민 모두가 친구들이고 가족 같은 작은 마을에 노동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영화를 보는 유토피아를 상상했을까. 모두 맞을 것이다. 의아하지만 역시 카우리스마키답다고 감탄하게 되는 것은 극장을 만든 시기다. 코로나 팬데믹이 기승을 부리던 2021년에 일사천리로 이루어진 라이카 극장의 개관을 위해 마을 사람들은 말을 타며 체스를 두며 양에게 여물을 먹이며 낡은 캐딜락을 수리하며 각자 영화에 대한 생각과 극장에 대한 기억을 나누고 새로 생길 극장을 반긴다. 그의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나 음악가도 이곳을 찾아 벨리코 비다크의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 형식이 아닌, 대화를 나눈다.

 

벨리코 비다크는 이 영화를 카우리스마키의 영화처럼 찍고 숏을 배치한다. 고정된 카메라로 촬영하고 두 명 이상의 인물이 모여 대화를 나눈다. 리버스 숏을 사용하지 않고 사람들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도 그의 영화를 닮았다. 마을 사람들이 움직이는 경로에 따라 카르킬라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이 기록되고 숲과 오솔길과 작은 술집들과 오래된 소방서와 친구들이 모이는 작은 방에서 정겨운 이야기가 이어진다. 〈라이카 시네마〉는 캐딜락을 운전하는 카우리스마키의 뒷모습에서 시작해 슬라이드 필름으로 카르킬라가 어떤 마을인지 보여준다. 약 200년 동안 제철소가 마을의 중심을 이뤘지만 현재는 비어 있는 건물이 더 많아 보인다. 카우리스마키를 비롯해 이 마을에서 살아가는 예술가도 꽤 많다. 버려진 제철소 부지를 소유한 노인은 빈티지 캐딜락을 수입하고, 40년 전에 이곳에 정착한 일본인 시노하라 도시타케는 핀란드 노래를 일본어로 번안하거나 오랜 친구와 체스를 두며 시간을 보낸다. 멋들어진 바이크를 타는 중장년의 주민들, 바에서 노래를 부르는 로큰롤 밴드, 2009년에 결성된 슬래커스 클럽에 속한 주민들과 예술가들, 바의 주인과 손님들, 〈희망의 건너편 The Other Side of Hope〉(2017)에 단역으로 출연한 배우, 〈사랑은 낙엽을 타고〉(2023)에 등장한 팝 듀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에 출연했던 경험이 있는 마을 주민들, 외국인 등이 마을에서의 일상과 카우리스마키의 영화, 그의 영화에서 겪은 일화를 나누고 라이카 극장에 대해 기대하며 술을 마시는 모습이 한 줄기를 형성한다. 다른 하나는 극장 공사를 진행하는 노동자들의 신중한 모습과 점점 모양을 갖춰가는 극장의 공사 과정이다. 카우리스마키는 극장의 주인이 아니라 노동자의 일원으로 등장한다. 매일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규칙적으로 노동하며 객석을 만들고 의자가 놓이며 빨간 커튼을 달고 하얀 천으로 된 스크린을 다는 과정을 살펴본다. 한편 뉴욕에서는 카우리스마키의 오랜 친구 짐 자무시가 대화를 나눈다. 캐딜락을 몰고 자무시를 마중 나온 카우리스마키가 그의 반려견 라이카를 따뜻하게 해주라고 말했던 일화,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1989)와 〈지상의 밤〉(1991)을 촬영할 때의 일화를 들려준다.

 

벨리코 비다크는 노동하는 카우리스마키와 한담을 나누며 자신의 삶과 공동체와 사람들의 관계와 영화에 대해 생각을 들려주는 카르킬라의 주민들을 성실한 노동자처럼 기록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영화관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우리는 이미 그 답을 〈주물 공장〉에서 보았다. 노동과 일상과 여가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는 곳, 카운터에서 티켓을 팔고 영사기 소리가 들리며 스크린에 빛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곳이다. “플래허티와 부뉴엘 사이의 모든 것”인 영화가 언제든 상영되고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자가 함께 얼굴을 맞댈 수 있는 곳, 영화를 보고 나와서 대화를 나눌 술집이 있고, 반려견과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보헤미안의 삶 The Bohemian Life〉(1992)에 출연한 큰 라이카와 〈르 아브르〉(2011)에 출연한 작은 라이카의 기억이 머무는 곳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