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림을 그리는 학생들에게 그림을 그리는 선생들은 종종 바람을 그리라는 과제를 내주곤 한다고 들었다. 학생들은 고민을 하다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같은 것들을 그린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는 누군가에게 전해 들었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는 하나의 방법으로 우리는 그것에 흔들리는/영향받는/감응하는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여성 영화 제작 듀오 펑쯔후이와 왕핑원의 장편 데뷔작 〈어느 봄의 여정〉도 보이지 않는 것을 영화로 그려내고자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을. 그런데 〈어느 봄의 여정〉의 사랑은 이를테면 크리스티안 페촐트 영화가 그려내는 사랑과는 다르다. 첫눈에 반하고, 불가항력적으로 이끌리는 방식의 사랑을 다루고 있지 않다. 대신 여기에는 종일 아내에게 툴툴대는 남자와 그런 남편에게 역시 다정한 말과 태도를 돌려주지 않는 여자가 등장한다. 이들은 적당히 늙은 부부이고, 이들의 집은 타이베이 외곽의 산 중턱에 있다. 높고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야만 도달할 수 있는 이들의 소박한 집은 비가 새고, 물이 샌다. 겉보기에 그들은 서로에게 계속해서 신경질을 부린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가 항상 투덜거림과 삶의 고단함만을 나누는 것은 아니다. 과실주를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 남자는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아내 옆에서 그녀의 다리를 어루만지고, 엉덩이 춤을 춘다. 아니면 좀 더 미묘하고 암시적인 애정의 장면들도 있다. 남자는 버스 옆자리에 모르는 누군가가 앉을까봐 들고 나온 비닐봉투를 빈자리에 일부러 놓는 사람이지만, 아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때는 당연히 그녀 옆에 앉는다, 혹은 자신의 옆자리에 그녀가 앉게 둔다. 둘은 거리에서 보폭을 맞추며 걷는 일이 없지만 집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에서 여자가 갑작스럽게 크게 넘어지는 소리가 들릴 때, 역시나 투덜거리며 멀리 앞서 오르던 남자는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걱정되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달려 내려간다. 〈어느 봄의 여정〉의 사랑은 이런 장면들에 조용히 박혀 있다.

 

사랑 혹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흔들리는 늙은 남자의 얼굴은 여자가 갑작스럽게 죽고 난 후에 더욱 도드라진다. 왜 항상 상대를 잃고 나서야 그에 대한 다정하고 애틋한 마음이 생겨나는 것일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왜 다정하고 애틋한 마음은 상대를 잃어야만 샘솟듯이 생기는 것일까? 아내를 떠나보낼 수 없다는 듯이, 그는 죽은 아내의 몸을 마당의 냉장고에 넣고, 그 안에 소금을 붓는다. 그사이에 봄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그는 아내와 함께한 행복했던 과거를 회상한다. 하지만 영화 초반에 중간중간 스치듯이 언급되던 아들의 갑작스런 방문으로 아내의 죽음은 점차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 되어간다. 동시에 아들의 방문은 남자가 회피하고 외면해온 또 다른 현실을 맞닥뜨리게 한다. 아내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동성애자인 아들과 그의 동성 연인을 계속해서 마주쳐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과정은 슈퍼 16mm로 촬영한 타이베이의 우거진 녹음과 시장과 거리의 풍경들과 함께한다. 필름의 질감이 주는 서정성 속에서 남자의 늙은 얼굴은, 절뚝이는 걸음걸이는 슬프게 흔들거린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