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2000년대 스마트폰 시장을 선도했던 리서치인모션이 만든 블랙베리의 성공과 실패를 다룬다. 1984년 마이크 라자리디스와 더글러스 프레긴이 설립한 리서치인모션은 초창기에는 주로 무선 통신 기술 개발에 주력했다. 짐 발실리를 공동 경영자로 영입한 이후에는 이메일을 사용할 수 있는 핸드폰을 개발하여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비록 현재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었지만, 최소한 블랙베리는 아이폰이 등장하기 직전까지 핸드폰의 대명사처럼 불렸던 브랜드 중 하나였다.

 

〈블랙베리〉의 도입부는 새로운 기술 개발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이는 2000년대 전 세계를 강타한 벤처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리서치인모션을 공동으로 설립한 마이크 라자리디스(제이 배러셸)와 더글러스 프레긴(맷 존슨)은 기술에 대한 지식은 풍부하지만, 회사 경영과 관련해서는 미숙함이 많은 것으로 묘사된다. 특히 두 사람은 투자자를 설득하거나 계약 업체와 협상할 수 있는 수완이 부족해 보인다. 이 두 사람을 믿고 따르는 동료들 또한 비슷한 성격의 소유자로 그려지고 있다. 그들은 회사의 경영보다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시간에 더 중요한 가치를 두는 ‘괴짜(nerd)’에 가깝다. 이처럼 이 영화는 어느 벤처 기업의 성공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는 초반부의 이야기를 통해서 1990년대 당시 리서치인모션에 부족했던 것이 사업가 마인드임을 넌지시 암시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마이크 라자리디스가 성공에 목말라 있는 짐 발실리(글렌 하워턴)를 만나고 그를 공동 경영자의 자리에 앉히는 이야기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이 영화는 안정적인 이야기 전개 방식을 따른다. 마이크 라자리디스와 짐 발실리의 만남, 블랙베리의 출시와 성공, 블랙베리의 몰락으로 구분되는 이야기 구성은 지나치게 안정적인 나머지 다소 단조롭게 느껴질 정도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한편으로는 아날로그 매체가 디지털 매체로 전환되는 시기와 관련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벤처 기업의 성공 신화를 가능케 한 글로벌 자본주의 및 금융 자본주의의 부상과 관련이 있다. 영화의 핵심 인물인 마이크 라자리디스는 이야기 초반에만 해도 디지털과 인터넷의 흐름을 꿰뚫는 통찰력이 있는 반면, 시장 흐름에는 둔감한 것처럼 그려진다. 그러던 그는 서서히 시장 경쟁에 혈안이 된 경영자의 모습을 갖추어 나간다. 이와 같은 주인공의 변화를 통해서 영화는 2000년대의 급격한 시대적 변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성공에는 희생이 따르는 법. 영화 속 짐 발실리의 대사처럼 “위대해지고 싶으면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탓에 이 영화 속 인물들은 종종 부와 명예를 얻는 대신 우정, 신뢰, 신념을 잃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는 블랙베리를 통해 얻은 성공이 블랙베리로 인해 무너지는 결말을 보여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영원한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한편, 이 영화는 안정적인 이야기를 뒤흔드는 불안정한 영화적 형식을 통해서 영화의 분위기와 주제를 표출한다. 2000년대 이후 할리우드 영화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빠른 편집, 초점 이동, 대화 장면에서의 클로즈업과 줌인, 자유로운 카메라 움직임 등과 같은 방식이 이 영화에서도 답습되거나 약간 변주되어 쓰인다. 그중에서도 이 영화의 스타일은 여러 회의 장면에서 그 진가를 드러낸다. 엔지니어 회의, 회사 중역 회의, 투자자 회의를 보여주는 각 장면은 핸드헬드 카메라 기법을 활용하여 전체보다는 부분을 강조하는 방식 또는 급작스러운 줌인을 통해서 특정 인물의 얼굴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연출되었다. 역동적인 리듬감과 빠른 속도감을 형성하는 그런 연출 방식은 그 어떤 것도 고정적이고, 지속적이고, 영구적일 수 없다는 것, 즉 모든 것은 덧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는 인상을 준다. 말하자면 이 영화의 불안정한 형식은 새로운 것이 오래된 것을 밀어낼 것이라는 하나의 주제와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또 다른 주제를 뒷받침한다. 이처럼 〈블랙베리〉는 21세기 초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블랙베리의 성공, 즉 한여름 밤의 꿈처럼 달콤한 성공 신화의 덧없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