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도 게이시의 장편 데뷔작 〈뉴 릴리전〉은 불온한 분위기로 가득한 호러영화다. 영화가 시작되면 붉은 신체와 도시의 이미지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인간이 존재하는 육체,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는 이미 망가지고 피폐해졌다. 모든 것이 재생, 부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믿음이 필요하다. 새로운 육체와 세계는 반드시 파괴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파괴할 수 있는 용기 혹은 맹신은 아무에게나 허락되는 것이 아니다.

 

3년 전, 미야비는 사고로 딸을 잃었다. 이혼 후, 콜걸로 일하는 미야비는 손님인 오카에게 이상한 제의를 받는다. 섹스 대신 미야비의 신체를 사진으로 찍겠다는 요청이다. 먼저 척추의 사진을 찍었고, 다시 만날 때마다 다리와 손 등 신체 부위를 하나둘 찍는다. 이제 남은 것은 눈. 그런데 미야비의 행동이 언젠가부터 이상하다. 죽은 딸이 존재하는 것처럼 허공을 어루만지고, 아무도 없는데 동화를 읽어주고, 대화를 한다.

 

미야비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 딸이 베란다에서 노는 동안, 미야비는 책상 앞에서 뭔가에 몰두하고 있다. 딸의 죽음은 사고였지만, 남편은 모두 미야비의 책임이라며 비난하고 이혼했다. 딸도 남편도 떠나갔지만, 여전히 미야비는 아파트를 떠나지 못한다. 같은 아파트에 뮤지션인 애인과 동거를 하면서 살고 있다. 매일 딸이 죽은 베란다를 바라본다. 베란다는 딸이 죽었을 때와 똑같은 풍경이다. 아마도 이 아파트에 그대로 살기 위해서 미야비는 콜걸을 시작했을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미야비와 여성들이 손님의 지명을 기다리는 방은 칙칙한 지하실이다. 건물의 전력이 불안정하여 형광등 불빛이 깜빡거리는 암울한 장소다. 누구는 음악을 듣고, 누구는 책을 읽고, 누구는 묵묵히 기다린다. 지명이 되면 남자가 모는 차를 타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모텔에서 낯선 얼굴의 남자들을 만난다. 어느 날, 함께 일하는 아카리를 태우러 갔다가 사건이 벌어진다. 무표정한 얼굴의 아카리가 거리의 남자들을 칼로 죽이고 있었다. 열몇 명이 죽거나 다치는 사건이 일어나고 아카리는 사라진다.

 

〈뉴 릴리전〉은 구로사와 기요시의 공포영화들을 떠올리게 한다. 미야비가 살아가는 거리를 비롯한 도시는 삭막하고 회색이다. 음악은 거의 나오지 않고, 전자음과 소음처럼 들리는 음향이 혼란스럽게 들린다. 곳곳에 꿈과 죽음의 상징이 있고, 현실과 환상과 꿈이 마구 뒤섞인다. 그들이 존재하는 시간조차도 흔들린다. 미야비는 이카리가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서 발견한다. 배경에 있는 해변은, 미야비가 딸과 함께 사진을 찍은 그곳이다. 그곳은 어디일까, 누가 찍어줬을까. 어쩌면 그곳은 꿈이 아닐까? 꿈이 현실이 되고, 현실은 꿈을 넘어 또 다른 현실이 되고 있다.

 

곤도 게이시는 야심만만한 감독이다. 느리게 다가오는 공포를 서늘하게 그리며, 자신의 영화가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향 아래 있음을 보여준다. 붉은 옷을 입은 여성이 천천히 손을 들어 방 한구석을 가리키는 장면을 보면, 아름답고 끔찍하다. 그녀의 손끝이 향하는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는 알고 있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일상부터 파괴되고, 꿈처럼 사라져갈 것이다. 우리는 최후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곤도 게이시는 말한다. “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을 일본 사회에 대한 은유로 설정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주인공이 마법의 기술을 통해 딸의 유령을 쫓는 과정을 통해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사회’에서 살아남는 작은 체념과 거기서부터 시작될 미래를 그려내고자 했다.”

 

거리의 무차별 살인, 미술관과 학교 등의 폭발 사건 등이 연이어 벌어진다. 오카를 만난 사람들의 현실은 꿈과 융합되고, 그들은 세계를 파괴한 후 사라져간다. 〈큐어〉(1997), 〈회로〉(2001), 〈절규〉(2006) 등에서 드러난 종말론적 징후가 〈뉴 릴리전〉에서 반복된다. 20여 년이 지났지만, 우리의 세계는 여전히 종말의 시간대에 놓여 있다. 곤도 게이시는 구로사와 기요시에 비해 덜 장르적이지만, 더 실험적이며 때로 장엄한 ‘의식’(儀式)을 연상하게 한다. 상실감과 고통을 잘 드러낸 미야비 역의 세토 카호와 모호하면서도 공포가 느껴지는 오카 역의 오카 사토시의 연기도 훌륭하다. 여전히 일본의 호러가 독특하면서도 강렬하다는 것을 입증한 〈뉴 릴리전〉은 주목할 만한 장편 데뷔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