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 가공 공장에서 일하는 스테판은, 대형 호텔 체인과 레스토랑 등을 소유한 아버지 세르주를 처음 만난다. 3개월 전 어머니가 죽은 후 결국 연락을 한 것이다. 세르주의 집에 초대된 스테판은, 그의 아내인 루이즈와 딸 조르주를 만난다. 그들의 사이는 최악이다. 루이즈와 조르주는 세르주가 빨리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스테판을 배웅하는 조르주는 그녀에게 다시 오지 말라고 강하게 말한다. 그러나 스테판은 다시 세르주의 집에 찾아가고, 치열하고 잔혹한 가족들의 전쟁 한복판으로 뛰어든다.

 

세바스티앙 마르니에 감독의 〈악의 기원〉은 〈나이브스 아웃〉(2019)을 떠올리게 하는, 심플하게 잘 만들어진 하우스 스릴러다. 젊고 예쁜 여성 노동자가, 부자이지만 천박한 남자의 딸이라면서 나타난다. 남자의 가족들은 유산이 줄어들거나 사라질까 전전긍긍하며 그녀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취한다. 스테판은 세르주의 진짜 딸일까? 그녀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야기의 비밀이 이것뿐이라면 너무 심심하다. 스테판만이 아니라, 세르주와 가족들 모두 숨기는 것이 있고 원하는 것이 있다. 언뜻 보기에는 재산을 둘러싼 부자 가족의 이전투구이지만, 〈악의 기원〉은 다소 진지하게 악의 기원을 파고든다. 어디에서, 무엇에서부터 세르주 가족의 악이 시작된 것일까.

 

세르주는 극단적으로 가부장적이고 포악한 인간이다. 딸의 이름을 모두 남자 이름으로 지은 것은, 단지 아들만을 원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애인을 거느렸던 세르주는 가족을 폭력으로 다스리는 독재자였다. 자신이 말하는 대로 따르지 않으면 서슴없이 정신적, 육체적 폭력을 가했다. 루이즈도, 조르주도 세르주에게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늘 위태로운 일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스테판이라는 캐릭터는 로르 칼라미의 연기로 빛난다. 것은 이해가 된다. 세르주가 심장에 이상을 느끼며 쓰러졌을 때, 루이즈와 조르주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세르쥬의 숨이 빨리 끊어지기만을 바란다. 루이즈는 홈쇼핑 중독이다. 충동적으로 사들인 물건이 커다란 창고에 가득한데도, 틈만 나면 전화를 들고 새로운 물건을 주문한다. 세르주의 사업을 이끄는 조르주는 하루빨리 공식적인 오너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이기적이고, 냉혹해 보인다.

 

스테판도 세르주 가족의 일원이 되기에 부족하지 않다. 냉대를 받고 돌아온 스테판이 다시 세르주의 연락을 받았을 때, 그녀의 표정은 묘하다. 기쁨을 감출 수 없는 얼굴도, 들떠 있는 몸동작도 모든 것이 과하다. 스테판에게는 분명히 다른 목적이 있고, 깊숙하게 감추어진 무엇이 있다는 의심이 든다. 스테판은 감옥에 있는 연인을 자주 찾아간다. 그들의 관계는 무엇일까? 어떤 범죄가 있었을까? 자신의 집이 없고, 형편에 따라 동성 연인들의 집을 옮겨 다니는 스테판을 보면 무척이나 과거가 궁금해진다.

 

제대로 된 신분증도 없는 스테판은 동거하던 연인에게 새로운 신분증이 필요하다며 구해줄 수 있냐고 다정하게 그러나 완강하게 부탁하며 키스한다. 분명히 스테판은 사기꾼이고, 은밀한 목적이 있다. 그리고 연약하며 사랑스럽다. 스테판은 맹한 귀여움으로 상대를 무장 해제시키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유롭게 조종할 수 있는 사기꾼이다. 하지만 완벽한 악인이 되기에, 스테판은 타고나지 못했다. 아슬아슬하게 선 하나 정도 차이로 스테판은 인간적인 면모를 유지한다. 유능한 사기꾼이면서도 늘 위태로운 일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스테판이라는 캐릭터는 로르 칼라미의 연기로 빛난다.

 

〈악의 기원〉은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부잣집에 숨어든 사기꾼의 모험담이지만, 중반을 넘어서며 이야기의 결이 풍성해진다. 부자 남편의 탐욕적인 아내처럼 보였던 루이즈는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낸 매력적인 여성이다. 해안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를 함께 나와 바닷가에 선 스테판과 루이즈의 모습은 마치 ‘델마와 루이즈’를 떠오르게 한다. 그들은 아직 어디에도 가지 않았지만, 세르주의 저택 안에서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그들만의 장소에 우뚝 서 있다. 〈악의 기원〉은 플롯의 정교함보다는 다양한 은유와 패러디 그리고 여성들의 연대를 강조하는 인물들의 관계가 돋보이는 스릴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