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와 로키타 Tori and Lokita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 Belgium, France | 2022 | 88min | 개막작
지난 30여 년간 다르덴의 영화는 신(新) 자유주의 체제가 장악한 도시 환경에서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분투하는 하층민들의 삶을 서사화했다. 벨기에 출신의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으로 구성된 형제 감독은 구체적인 정치적 이슈로부터 영감을 얻은, 가슴이 저리는 드라마로 명성을 쌓았다. 도덕적 복잡성을 가진 다르덴의 스토리는 거절과 실패, 고립의 상황으로 시작해 가혹한 시련에 노출된 인물들이 타락을 멈추고 거듭나는 길을 찾도록 이끈다. 사회적 리얼리즘에 기반한 독특한 자연주의 스타일로 요약되는 영화의 형식은 냉엄한 객관주의로 불우한 환경에 놓인 개인의 사회적, 윤리적 딜레마를 숙고하게 한다. 수수께끼 같은 캐릭터, 단순한 스토리, 팽팽하게 당겨진 이미지의 긴장감 등 형식적 일관성을 보여주는 대표작 〈로제타〉(1999)와 〈더 차일드〉(2005)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 수상하면서 다르덴은 하나의 고유명사이자 영화 예술에 투신하고자 하는 젊은 영화인들의 바이블이 되었다.
생생하고 현실적인 잔인함을 녹여낸 드라마
이민자들을 먹잇감으로 삼는 인신매매를 고발한 기념비적인 영화 〈프로메제〉(1996)로 주목을 받은 지 20여 년이 지나 다르덴 형제는 가장 취약한 상태로 동정 없는 세상에 내팽개쳐진 아이들을 제재로 한 〈토리와 로키타〉에서 서유럽의 이민자 문제를 다시 쟁점화한다. 24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보이게 된 〈토리와 로키타〉는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하는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 남매가 스스로의 구원을 찾아 고군분투하는 우화다. 이것은 〈프로메제〉, 〈내일을 위한 시간〉(2014), 〈소년 아메드〉(2019)와 마찬가지로 유럽에 온 이민자들이 착취와 학대, 비인간적인 대우를 견디며 살아가는 현실을 고발하는 또 하나의 이야기다. 이들 작품 가운데에서도 분노 게이지를 최고조로 올리는 이 영화는 이민자들에게 강요되는 서유럽의 계략에 초점을 맞춘다.
잔인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우정과 연대의 혁명적인 스토리로 진화해가는 다르덴의 세계관을 이어받는 〈토리와 로키타〉는 각각 베냉과 카메룬을 탈출한 열한 살의 고아 소년 토리(파블로 실스)와 열여섯 살 소녀 로키타(졸리 음분두)의 망명기를 축으로 전개된다. 쫓겨나지 않기 위해 남매임을 가장(假裝)해야 하는 두 아이는 벨기에의 쇠락한 공업 도시 리에주 지역에서 간신히 살아가고 있다. 로키타는 유럽 언론과 정치권 일각에서 크게 악마화했던 미등록 난민으로 당국에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나 추방될 수도 있는 위험에 처해 있다.
영화는 한동안 아이들의 절박한 처지와 돈의 쟁탈전을 지켜보면서 다방면으로 생존을 압박해오는 상황들을 나열한다. 토리와 로키타가 동네 피자 가게에서 손님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다정해 보이지만 피자 가게 주인의 본업은 마약 밀거래이고 토리와 로키타는 그를 위해 밤마다 마약을 배달한다. 어렵게 번 수입의 대부분은 그들을 벨기에로 데려온 밀수업자에게 갈취당하고 로키타는 아프리카에 있는 가족을 위해 돈을 모으려다 지하 벙커에 구금되어 대마초 농사까지 짓게 된다. 로키타에 대한 토리의 애착은 두 사람을 재회하게 하지만 그로 인한 비참한 사건의 연쇄를 촉발한다. 다르덴은 삼엄한 감시와 성폭행, 협박이 난무하는 비인간적인 상황 속에서도 피를 나누지 않은 남매의 사라지지 않는 선의를 특유의 흡인력 있고 세밀한 묘사로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가 무겁고 감정을 소모하는 경험이 되리라는 것은 영화를 보기 전부터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생생하고 현실적인 잔인함을 녹여낸 드라마는 끊임없는 고난의 연속으로 두 인물에게 이민자들의 경험을 투사한다. 토리와 로키타는 특정 상품의 생산 및 유통망 중에서도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비즈니스에 종사하고 있다. 이토록 위험한 탈법 비즈니스가 토리와 로키타처럼 뿌리 내릴 곳이 없는 이민 노동자들을 순종하고 겁에 질리게 만드는 시장의 본질이며, 그 위에 기생하는 사람들이 손쉽게 얻고 싶어 하는 물건(마약)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을 조력한다고 이 영화는 주장한다. 주변부 인간들의 고혈을 짜는 마약 산업, 그와 연계된 지하 경제, 돈의 흐름과 부패의 사슬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공간, 상상을 초월하는 노동 착취, 비 인간화의 지옥도 위에서 매핑된다. 로키타가 인권 수호의 차원에서 쉽게 제공할 수 있는 이민 서류를 받았더라면 고통을 줄일 수 있었다는 토리의 말은 이 두 남매와 같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처우가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로키타가 벙커에 억류되어 대마초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면들은 끔찍한데 무법의 세계에 결박된 두 아이의 암울한 실존은 관객들을 억압받는 자의 자리로 데려다 놓는다.
로키타와 토리 역을 맡은 비전문 배우 졸리 음분두와 파블로 실스는 영화 안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로제타〉 같은 다르덴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잦은 얼굴 클로즈업과 역동적인 롱 테이크는 두 배우에게 인내와 헌신을 요구한다. 졸리 음분두는 연약한 십대 캐릭터에 금욕적인 성숙함을 더하고 파블로 실스는 유쾌하고 장난기 넘치는 모습으로 드라마에 감정적 깊이를 보탠다. 전문적인 연기를 해본 경험이 없는 두 배우의 신체와 제스처에는 단순한 묘사 이상의 함의가 있다. 신체에 대한 묘사는 다르덴 영화의 서명이며 〈토리와 로키타〉는 두 아이의 신체 관계를 묘사하는 방식, 두 사람의 게임, 소지품 교환, 함께 부르는 노래, 서로를 향한 제스처에 언어화할 수 없는 영기(靈氣)를 담는다. 몸짓, 표정, 말투에 천착하는 다르덴의 연출 방식은 시련에 저항할 수 있게 해주는 우정을 스케치하고 냉소와 무관심이 승리하는 사회 속에서 소중한 인간의 존엄을 보존하는 피난처가 어디인가를 기어코 보여주려 한다.
다르덴 형제 영화의 형식적 효과
〈토리와 로키타〉는 데뷔작 이후 거의 변화하지 않았고 더 이상 진화할 필요가 없는 다르덴의 스타일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준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다르덴은 디제시스 바깥에서 개입하는 음악을 피하고 위협의 수위가 높아지는 순간에 우리를 바로 그곳에 데려다 놓기 위해 핸드헬드 카메라에 의존한다. 영화의 스타일과 관련해서는 이들의 경력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다. 먼저 그들이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로 커리어를 시작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2015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기획한 특별전 ‘출발로서의 다큐멘터리: 세 거장의 기원’을 통해 소개된 바 있는 다르덴의 다큐멘터리들은 벨기에의 노동 운동, 특히 암울한 산업 지대인 리에주 지역에 초점을 맞추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노동 운동이 자본가와의 투쟁에서 결정적으로 패배했음을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
이후 극영화로 전향한 다르덴 세계의 초점은 이상적인 좌파 연대가 붕괴한 뒤 가속화된 자본주의의 확대, 과잉이 어떤 후과(後果)를 일으켰는가에 대한 예술적 탐구 작업으로 볼 수 있다. 탐구의 대상은 의식의 고취를 목표로 조직적으로 저항하던 활동가 그룹에서 일상적 생활사에 몰입된 개인으로 전환하게 된다. 플롯은 대개 하나의 중심 사건만을 좇는 경향이 있고 서사는 책임과 관련된 도덕적 질문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로제타〉, 〈프로메제〉, 〈아들〉(2002), 〈더 차일드〉, 〈로나의 침묵〉(2008), 〈언노운 걸〉(2016), 〈소년 아메드〉로 이어지는 필모그래피에서 우리는 노동자, 자동차 정비공, 목수, 미용사, 세탁소 주인 등 노동 계급 인물뿐만 아니라 사소한 범죄로 호구지책을 삼는 범죄자들, 쩨쩨한 사기꾼과 인신 매매업자, 밀매상과 대면한다.
다르덴은 행위자와 행위의 관계에 대한 관습적인 해석을 재고(再考)하고 도전하도록 자극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구축한다. 선과 악의 이분법에 의해 나뉘지 않는 작중 인물들은 그들의 행위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복잡성 때문에 딜레마를 일으킨다. 판단의 어려움은 도처에 있다. 하층민들이 돈에 의해 지배되는 환경 아래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관념으로부터 비롯된 연민 어린 시각을 캐릭터에 담아내면서 물질적, 사회적 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인물들이 가장 끔찍한 상황에서 때로는 부도덕하고, 때로는 숭고한 결정을 내리는 순간을 묘사하기 때문이다.
이상의 맥락에 따라 카메라의 위치, 카메라와 인물들 사이의 거리야말로 다르덴 영화의 형식적 효과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심리묘사 일변도 경향을 탈피한 장면 연출은 동기부여가 되지 않은 행위를 먼저 제시함으로써 상황에 대한 인식을 지연한다. 직접적인 공감이나 동일시보다는 행위의 파장이 미치는 반경 안에 카메라를 머물도록 함으로써 진행 중인 사태에 입회하여 체험하도록 하는 거리를 유지한다. 인물과의 거리는 관객이 사건에 대한 시야를 확보하도록 하면서 동정심을 갖기보다는 질문하도록 한다. 수많은 리허설을 통해 이루어지는 카메라의 운용은 인간 행위의 신비를 훼손하지 않고 현실의 모호성을 보존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아름답고 강렬한 우정을 그리는 인물들
관객들은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 감정에 완전히 도달할 수 없으며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굴절되는 말과 행위에 놀라기도 한다. 플롯의 최종적인 목표는 도덕적인 각성을 주는 것이다.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타자 철학에서 영감을 얻은 다르덴의 세계관 안에는 완전한 해피엔딩이 존재하지 않지만 냉소주의와 아이러니도 없다. 〈로제타〉에서 바닥에 쓰러져 자살을 시도하는 로제타를 일으켜 세우는 리케트, 〈아들〉에서 자신의 아이를 살해한 소년과 함께 나무판자를 포장하는 올리비에, 〈더 차일드〉에서 교도소에 수감된 브뉘노의 얼굴을 쓰다듬는 소냐의 손길 등 최후의 도덕적 행위가 없었다면 형제의 영화는 어떻게 되었을까? 〈토리와 로키타〉는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한 채 유럽에서 망명 중인 젊은이들이 겪는 폭력적이고 부당한 상황에 대한 고발을 담고 있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저들의 작은 우정과 연대, 두 사람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촉촉한 애정, 강력한 친밀감이다. 다르덴의 다른 인물들처럼 토리와 로키타는 비 동반 미성년 이민자라는, 미디어에서 정의한 이주민 이미지를 초월한 존재로 거듭난다.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한 이들이 서로를 어떻게 지키는가는 잔인한 세계의 풍경과 함께 이 이야기를 지탱하는 힘이다.
사라지지 않는 잔상을 남기는 이 영화의 결말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 독사의 구덩이 속으로 꺼져버리자마자 구제의 순간을 만들고자 안간힘을 쓴다. 꾸밈없이 등장인물들의 고군분투를 이끌고 그들이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하는 장애물과 제약을 그려내는 카메라는 이 지점에서 모든 수사와 거짓된 감정을 배제하고 사나운 역경에 맞서는 인간을 비춘다. 이 터무니없는 낙관주의는 가능한 것인가? 배신당한 우정이 아닌 아름답고 강렬한 우정, 신실한 우정이 당신의 의문에 답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