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란즈베르기스 MR LANDSBERGIS
감독 세르히 로즈니챠┃Lithuania, Netherlands, USA┃2021┃248min┃마스터즈
세르히 로즈니챠의 신작 다큐멘터리 〈미스터 란즈베르기스〉는 한 인물의 증언을 통해서 리투아니아가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는 과정을 펼쳐놓는다. 영화는 리투아니아의 음악가, 정치인, 독립운동가 등으로 널리 알려진 비타우타스 란즈베르기스의 인터뷰 영상과 리투아니아의 독립운동을 기록한 파운드 푸티지를 교차편집해서 보여준다. 말과 이미지, 기억과 기록, 과거와 현재 등을 교차하는 방법을 활용함으로써 이 영화는 빛바랜 과거를 복원하고 그것을 다시 현재로 통합하려고 한다.
역사의 가장자리에서
이 영화는 1990년 1월 11일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를 방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개혁 정책을 주도했던 고르바초프는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의 경제적 자율성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려 했으나, 정작 발트3국이 원한 것은 더 많은 자율성이 아닌 완전한 독립이었다. 세르히 로즈니챠는 독립에 대한 리투아니아 시민들의 열망과 그것으로부터 시작된 역사적 흐름을 여러 곳에서 수집한 파운드 푸티지를 시계열적으로 배열하고, 그 이미지들 사이에 란즈베르기스의 인터뷰를 삽입하는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이 거시적인 역사적 흐름 속에는 1988년 리투아니아 개혁운동 사유디스(Sąjūdis)의 결성, 1989년 200만 명에 달하는 발트3국의 시민들이 참여해 인간 사슬을 만든 발트의 길(Baltic Way), 1990년 리투아니아의 독립선언과 소비에트 연방이 리투아니아에 가한 경제적 봉쇄와 무력 침공,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 통해 관객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장기 지속된 소비에트 연방의 식민지적 통치와 그것에 맞선 리투아니아 시민들의 저항이 거리, 광장, 의회 등지에서 끊임없이 충돌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누군가의 삶을 영웅적으로 형상화하고 특정 사건을 기념비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이 작품의 관심사가 아니다. 비록 연대기적인 흐름을 따라가면서 일반화될 수 있는 이야기의 얼개를 제공하지만, 이 작품을 세부적으로 구성하는 말과 이미지는 문자화된 역사의 가장자리에 있는 것에 가깝다. 압제와 저항이 충돌하는 그런 격동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리투아니아 시민들은 거리에서 만난 다른 누군가와 손을 맞잡고, 촛불을 함께 들고, 소비에트에 의해서 금지곡으로 지정된 리투아니아의 국가를 함께 불렀다.
그들은 비평화적인 시위를 전개하면서 계급, 신분, 지위, 성별 등을 막론하는 토론의 장을 꽃피웠다. 물론 소비에트 연방의 무력 침공으로 유혈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그런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리투아니아 시민들은 맨몸으로 탱크를 가로막으면서 독립을 수호하려고 했다. 이처럼 이 영화는 리투아니아의 독립운동을 이끈 이름 없는 시민들의 주권적 말과 몸짓으로 이루어져 있다.
역사를 바라보는 태도
세르히 로즈니챠는 역사를 대하는 두 개의 시선을 가진 다큐멘터리스트이다. 한편으로 그는 아키비스트(archivist)의 시선으로 오래된 자료를 수집, 발굴, 선별하여 과거를 두텁게 복원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다면적이고, 입체적이고, 중층적인 역사를 관찰자의 시선으로 투명하게 바라보려는 태도를 고수한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그에게 영화라는 것은 역사에 대한 감각과 앎에 대해 무딘 관객에게 과거와 대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효과적인 도구였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