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야 바른 말이지 Citizen Pane
감독 김소형·박동훈·최하나·송현주·한인미·윤성호┃Korea┃2022┃67min┃코리안시네마
오프닝까지 포함하여 여섯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말이야 바른 말이지〉에는 눈에 띄는 제작 조건이 있다. 에피소드당 두 사람이 출연하여 한 장면, 한 장소에서 대화로만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러한 조건에는 꽤 전략적인 의도가 담겨 있다. 제작 여건상 최소한의 비용으로 연출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펼칠 수 있다. 무엇보다 두 명이 제한된 공간에서 풀어가는 에피소드 구조는 지금 한국사회의 갈등 양상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살필 수 있는 최적의 여건으로 작용한다.
‘을’과 ‘병’ 들의 대화
카페 문 앞에 자리한 2인용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본사 기업 직원과 하청 업체 대표가 마주하고 있다. 이들은 서로 자랑이라도 하는 듯 노조를 무력화하는 방법이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직원의 불만을 잠재우는 방법 등을 공유하며 대화를 이어간다. 장단이 맞아 분위기는 좋아 보여도 이들은 속으로 서로를 향해 회사내 하급자를 대하는 비열한 방식에 혀를 내두른다. 사람을 대하는 가장 천하고 너절한 방식임을 알면서도 약자를 희생하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의 태도에서 각자도생의 부작용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이 에피소드의 본사 기업 직원과 하청 업체 대표는 ‘갑’의 위치인 듯해도 실은 ‘을’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처럼 〈말이야 바른 말이지〉의 여섯 개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회적 신분은 ‘을’과 ‘병’에 집중된다. 동거 중인 청춘남녀가 이별을 앞두고 서로 짐을 챙겨 이사해야 하는데 새로 가는 곳이 좁아 키우던 고양이를 누가 맡아야 하는지 옥신각신한다. 서울에 사는 아버지가 광주에 신혼집을 차린 딸을 찾아가 지역 차별에 대한 날 선 공방을 벌인다. 이의 에피소드에는 한국사회의 갈등을 조장한 ‘갑’의 시스템에 관한 언급은 한마디도 등장하지 않는다.
사례별로 살펴보는 한국사회의 갈등 양상
시스템을 향한 문제 제기의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갑’이 시스템을 통해 갈등을 조장하고 손 놓고 있는 사이 최소한의 사회라고 할 수 있는 두 명이 모인 상황에서조차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붉히는 상황에까지 오게 됐는지를 사례별로 제시하여 접근을 달리한다. 작품을 보는 관객이 자신의 상황으로 느끼게 하고,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의도에 가깝다. 의도 없이 쓴 말이 혐오 표현으로 몰려 곤란을 겪는다든지, 남성 상사와 여성 부하가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성폭력의 상황을 녹여낸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이유다.
종교 문제로 선뜻 결혼에 이르지 못하는 커플의 사연은 다섯 번째에 위치한다. 갈등만 확인한 채 결별하는가 싶던 커플은 사랑을 희망 삼아 이들 관계를 옥죄는 상황을 이겨내리라 다짐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이 영화의 제목을 빌려, ‘말이야 바른 말이지’ 한국사회 곳곳에 촘촘히 펼쳐진 갈등 양상을 해결하는 건 사랑과 같은 사람을 향한 존중의 감정이다. 이 에피소드가 마지막인 여섯 번째에 위치하지 않은 이유는 해결 방법이 쉽지 않다는 의미일 터다. 그렇다면 우리는 평생 갈등 속에 살아야 하는가. 절망하며 살 건지, 더 나은 삶을 희망하며 노력할 건지는 결국, 우리에게 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