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라그프 튀르크Ragıp TÜRK | Turkiye | 2026 | 83 min | Fiction | 국제경쟁International Competition
튀르키예의 신예 라그프 튀르크의 첫 번째 장편영화 제목은 ‘돌과 깃털’이다. 지면 아래로 침전하는 현실의 중력과 그 힘을 거슬러 올라가 바람에 실려 공중에 떠오르는 희망이 나란히 배열된 제목이다. 이야기는 양육 시설에서 부유한 가정에 입양되기 직전인 열 살 아들을 되찾으려는 나지레라는 이름의 어머니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하지만 아이는 영화 내내 거의 보이지 않고 나지레는 시스템의 관습적인 언어와 무심하게 작동하는 폭력적인 시간과 싸워야 한다.
〈자전거 도둑〉(비토리오 데 시카)과 〈독일 영년〉(로베르토 로셀리니)이 촉발한 네오리얼리즘의 곤경 이래로 현대 영화는 새로운 장소에 거주하게 된 어린아이의 표상을 제기하곤 한다. 자전적 유년기를 허구에 담은 누벨바그와 프랑수아 트뤼포의 아이들, 〈엑소시스트〉(윌리엄 프리드킨)와 〈오멘〉(리처드 도너), 혹은 브라이언 드 팔마의 〈캐리〉와 〈분노의 악령〉에서 공포와 트라우마로 몸을 뒤트는 1970년대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어린아이들, 그리고 1980년대 이후 소마이 신지,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에드워드 양을 위시한 아시아 영화의 폭넓은 영토에 나오는 낯선 아이들과 미성년자의 표상이 있다. 너무 빠르게 어린 시절을 지나친 아이들, 성장 없이 어른이 되어 버린 듯한 유년기의 시간. 현대 영화의 새로움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시기는 영화 속 어린아이들이 거주할 만한 장소가 사라진 시기와 겹친다. 〈돌과 깃털〉은 아이가 머물 수 있는 장소를 되찾기 위한 투쟁의 과정이다.
라그프 튀르크는 〈돌과 깃털〉에서 가로로 긴 시네마스코프 화면을 선택했지만, 공간 전체가 완전히 드러나는 화면은 거의 묘사되지 않고 인물들은 모두 숨 막히는 자기만의 밀실에서 치열하게 부딪히는 것만 같다. 영화 속 인간들은 그런 단절의 틈새에 존재한다. 이 같은 시각적인 단절은 영화 내내 감지되는 이중의 단절과 직결된다. 하나는 어머니인 나지레가 어린 아들과 물리적으로 단절된 상태를 가리키고, 또 다른 하나는 물리적인 단절을 일으킨 보이지 않는 시스템과의 단절이다. 〈돌과 깃털〉에서 모든 인간은 고통스러운 현실에 직면하고 가족들과 헤어질 수밖에 없지만, 왜 그토록 냉엄한 현실을 마주해야만 하는지 알지 못한다. 당면한 현실은 그것이 현실일 뿐이라는 동어 반복을 반복할 뿐이다. 영화의 역할은 단절 앞에서 절망을 지시하는 일이 아니다. 영화의 의무는 단절을 넘어선 새로운 만남과 삶의 장소를 되돌려 주는 데 있다.
〈돌과 깃털〉의 첫 장면은 국가의 조사를 피하기 위해 늙은 어머니를 침대 밑에 숨기는 인상적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곳은 고통스럽고 숨 막히는 공기와 중력이 인간을 짓누르고 있지만, 영화가 찾아낸 기묘한 도피의 장소이기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 나지레는 마침내 비좁은 실내 공간을 벗어나 바깥으로 도주해 어느 숲속의 나무로 향한다. 그는 부화되기 직전의 알이 담긴 새 둥지를 본다. 마치 늙은 어머니를 감싸던 이불과도 같은 둥지. 그곳에서 태어날 새끼. 나지레는 카메라를 유심히 바라본다. 모든 단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려 나왔지만, 그는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