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미지수〉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한다면, 두 가지 쉬운 방법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이 영화 속의 비현실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이 영화의 현실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방법이다. 전자의 경우 이 영화는 6년간 사귄 연인 우주의 잇따른 살인으로 곤란에 처한 미술학원 강사 지수의 이야기로 시작해야 한다. 후자의 경우 이 영화는 ‘우주’라는 인물을 불의의 죽음으로 잃게 된 ‘지수’와 ‘기완’의 이야기다. 그리고 위의 두 가지를 종합한다면, 꽤나 적절하고 일반적인 설명이 완성될 것이다. 그러나 그중 어느 것도 〈미지수〉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될 수는 없다. 이 영화는 현실과 비현실의 접붙이기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과 비현실을 정확히 이분하기는 어렵다. 가령, 매번 우주 속에서 표류하는 꿈을 꾸는 기완에게 그 꿈은 현실인가 아닌가? 그에게 식은 땀을 흘리게 하고, 잠결에 말소리를 내게 하는 그 꿈은 현실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비현실인가? 이 문제는 우주를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지수의 이야기 속에서 더 미묘하고 복잡해진다. 살인과 시체유기라는 상황은 의도적으로 아주 ‘현실적으로’ 그려지고, 하여 그것이 ‘비현실’이라는 것을 관객은 영화를 다 보고나서야만 알게 된다. 그러나 지수의 상상이든, 혹은 그녀가 경험하는 환영이든 간에, 그것이 완전히 현실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영화적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기 어려운 이와 같은 곤란함은 앞서 말했듯 이 영화가 취하고 있는 접붙이기의 방법에서 비롯된다.

 

접붙이기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식물을 인위적으로 만든 절단면을 따라 이어서 하나의 개체로 만드는 재배 기술”이다. 〈미지수〉는 세 가지 측면에서 이러한 접붙이기의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먼저 꿈과 현실의 접붙이기. 기완은 우주 속에서 산소가 부족한 상태로 우주(space)에서 표류하는 악몽을 꾼다. 그가 그런 악몽에 시달리는 것은 2년 전 자신이 경영하던 치킨집에서 배달원으로 일했던 우주를 죽음으로 이끈 사고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다. 여기서 ‘우주’라는 기표는 영화상에서 꿈과 현실을 잇는 “인위적 절단면”으로 기능한다.

 

접붙이기의 두 번째 방법은 이야기의 합리성과 비합리성 사이에서 이뤄진다. 이는 특히 어이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우주의 이야기에서 도드라진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죽인 친구와 어머니의 시체를 전 애인의 집으로 데려오기까지 한다! 그 광경을 목도하는 지수의 반응은 이에 대한 관객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다. 놀다가 슬쩍 밀쳐서, 잔소리하는 어머니를 뿌리치다가 살인을 저지르게 된 우주는 절친한 친구와 혈육인 어머니가 죽었는데도 큰 죄책감이나 동요를 보이지 않고, 지수는 무서우면서도 어이가 없고 황당할 따름이다. 이러한 두 번째 차원에서의 접붙이기를 성공적으로 만드는 “인위적 절단면”은 바로 지수라는 인물의 존재다. 현실감 없는 우주의 이야기에 중력을 부과하고, 그것을 “사실주의적”인 차원으로 자꾸만 끌어내리려 하는 힘은 바로 지수의 일상과 그녀가 살고 있는 집, 우주에 대한 그녀의 반응들에서 연원한다.

 

마지막 세 번째는 CG와 실사의 접붙이기로, 이는 영화 막판에 등장하는 우주 어머니의 사격 장면에서 이뤄진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지수를 따뜻이 안아주던 우주의 어머니는 난데없는 총소리를 듣고 황급히 베란다로 나가 거기 놓여 있던 총을 들고 바깥을 향해 사격한다. 베란다 창 너머로 보이는 건너편 아파트의 상단은 외부의 공격으로 인해 허물어져 있고, 어머니는 마치 자신의 집을 방어라도 하는 것처럼 외부를 향해 총을 겨누며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에게 그것은 일상인 것처럼 보인다. 이때 건너편 아파트 외벽의 허물어지는 모습은 명백히 CG 이미지이다. 집 안쪽의 지수에게까지 흩어지는 건물 잔해의 파편들이나, 먼지 역시도 CG로 처리된 것일 테다. 해당 시퀀스에서 CG 이미지와 실사의 접붙이기는 인물의 상태와 상황을 드러내는 효과적인 방식으로 기능한다.

 

꿈과 현실, 합리성과 비합리성, CG와 실사. 〈미지수〉의 방법은 이 세 차원에서의 접붙이기다. 이 접붙이기의 과정이야말로 이 영화가 관객들 앞에서 살아낸 시간이고 형식이다. 우주와 지수의 이야기, 그리고 우주 속에서 점차 숨을 잃어가는 기완의 이야기라는 일종의 내용은 이러한 방법(더 나아가 형식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을 주조하는 동시에 그 방법에 의해 정향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