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 골딘. 낸 골딘. 낸 골딘!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를 보고 나면 그의 이름을 나직이 부르며 경배를 보내고 싶어진다. 이것은 화려했던 자신의 경력 전부를 걸고 박물관의 권위와 대결한 한 여성 예술가의 회고록이자 잘 알려진 인물의 비밀스럽고 사적인 순간을 포착한 전기이며, 무엇보다도 고통의 세월을 잊지 않은 한 인간이 세상에 끼치는 영향력에 대한 감동적인 보고서다.

 

1970년대부터 맨해튼 로어이스트사이드의 지하를 떠돌며 드랙퀸, 레즈비언과 게이, 섹스하는 청년들을 찍었던 야행성의 작가 낸 골딘은 1985년 발표한 사진 슬라이드쇼 작품 ‘성적 의존에 관한 발라드’(the ballad of sexual dependency)를 기점으로 미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최전선에 선 작가로 호명되어왔다. 2020년대 들어 그는 미국 제약회사 퍼듀 파마의 소유주인 새클러가(家)의 명예를 박탈하기 위해 급진적 행동주의 운동을 펼친 액티비스트로도 수식되기에 이른다. 퍼듀 파마가 대거 로비를 통해 아편계 진통제인 옥시콘틴을 미국 전역에 퍼트린 결과 1999년부터 2020년까지 약 5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오피오이드 사태 속에서 골딘 또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1984년 연인에게 얼굴을 심하게 구타당한 후 진통제의 마약 성분에 오랜 시간 의존했던 작가는 “중독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믿는 이들의 행동 연대 P.A.I.N(Prescription Addiction Intervention Now)를 꾸려 미국 메트로폴리탄, 구겐하임, 프랑스 루브르 등 주요 미술관에서 거액 기부자인 새클러가의 이름을 퇴출하는 운동에 몰두한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오렌지색 플라스틱 약병을 손에 쥔 골딘과 친구들이 차가운 미술관 바닥에서 시체처럼 나뒹구는 풍경을 기록하는 동시에, 작가의 전성기 사진 작품들과 미공개 영상, 인터뷰 등을 병렬한 한 편의 거대한 슬라이드쇼로 완성됐다.

 

미 국가안보국의 무차별적인 감청을 고발하는 전 CI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 활동을 옮긴 다큐멘터리 〈시티즌포〉에서 그랬듯, 로라 포이트러스 감독은 이번에도 직업적 자살 행위를 자처하는 어느 다윗의 싸움을 독창적이고 감동적으로 묘파한다. 영화가 조용히 주장하는 바, 낸 골딘의 인생에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없었다. 무심한 투로 소름 끼칠 만큼 뜨겁게 솔직한 낸 골딘의 목소리는 그 자신이 성 노동자로 일하는 동안 기록한 은폐된 언더그라운드의 풍경, 성 정체성을 부정당한 뒤 기차 선로에 누워 자살한 언니 바바라와의 추억, 폭행당해 피멍으로 얼룩진 셀프 포트레이트, HIV 양성인 동료 예술가들과 기획한 에이즈에 관한 전시 등에 대한 치열한 해제(解題)가 되어준다.

 

1985년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자신의 ‘불량’한 나날들이 담긴 약 800장의 사진에 직접 해설과 음악을 곁들여 장당 3초씩 45분간 상영했던 낸 골딘은 이후 꾸준히 이미지에 느슨한 연속성을 부여하는 상영 형식을 추구함으로써 시간과 감정을 조율하는 효과에 심취했고 비디오 작업에도 뛰어들었다. 1950년대부터 2020년대를 관통하는 이 다큐멘터리의 시간 역시 골딘의 슬라이드쇼 작품들이 그랬듯 정지하기를 주저하며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 작품과 삶의 타임라인을 전환한다. 그 가운데 골딘이 직접 선곡한 목소리들—클라우스 노미, 스크리밍 제이 호킨스, 마리아 칼라스 등—이 정돈되지 않은 육체성으로 무장한 낸의 사진 속 인물들을 향해 쓸쓸히 노래하거나 비명지른다. 요컨대 대상이 되는 예술가의 미학을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흡수한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우리가 예술가를 이해하는 데 있어 오직 그의 작품이면 충분하다는 명제를 메타적으로 수행하고 있기도 하다.

 

낸 골딘의 시위 현장과 오래된 사진 일기가 주는 모든 아름다움은, 흥건한 피의 역사 위에 서 있다. 로라 포이트러스 감독은 자기 영화의 걸출한 주인공을 섣불리 장악하려 시도하지 않는 대신 이 기구한 사진작가 안에 내재한 생존자로서의 고독과 절박한 연대 의식만큼은 힘있게 길어 올린다. 낙인과 차별, 자본주의적 소외 속에서 죽어간 성 소수자와 중독자들이 작가의 사진 속에 여전히 생동하는 모습으로 붙잡혀 있다는 사실은, 제약 왕조의 몰락을 이끈 감격스러운 성취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복잡한 슬픔의 덩어리를 프레임 밖까지 미끄러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