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도 루이스 베르가라는 불운한 감독으로, 그의 유일한 다큐멘터리 〈로시오 Rocío〉(1980)는 저주받은 영화로 알려졌다. 하지만 알레한드로 알바라도 호다르와 콘차 바르케로 아르테스 두 감독은 베르가라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가 남긴 자료와 미완의 프로젝트를 열람하고 조사한 후 베르가라라는 인물과 그의 영화에 담긴 진실과 저항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새롭게 창조한다. 망각의 세월을 견뎌 내며 투쟁적인 삶을 살았던 한 감독과 지하에 머물던 역사와 시간, 민중의 죽음과 상흔이 새롭게 발굴되고 존엄을 되찾는다. 그 긴 과정을 직조한 두 사람의 미학적 방법과 태도가 궁금했고, 아주 진솔하고 굳건한 답변을 받았다.


〈저항의 기록〉은 페르난도 루이스 베르가라의 〈로시오〉와 그가 남긴 방대한 메모, 노트에서 출발하지만 베르가라가 가지 못한 길을 잇고, 그가 멈춘 곳에서 다시 시작한다. 베르가라에 대한 헌사와 미완성 프로젝트를 발굴해 새롭게 재구성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결심한 계기를 듣고 싶다.

민주주의 시대에도 검열을 당한, 안달루시아 영화의 신화로 여겨지는 〈로시오〉를 알고는 있었지만 학술 연구를 하기 전까지 〈로시오〉나 페르난도를 실제로 접한 적은 없었다. 페르난도를 만난 것은 계시와도 같았다. 그가 거주하던 포르투갈타운을 방문했더니 며칠간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해주었는데, 우리는 그가 열정적으로 전하는 이야기와 추억을 주의 깊게 듣는 것 외에는 한 게 없었다. 안달루시아 출신이라는 공통점 외에 별다른 유사점은 없었으나 고독하게 살면서도 본인 작품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여전히 세상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품고 있던 그의 모습에 깊이 공감했다. 실은 첫 만남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구상 중이던 프로젝트 (자택 인근 판아스케이라의 텅스텐 광산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합류를 권했고, 우리도 작업을 함께 추진하려고 했지만 그는 1년 후 타계했다. 페르난도의 포르투갈 친구들이 정성껏 보관해 온 그가 남긴 미완성 영화의 자료, 각본, 메모 등을 공유해 주었고 우리는 미완성 프로젝트들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로시오〉는 부당한 검열 피해 문제를 떠나 훌륭한 작품이었고, 우리는 그 작품과 감독을 ‘저주의 서사’에 가두어 온 이미지를 깨뜨리고자 했다. 제작의 근본적인 원동력은 감독에 대한 깊은 애정이었고 우리는 그의 정치적 프로젝트들에도 공감했다. 따라서 오늘날 그의 작업을 이어 가는 것은 정의로운 행동이자 아름다운 창작 행위라고 믿는다. 그것은 또한 안달루시아의 새로운 세대 영화인으로서 그의 배턴을 이어 받는 길이기도 하다.

 

〈로시오〉와 그가 남긴 노트에 희생자가 호명된다. 〈저항의 기록〉의 첫 장면에 등장한 묘지, 베르가라의 영화에 등장하는 이름들, 당시 민중의 얼굴과 축제 행렬에 모인 사람들, 광장에 모인 이들, 구호를 외치는 자들의 얼굴이 두 감독이 찍은 촬영본에서도 이어진다. 모두가 이름을 돌려주고 그들을 기억하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프랑코 독재에 희생된 사람들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거와 현재를 이어 가고, 베르가라의 작업이 둘의 영화를 통해 이어진다. 민중의 이름과 얼굴을 중요하게 다룬 이유를 듣고 싶다.

〈로시오〉는 내전으로 이어진 쿠데타 직후 수개월 동안 파시즘에 의해 살해되거나 실종된 수많은 이들의 이름을 복원하고 열거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사료로 간주된다. 수십 년간 독재로 인해 이 주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었지만, 페르난도와 그의 팀이 어렵게 수집한 사진들이 있었기에 기록의 흔적으로 남은 사람들, 그들의 이름과 존엄, 그리고 이미지는 〈로시오〉뿐 아니라 〈저항의 기록〉에서도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영화 말미에 1936년 학살 피해자의 아들이자 당시 탄압의 목격자인 구십 대 노인 두 명이 등장한다. 그중 한 명인 마누엘은 〈로시오〉가 검열받게 된 재판에 대해 언급하면서 희생자와 가해자의 이름이 모두 기재된 명단을 카메라 앞에서 보여 준다. 그는 법정에서 해당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며 “민중이 그렇게 말한다”고 회고한다. 우리는 〈로시오〉 편집본에서 제외되었던 영상을 발견하고 오디오가 사라진 영상 속에서 조용했던 마을 주민들의 얼굴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이를 〈저항의 기록〉은 물론 이전에 만든 단편 〈데카르트 Descartes〉(2021)에서도 사용했다. 그리고 오늘날의 저항의 형태를 나타내면서 우리 역사와도 직결되어 있는 다른 얼굴들을 촬영하고 싶었다. 공공장소에서 젠트리피케이션에 항의하며 노래하는 리스본 시민들의 클로즈업이나 존폐 위기에 놓인 파나스케이라 광산에서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한 노동자들의 얼굴이 〈로시오〉의 폐기된 장면에서 나오는 유령 같은 이미지와 시각적으로 맞닿는다.

 

〈저항의 기록〉은 네 개 영화 제목을 각각의 챕터로 해 구성된다. 각 챕터에 다양한 푸티지와 두 사람이 찍은 영상이 삽입되면서 점점 테마가 확장되는데, 이런 구조를 취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페르난도가 남긴 수많은 프로젝트들 가운데 잠정적이긴 하지만 우리의 현재를 더욱 명확히 드러내고 오늘날 집단적 관심사와 연결될 수 있는 작품을 발전시키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세 편의 영화와 하나의 전시 프로젝트였다. 〈오텔루를 대통령으로 Otelo a Presidente〉는 페르난도의 첫 프로젝트로 1976년 포르투갈 대선에 출마한 오텔루 사라이바 드 카르발류의 선거운동을 다룬 중편 다큐멘터리다. 〈과달키비르 Guadalquivir〉는 안달루시아를 관통하는 강을 주제로 한 영화로 ‘기원으로의 회귀’라는 주제를 논의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세 사람을 위한 하나의 정어리 Uma Sardinha para três〉는 페르난도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구상했던 광산 관련 다큐멘터리이며, 《우엘바와 우엘바 La Huelva y La Huelva》는 개인적 및 정치적인 기억을 다룬 실현되지 못한 전시 프로젝트로 〈로시오〉와도 연관되어 있다. 사실 각본 작업의 초기 단계부터 〈로시오〉에 가해졌던 검열 문제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기도 해서 프랑코 정권의 억압과 학살이 남긴 깊은 상처를 다시 다루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상처는 오늘날까지도 스페인에 남아 있으며 민주주의 체제조차도 피해자들과 스페인 사회 전체를 위한 정의로운 치유를 이끌어 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형식적으로 자유롭고 유동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비록 〈저항의 기록〉은 페르난도의 미완성 작업들을 구조적 기반으로 삼고 있지만, 우리의 의도는 경직된 틀을 따르지 않고 영화가 마치 스스로의 생명을 지닌 것처럼 유기적으로 발전해 나가도록 하는 데 있었다.

 

베르가라라는 인물을 다양한 각도와 매체를 통해 접근한다. 베르가라의 사적인 편지와 프로젝트에 대한 끈질긴 메모도 놀랍지만, 두 사람이 파편적으로 구성하는 배열 또한 흥미롭다. 다양한 길에서 한곳으로 모여드는 방식이 아니라 분절된 채로 덧대어 놓는 것 같은데, 하나의 흐름을 따라가는 대신 다양한 길을 통해 베르가라가 남긴 유산을 실천하려고 결심한 이유를 듣고 싶다.

우리는 페르난도의 영화를 이해하고 〈로시오〉가 직면했던 검열 재판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그의 실제 삶에 가까이 다가가는 게 필수적이라고 믿었다. 한때 우리는 보다 ‘순수한’ 영화 에세이 형식을 취해야 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의 미완성 영화 세계에 대한 추측에만 집중하고 페르난도라는 사람 혹은 ‘캐릭터’로서의 그를 배제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런 접근은 차갑고 지나치게 이론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는 영화란 무엇이어야 한다는 특정한 관념, 특히 오늘날 많은 영화제에서 보이는 영화의 양식에 기반한 단순한 스타일적 실험으로 끝나는 결과를 원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있어 페르난도의 삶은 결코 부차적인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그의 작업이 왜 미완으로 남게 되었는지 어느 정도 설명해 주는 단서였다. 노동자 계급 출신이었던 그의 배경은 영화가 검열된 이후 왜 아무런 지지도 받지 못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그를 고립으로 이끈 연대의 부재 또한 설명해 주었다. 파편적인 구성은 그의 유산을 계속 이어 가되, 그의 필모그래피를 완전히 봉인하는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 했던 우리의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애초부터 우리를 유산의 전달자, 그의 작품을 되살릴 수 있는 매개체로 여겼고, 그의 작품 활동이 아주 구체적인 이유로 매우 특정한 권력 주체들에 의해 단절되었으며 그로 인해 복원과 정의 실현이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는 점을 결코 잊지 않았다.

 

두 사람은 기록에만 치중하지 않고 다양한 매체적 실험을 통해 베르가라의 작업을 재해석한다. 특히 애니메이션에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에 비해 비구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유해 발굴 현장인데, 두 사람이 얼마나 겸손하고 정성껏 대상을 대하는지 느껴졌다. 이 장면들에서 디졸브나 이중인화를 사용해서 특별한 순간을 만드는데, 기억과 시간과 죽음이 현재 정치적 저항과 이어지는 것 같았다.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다양한 형식적 시도와 디졸브의 사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각각의 프로젝트는 저마다 고유한 미학적 논리를 지니고 있었으며 이러한 다른 세계들이 상호 대화를 이루면서 〈저항의 기록〉의 미학을 형성하게 됐다. 우리는 특히 16mm에서 사용되는 디지털 포맷의 특정 무균 상태 사이의 충돌에 관심이 있었다. 이는 단지 아카이브 자료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촬영한 ‘기억의 장소들’, 그러니까 〈로시오〉에서 언급된 실종자들이 매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간에서도 발견된다. 디지털 포맷의 깔끔함이나 중립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시간이 지나며 변한 것도 사실이다. 이는 예측 불가능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다재다능한 디지털 이미지를 디자인하는 데 도움을 준 촬영감독 라켈 페르난데스 누녜스 덕분이기도 하다. 페르난도의 삶의 단편들을 되살리기 위해 사용한 그의 문서와 개인 사진은 비자연스러운 색채와 솔라리제이션(solarization, 감광) 효과를 통해 몽환적인 질감을 띠게 되었다.

상상력의 차원은 영화에서 매우 강력한 요소로 작용한다. 우리는 정치적이고 아름다운 (시각적인 측면에서도)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시각성이 어떻게 회복 가능한 유토피아를 말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런 의미에서 광산을 다룬 애니메이션 시퀀스는 〈저항의 기록〉의 가장 초기 초안에 포함된 장면이었으며, 우리에게는 상상력과 허구적 구성이라는 개념을 구현하는 장치였다. 광부들의 형상을 점구름으로 분해함으로써 노동과 신체의 본질에 대해 성찰하는 장면이 되었는데, 이는 짧은 생을 앞두고 착취당하는 상황에 대한 묘사다. 또한 역사와 현재를 공유하는 많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서로 등을 돌리고 있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광산에서 집단 무덤까지 지하로 가로지르는 여정을 가능케 했다. 또 이중인화와 디졸브로 지리적·시간적으로 멀게 느껴질 수 있는 장소들을 연결할 수 있었다. 다른 경우에는 이러한 효과를 통해 1936년 알몬테에서 벌어진 범죄의 가해자들, 그러니까 “도살자”라 불리는 탄압의 주체들과 밀고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로시오〉 제작 노트와 같은 페르난도의 일부 자료들의 기록적 성격과 증거를 부각시킬 수 있었다.

 

베르가라의 노트나 편지를 낭독하는 목소리가 남성과 여성이 주고받는 대화거나 함께 부르는 노래처럼 들린다. 다른 챕터로 넘어가면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도 등장한다. 낭독 음성과 사운드 사용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사운드스케이프는 이 영화 미학에서 핵심적인 요소이다. 소리는 페르난도의 자료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표현의 도구로 작용하며 관객과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한다. 그 속에 우리 목소리도 있는데 둘이 합쳐져 서로를 보완하고 때로는 겹쳐지고 때로는 메아리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리고 페르난도의 프로젝트들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은 놀라움을 실시간으로 함께 발견하는 느낌을 준다. 우리 목소리는 다양한 기능을 가지는데, 가장 분명한 건 우리가 관객을 페르난도의 유산 속으로 이끄는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각 문서의 출처와 코드를 인용해서 그의 미완성 프로젝트들을 일종의 목록으로 구성하는 다소 차가운 방식의 기록을 만들어 보는 것도 시사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법의학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더라도 이 영화를 만들고 있는, 또 실제로 페르난도를 만났던 우리 자신이 그 안에서 드러나야 한다는 게 중요했다. 낭독에는 끊임없는 망설임이 드러나며 때로는 속삭이듯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 사이의 어딘가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느낌을 만든다. 우리는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로 낭독했는데, 양국 간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고 페르난도 자신처럼 이베리아적인, 스페인‐포르투갈적인 영화를 만드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목소리를 쓴 것과 가끔씩 겹치는 부분을 사용한 것은 영화의 근간이 되는 삼각형, 페르난도와 우리가 맺고 있는 연결성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저항의 기록〉은 역사와 기억과 정치를 실천하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베르가라를 향해 가는 순례 여정 같다. 단순히 순례에만 그치지 않고, 두 감독만의 재구성과 해석을 통해 베르가라에게 배우고 느낀 것을 실천한다. 이 순례 여정에서 무엇을 발견하기를 바랐나.

우리에게 영화는 삶의 매우 중요한 일부이기에 우리 사생활과 프로젝트를 통해 얻는 경험 사이에 어떠한 경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영화를 하나의 모험이자 삶의 경험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이며, 순수한 영화적 의미에서의 실험의 장으로 인식하고 있다. 페르난도의 프로젝트에 몰입하면서 우리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과 그 시대의 종언과 같은 순간으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었다. 혁명의 상징적 인물 중 한 명인 오텔루 사라이바 드 카르발류를 만났고, 그에게서 정치적 맥락과 프로젝트 실패라는 점에서 페르난도의 모습을 보았다. 〈저항의 기록〉은 거의 장인적인 방식으로 천천히 숙성된 영화로서 많은 불안정성을 다루고 있는데, 바로 그 점이 페르난도와 같이 1970년대 중반 포르투갈 혁명 과정에서 등장한 영화 협동조합과 연계되어 독학으로 영화를 배운 노동자 계층 영화인이 영화 제작과 이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데 겪었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묘지에서 시작한 영화가 어둠에서 끝난다. 2010년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여정에 긴 시간을 들여 방대한 자료를 꼼꼼히 조사하고 직접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현장을 찾는 과정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한 편의 다큐멘터리로 재탄생했다. 무엇보다 〈저항의 기록〉은 관객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테마에 대한 다양한 접근과 파편적인 구성, 매체의 실험과 시적인 아름다움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두 감독의 방법론이 궁금하다.

우리에게 조사는 영화의 확고한 기반이다. 철저한 조사 덕에 표현 방식과 가능성들을 발견했고 결국 그것들이 이 영화를 ‘꿰매고’ 형태를 갖추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과정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수공예적인 방식으로 작업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러한 영화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시간은 영화의 퍼즐 조각을 하나씩 맞추어 가는 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였다. 우리는 〈저항의 기록〉에서의 작업을 하나의 고고학적 과정으로 본다. 서로 다른 지층을 파고들며 탐구했고, 그로부터 발견한 것들이 추후에 서로의 연결 고리를 드러냈다. 실제로 이 영화의 많은 부분이 지하에서 이루어진다. 〈로시오〉의 자료들은 스페인 국립영화원 지하에 보존되어 있고, 광부들은 지하에서 일하고, 희생자들 역시 지하 집단 매장지에 묻혀 있다. 제작 중반에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각본을 작성하였고 이때 이미 구조적 결정들과 몇 가지 상상한 시퀀스들이 포함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계속 조사하면서 예상치 못한 새로운 자료들을 편입시키고 영화 속 이미지를 구성할 시각성과 자율성을 발견했다. 요약하자면 우리만의 ‘작업 방식’이란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시간을 들이는 것, 즉 ‘과정에 대한 시간의 축적’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때로는 일반적인 제작 기준에서는 과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우리에게는 영화 창작자로서의 경험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