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화Erotic Blossoms in a Dream
감독 오지현OH Jihyeon | Korea | 2026 | 96 min | Documentary | 한국경쟁Korean Competition
“음란한 이미지, 네거티브 이미지, 은밀한 이야기.” 감독에 따르면 제목 ‘음화’는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가리킨다. 영화는 음화라는 단어의 여러 의미 자체를 구조 삼아 신체를 탐색해 나간다. 소문에 휩싸인 채 보이지 않는 몸, 으깨지고 절여지고 파먹히고 썩고 소각되고 박제된 몸, 그리고 “고통을 통과하면서 다른 상태로 이행”하는 몸. 치밀하게 구성된 꿈속에서 시공간을 뛰어넘은 그 모든 몸들이 서로 연결된다.
간략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음화〉를 연출한 오지현 감독이다. 고등학생 시절 작가 영화에 매혹되어 영화감독의 길을 결심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며 영화 미학을 탐구했고, 무용을 함께 전공하며 신체에 대한 감각을 확장했다.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에서 연출을 공부하며 작업을 이어 왔다. 작품과 이론이 하나의 몸처럼 결합되기를 바라며 영화 작업과 이론 연구를 해오고 있다. 이전 단편들은 전시 매체를 통해서도 발표했다.
이 작품의 출발점이 궁금하다.
이 영화는 구조적으로 재현되지 못하는 존재들을 어떻게 발화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이는 곧 ‘음화의 음화다운 발화 방식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나에게 음화란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통칭이었고, 시각적으로나 서사적으로 계속되는 재현의 바깥에 놓인 달의 뒷면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것이 이미 죽은 존재이든, 눈앞에 살아 있는 존재이든, 기존의 재현 방식으로는 구조적으로 은폐될 수밖에 없는 뒷면의 몸들을 이야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실험 영화를 공부해 오던 중 신체 뒷면의 역사를 따라가기로 했고, 그것이 〈음화〉의 출발점이 되었다. 후반부의 파운드 푸티지 작업부터 먼저 시작했는데, 제작 순서 자체가 무언가를 거꾸로 거스르는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후반부 작업에 착수하던 시기에 16mm 단편 〈이 밤의 도착〉을 작업하고 있었고, 이 작품 역시 〈음화〉의 중요한 전초가 되었다. 그 안에는 여성의 음화와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의 도착이 등장하며, 필름 수작업을 통해 촉각성, 빛, 그리고 도착에 대한 또 다른 서사적 접근을 시도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음화를 여러 층위에서 작동시킬 단서들을 체득할 수 있었다.
이후 음화의 의미들이 너울처럼 펼쳐지는 감각 속에서, 평소 애정을 두고 탐구해 온 기생과 같은 존재들이 영화의 구성 요소로 들어오게 되었다. 결국 〈음화〉는 음화가 지닌 다층적인 의미 자체를 구조로 삼아, 그에 걸맞은 발화 방식을 사유하려는 시도였다.
한편 나 자신의 이야기 역시 이 작업과 무관하지 않다. 나는 감독이 자신의 삶을 직접적으로 서사화하는 방식의 영화를 잘 신뢰하지 않는다. 내가 소화한 고통이든, 소화하지 못한 고통이든 그것이 사회적 텍스트로 단순히 환원되는 과정에 늘 의문을 가져 왔다. 그렇기에 이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고통이라는 정서 자체라기보다, 그것이 하나의 구조로 어떻게 조직될 수 있는가였다. 고통을 하나의 구조로 조직하고 그것의 발화 방식을 성찰하는 과정이 이 작품의 중요한 맥락이었다.
영화에서 몇몇 단어가 동음이의어로 중첩되거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과정이 에로티시즘의 반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음화’라는 제목이 그러한 특징을 보여 준다. 제목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고 싶다.
한글 제목 ‘음화’는 음란한 이미지, 필름의 네거티브 이미지, 그리고 은밀한 이야기를 동시에 가리킨다. 전반부는 은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음화의 서사적인 측면을, 후반부는 음란한 이미지를 중심으로 음화의 시각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의미는 서로 분리되지 않고 전반부와 후반부에서 깊이 결속된다.
또한 ‘음화’는 작품 전체를 통해서 발화하는 꽃이기도 하다. 이를 영문 제목(Erotic Blossoms in a Dream)으로 명시했다. 이 영문 제목은 에로티시즘이 왜 꿈속에서 꽃피울 수밖에 없는지를 되묻기도 한다. 여기서 에로티시즘은 드러나지 않은 신체와 지연되는 감각 속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꿈속에서 가능한 일체화를 통해 연결에 이르는 상태로 이해했다.
이렇게 〈음화〉는 에로티시즘을 꽃피우는 ‘음화’들의 발화를 탐색하는 작품이다. 물질적 수난을 거친 기생의 비가시적 신체는 복숭아, 기생충, 필름이라는 물질적 은유로 연결되고, 곧이어 79편의 실험 영화를 네거티브로 재구성한 파운드 푸티지로 이어진다. 다큐멘터리적 재료들을 영매적인 수행으로 연결하며, 시적이고 마조히즘적인 음화만의 발화를 서사화하려 했다.
필름에 변형을 가하며 작업한 부분이 특히 영화에서 말한 ‘고통의 물질화’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기법과 관련해 어떤 고민과 기술적 실험을 거쳤는지 궁금하다.
복숭아를 사용한 필름 작업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영화에서는 “베이고 잠기고 불타고 묻혔으며 끝내 증발했다”라는 문장에 따라, 복숭아를 자르고 으깨고 가루와 반응시키는 과정을 거친 뒤 필름 작업으로 이어 가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때 필름 작업은 파이토그램 기법을 변형한 것으로, 원래는 식물을 특정하게 처리한 뒤 광합성으로 필름에 프린팅하는 방식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과육과 섬유질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고, 광합성이 불가한 과육의 특성상 처음부터 미세한 무늬를 얻기는 어려웠다. 1~2개월간 복숭아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과육의 결을 프린팅할 방법을 찾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복숭아 작업 과정이 고통의 물질화로 읽히기를 바랐고, 물질이 부서지고 변형되는 과정이 또 다른 물질인 필름 위에 어떻게 체현되는지를 고민했다.
후반부는 79편의 실험 영화를 이어 붙인 파운드 푸티지 형식을 띤다. 수많은 푸티지를 수집하고 분류하고 편집한 과정이 궁금하다.
전체 제작 기간 2년 중 먼저 후반부 작업에 1년이 소요됐다. 처음에는 1백 편의 영화를 수집했고, 수집에는 약 6개월이 걸렸다. 이후 편집을 거치며 최종적으로 79편이 사용되었고, 후반부 편집도 초기 3시간 분량에서 1시간을 거쳐 최종 44분으로 압축되었다.
수집 과정도 쉽지 않았다. 실험 영화는 자료 접근성이 낮고, 기존의 목록을 따르기보다 ‘신체 재현의 경계’라는 기준을 스스로 설정해 작품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선택 기준은 지속적으로 갱신되었고 동시에 자기 검열도 동반됐다. 또한 실험 영화를 공부해 온 입장에서도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작업들이 많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영화를 수집해야 했고, 그 과정은 영화를 향한 열정에 의탁하는 시간으로 남았다.
편집 방식 역시 일반적인 구조와는 달랐다. 79편의 영화에서 장면을 단순히 발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영화 안에서도 여러 부분을 나누어 가져오며 재구성했으며, 이는 컷과 신의 구분이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실험 영화의 특성과 맞닿아 있었다. 결과적으로 개별 작품의 맥락보다 전체적인 시적 톤과 흐름을 구성하는 데 집중했다. 또한 약 90년에 걸친 시간적 격차를 지닌 서로 다른 이미지들은 해상도와 색감에서 통합되기 어려웠고, 이를 수평적으로 배치하면서 ‘흑백’과 ‘무성’이라는 형식적 장치를 설정했다. 비선형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신체를 중심으로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도록, 분절, 사랑, 폭력의 흐름과 접촉, 명상, 수행으로 이어지는 서정적 흐름이 교차하도록 구성했고,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앞으로 밀어내는 움직임을 만드는 것이 편집의 핵심이었다.
기술적으로는 디지털로 편집한 파운드 푸티지를 16mm 필름으로 옮기는 작업도 진행했다. 전체를 필름으로 프린팅하기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일부 분량을 필름으로 프린팅하고 다시 촬영하는 과정을 거쳤다. 다만 최종적으로는 디지털 이미지와의 접합 문제를 고려해 완성본에는 포함하지 않았다.
살아 움직이거나 사라진 많은 몸이 언급된다. 신체와 관련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들려준다면.
애초에 음화(원본)가 전제되어야 양화(프린트)가 성립할 수 있었던 아날로그 필름 구조를 떠올리면, 영화 제작의 출발 자체와 그 과정에서 전제된 몸의 방식이 이미 음화적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사실상 필름 이미지 역시 그것이 아닌 부분의 입자가 화학 반응을 통해 탈락하고 남은 잔상이다. 이미지의 반대로 달의 뒷면에 해당하는 입자들이 어딘가로 사라졌고, 그것들이 다른 물질로 변형되어 갔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꽃이 사라지고 열매가 나고, 열매가 사라지고 다시 꽃이 피듯이, 모든 신체는 서로를 품으며 소멸과 생성의 과정을 반복한다고 느낀다. 자기 자신 또한 고통을 통과하면서 다른 상태의 신체로 이행할 수 있다. 이러한 체화된 고통을 주체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감각을 마조히즘이라고 생각했고, 고통의 기술 역시 자기에게로 다른 존재를 들여오거나 이입하는 마조히즘적 방식 속에서 비로소 왜곡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앞에서 작품과 이론을 한 몸처럼 해왔다고 말했는데, 작품 논문을 작성하면서 〈음화〉를 여러 층위에서 마조히즘적 영상 예술로 정의해 보기도 했다.
다만 이 작업에서 신체는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대상이라기보다 끝내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다뤄진다. 신체는 필름의 물질성, 흔적, 소리, 공간, 네거티브 이미지 같은 요소로 치환되거나 우회되며 감지된다. 앞서 전초가 된 〈이 밤의 도착〉이 있었다면, 다른 전작 중 〈골절과 습진〉에서도 신체를 직접적으로 제시하기보다 공간과 누수 같은 요소를 통해 우회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드러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끝내 드러나지 않느냐이며, 에로티시즘 역시 드러남이 아니라 지연된 시각의 결핍 속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관심을 둔 실험 영화 감독이 있는지.
실험 영화 감독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두지는 않는다. 장르적 구분과 관계없이 오랜 기간 작가 영화를 보면서 취향을 형성해 왔다. 다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특정 감독을 지속적으로 참조하거나 애호하는 시네필적 방식이 잘 들어맞지 않는다고 느낀다. 〈음화〉의 경우에도 실제로 레퍼런스를 찾지 못하기도 했고, 특정 작품이나 작가를 레퍼런스로 삼아 작업하지 않았다. 오히려 작가 영화를 계속 공부해 오면서 그 안에서 스스로 소화할 수 있는 요소들은 취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자연스럽게 걸러지거나 다른 형태로 빠져나가게 되는 과정에 가깝다. 나에게 남는 것은 의도적으로 참조한 계보라기보다, 축적된 감각이 변형되어 드러나는 방식인 것 같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근래에는 파얄 카파디아Payal Kapadia 감독이 사용하는 구조화 전략과 육체성에 공감을 느껴 왔다. 이것이 영화적 전략에 대한 관심이라면, 시네필적인 입장에서 좋아하는 국내외 극영화 감독들도 분명히 있다. 한편 역사적 맥락에서 흥미롭게 접해 온 실험 영화 감독들도 있다. 비엔나학파와 관련된 감독들이나 여타 신체적 표현을 전면화한 작업들에 관심을 가져 온 바 있으며, 일본의 핑크 필름 내 형식적 실험이나 급진적인 신체 재현을 시도한 감독들의 작업도 함께 언급해 볼 수 있겠다.
첫 장편 연출작을 완성했다. 다음 작품이 궁금하다.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다루고 싶은가?
개인의 신체적 감각이 역사를 어떻게 감지하는지에 관심을 두고 있다. 여기서 역사는 거대한 역사뿐 아니라 자신이 지나온 삶의 역사까지를 포함한다. 학부 시절 한국 무용을 복수 전공 했는데, 개인이 감지하는 역사적 파편들이 특정한 움직임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이 체화된 움직임은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몸들과 현재의 나를 잇는 감각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적 파편들은 꿈의 원리와 닮아 있으며, 나는 나의 영화 제작 방식을 ‘꿈속 재생’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는 즉흥적인 흐름이라기보다 오히려 더욱 치밀하게 구성되어야 할 서사적 방식에 가깝다. 앞으로도 역사와의 미세한 접촉, 그리고 그 접촉 속에서 발생하는 에로티시즘적 연결을 탐색하는 작업을 이어 가고자 한다. 그런 관점에서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