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지법 성남지원 앞 대로변의 한 법무사 사무소. 각종 법률 문서가 빽빽이 들어찬 좁은 공간에서 법무사 아버지와 사무원 아들 ‘나’가 밤낮없이 일한다. 간판에 ‘개인 회생 및 파산’을 내걸었지만 법무사 본인 역시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졌고 그 빚을 갚고자 아들이 사무원으로 함께 일한 지 오래다. ‘거의 죽어 가다가 다시 살아남’이라는 회생의 사전적 의미를 보여 주듯 의뢰인들은 저마다 죽고 싶었다고 죽겠다고 말하곤 한다. 아버지도 그러했고, 아들은 무엇보다 그저 그의 곁에 있고 싶었다. 나와 타인의 고통이 뒤섞여 소용돌이치는 한복판에서 두 사람은 날마다 부딪치면서도 할 일을 계속해 나간다. 김면우 사무원은 되뇐다. “그냥 살자. 빚을 갚고 있다는 생각도 없이. 누군가를 살리겠다는 생각도 없이.” 그러다 보면 어느 날은 죽고 싶다던 의뢰인이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마움을 표하기도 한다. 사무원은 다만 그의 팔을 붙잡으며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마시라 할 뿐이다. 부자의 법무사 사무소는 타인을 살림으로써 나도 모르게 나를 살리는 통로처럼 보인다. 언제나처럼 사무소 업무로 정신없는 와중, 김면우 감독이 영화와 그 너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간략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법무사 사무소 9년 차 사무원.

 

법무사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그의 사무원이 된 ‘나’의 이야기이다. 이 일상을 영화로 담아야겠다고 결정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처음부터 아버지를 돕겠다는 결심은 없었다. 그저 곁에 있고 싶었고 무작정 사무실에 출근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누군가의 인생을 좌우하는 법률 문서를 직접 다룰 전문성이 없었기에 작성된 서류를 법원에 제출하는 일만 맡았다. 누군가를 위한다기보다 내가 먼저 살고 싶었다. 궁지에 몰린 이들을 지켜보는 일은 고통스러웠고, 그 고통을 어떻게 대할지 모르는 스스로를 먼저 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곳의 지난함을 모조리 기록한다면 괴로운 마음을 견딜 수 있지 않을까 믿었는데, 이는 언젠가 대단한 이야기를 만들어 무언가 얻어가겠다는 심산이었다. 

한번은 오늘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 보자며 하루를 통째로 글로 옮겨 보려 했다. 그러다 보니 하루가 다 지나 있었다. 졸리면 엎드려 자고, 다시 쓰고, 결국 처음 일기를 쓰기 시작한 시점으로 되돌아왔다. 24시간이 흘렀다. 손과 얼굴엔 검은 때가 잔뜩 묻어 있었고, 이유 모르게 계속 눈물이 흘렀다. 하루 내내 하루를 기록하려고 해도, 이 삶이란 글이나 말로 차마 전할 수가 없구나. 사소한 이치를 겨우 들여다보았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괜찮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기록으로 외려 주어진 삶과 거리를 두게 될 수도 있기에, 애써 무엇을 담으려 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사무소 일에 내가 먼저 담기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담을 수 없었다. 나를 먼저 내던져야 했다. 평일 야근과 주말 근무가 당연한 것이 되었고, 어느덧 사무소의 웬만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무원이 되어 있었다. 2023년, 영화를 잊고 지내던 사무원 6년 차, 오히려 그때야말로 영화를 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직접 중심인물 중 하나가 되어 가깝고도 먼 사람을 담아냈다. 촬영하는 동안 가장 어려웠던 점, 고민되었던 점은 무엇인가.

아버지가 카메라를 의식하실까 걱정했다. 하지만 막상 의식하는 건 나였다. 아버지는 카메라가 있든 없든 똑같았다. 내게는 그런 자연스러움이 없어 처음에는 중심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가장 어색했다. 촬영이 있는 날이면 나의 부자연스러움이 걱정이었다. 예컨대, 나는 원래 생활비를 아끼려 주로 라면을 먹는데, 촬영 감독님이 나를 찍는 상황에서는 평소의 일상마저 하나의 설정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가족과 사무소의 이야기를 동시에 하려면, 그 접점에 있는 내가 화자가 되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받아들여야 했다. 

무엇보다 채무 문제로 오시는 의뢰인분들을 어떤 방식으로 담아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분들은 저마다 복잡한 사정을 짊어지고서 어렵게 이곳을 찾는다. 분명히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방문하신다. 방문하시는 분들께 이곳에서 촬영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설명은 드려도, 결코 가벼운 의도로 하는 일이 아니라는 점까지 전달하기는 어려웠다. 자신의 채무 문제를 처리하는 사무원이, 옆에 있는 법무사가 다른 누구도 아닌 아버지라고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얘기까지 하면서, 심지어 그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담고 있다는 상황은 누구라도 좀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사무원으로서 내가 의뢰인에게 다른 목적을 가진 듯 보일 수 있다는 점이 늘 마음에 걸렸다. 그저 일을 정확하게 해결해 주는 것 말고는 다른 역할이 없는데 말이다. 한편 감독으로서는 이 공간을 어떻게 찍을지 내내 고민해야 했고, 그 선택과 판단을 촬영 감독님께 맡긴 채 사무원 일에만 집중할 수도 없었다. 그 간극에 머무는 일이 어려웠다.

 

아버지와 함께 일하며 그의 빚을 갚겠다는 결정은 단지 자식 된 도리, 혹은 책임만으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법무사님’이 아닌 아버지는 당신에게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

도리나 책임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미 내재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붙여진 개념에 가깝기 때문이다. 단순한 걸 바랐다. 다만 평안을 바랐다. 어떻게 이 빚에서 벗어날까, 귀책이 상대에게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은 종국엔 괴로움이 된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도리나 책임을 차마 입에 올릴 수가 없다. 반대로, ‘그래, 다 갚아 보자’라는 단순함이 오히려 평안을 주었다. 어쩌면 빚의 중압감이란 건 애초에 없었고 이미 평안했던 것일지 모르는데, 적법한 채무를 방치해도 된다거나 위법한 채무를 갚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내 살에 가시가 박혔다면 분명 썩기 전에 빼내야 한다. 그 과정이 빚을 천천히 갚는 일이든, 억울함을 바로잡는 일이든. 

상당수의 도산 사건을 다루며 느낀 건, 과도한 채무에는 그에 앞선 원인이 있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빚더미에 앉은 사람은 없다. 내적 결핍이나 가족의 불화가 선행되면서 그 균열이 외부의 문제를 형성한다. 아버지도 이를 오래 참았다. 그는 공부를 잘했고 그 틀 안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고 믿은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틀에서 이탈하게 되면서 방황을 겪었다. 쌓여 온 것들을 풀어낼 계기를 만나지 못했고, 더군다나 자기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착한 사람이다. 그런 그와 싸울 때 가장 평안하지 않았다. 화를 참지 못하고 욕지거리가 튀어나올 때마다 괴로웠다. 그렇다면 문제는 채무 그 자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상태와 관련된 게 아닐까 싶었는데, 어쨌건 그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도와달라 한 적도 없고 내가 도망간다 해도 나를 원망하지 않을 사람이다.

 

중반 이후 어머니 이야기가 등장하면서부터 불교적 사상이 영화를 감싸는 배경처럼 스며든다. 절에서 성장했던 유년기는 어떤 시간으로 남아 있나? 당신에게 불교는 어떤 의미인가?

부모님은 살아 계셨지만 없는 것처럼 느껴져 외로웠고, 평범한 부모를 바라며 꽤나 몸부림쳤다. 그래서 불교를 참 미워했다. 그럼에도 불교는 그런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언젠가 자신도 버려져야 할 방편에 불과하다고 한다. 매주 절에서는 49재가 이어졌고 상복을 입은 사람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자리들이 끊이지 않았다. 기억에 남은 당시의 풍경은 대개 그와 비슷한 장면들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삶의 무상함을 가까이에서 지겹도록 지켜봤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지금 느끼는 고통에 과연 실체가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불교에 관한 나의 생각과 느낌이 변해 왔듯이 모든 건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불교에 대해 잘 모른다. 이런 말들 또한 어디선가 주워들은 것이다.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조차 그에 가깝다. 

 

‘나’는 다방면으로 아버지를 돌본다. 그의 빚, 일, 관계, 삶 자체를. ‘돌봄’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나로서는 일단 사무원으로서의 직업적 역할이 우선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족이기 때문에 업무의 경계를 넘어서는 서슴없는 말들이 오간다. 간혹 훈훈한 순간도 있어서, 이를 좋게 봐주신다면 돌봄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런 관계는 꽤 위험하다. 이만큼 해줬으니 이만큼은 되돌아와야 한다고 여기기 쉽기 때문이다. 기대가 어긋나는 순간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이 찾아든다. 언제든 원망으로 뒤틀릴 수 있고, 어떤 태도나 행동을 강요하는 식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돌봄은 보시와 같은 수행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만큼 내 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일도 없다. 보시를 한답시고 금세 싫증을 내며 은근히 대가를 바라는 자신을 보게 된다. 결코 쉽지 않다. 나는 매일같이 실패한다. 그리고 어쩌면 베푸는 사람보다 그렇게 할 기회를 내주는 사람이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승려가 탁발을 다니는 것도 누군가에게 보시의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주는 이에게 더 많은 것이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다. 

한번은 보장성 보험금이 압류된 어르신이 사무소에 찾아오셨다. 기구한 사정을 듣자니 수임료를 받을 수는 없었고, 압류 금지 채권의 범위 변경 신청을 무료로 도와드렸다. 일이 해결된 뒤, 그 어르신은 압류 해제로 찾은 자신의 보험금을 모두 내주려고 하셨다. 그 순간 어느 누가 주고받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내게 그런 기회를 주는 사람일지 모른다. 한때는 아버지 때문에 꿈을 포기했다며 불평을 품었지만, 결국 아버지 덕분에 영화를 찍게 되었으니 말이다. 원수 같은 사람을 끝끝내 은인으로 여기려는 과정,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돌봄이다.

 

다음 작품이 궁금하다. 앞으로 영화를 통해 무엇을 어떻게 다루고 싶은가?

아버지의 남은 빚부터 갚으면서 좀 더 다양한 작품을 보고 싶다. 그러면 새로운 영감과 상황이 찾아오지 않을까 한다. 나는 개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영화를 시작했기에 그 업이 깊이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자신을 카메라로 남기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언젠가 나의 유년을 보는 듯한 친구를 만나고 싶다. 그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