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도현 감독의 단편영화 〈고래사냥〉은 부산 아미동을 배경으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결합해 “분명 있었으나 없었던 것처럼 소멸한” 무언가를 다룬다. 먼저 감독 춘봉이 스태프들을 뒤로한 채 영화 가편집본을 들고 잠적한다. 조연출과 배우가 그를 찾아 아미동으로 향하는데 대체로 텅 빈 동네에는 사람이 살던 흔적만이 남아 있다. 한편 춘봉의 전작은 고래가 등장하는 아미동의 전설을 다뤘다고 전해지지만 해당 작품도, 이야기도 실체는 확인할 수 없다. 말은 떠돌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는 춘봉도, 영화도, 고래도 실제로 있(었)다고 믿어 볼 수 있을까? 그렇게 믿고 싶은 인물들의 바람과 없어진 것들을 들여다보는 영화의 시선 속에서 과거와 현재, 현실과 판타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이 뒤섞인다.


간략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고래사냥〉으로 찾아뵙게 된 류도현입니다.

 

영화 가편집본을 가지고 잠적한 감독을 찾기 위해 배우와 조연출이 길을 나선다. 어떻게 구상하게 된 이야기인가? 

대학교 1학년 때 워크숍 수업에서 영화를 만들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상영을 못 한 적이 있다. 힘든 시기에도 팀원끼리 으쌰으쌰 하면서 재밌고 열심히 만들었는데 공허한 마음이 들었다. 분명 영화가 있었는데, 상영을 못 하니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던 기억이 있다. 

더불어 그해에 영화를 하나 연출했었다. 내 기대에 한참 못 미쳐서 스스로에게 큰 실망을 안겨 준 영화였다. 그 영화를 교내 영화제에 제출해 상영해야 하는 상황이 왔는데 그때 너무 도망치고 싶었다. 내가 만든 작품이란 사실을 외면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 그런 순간들과 기억들이 한데 모여 4년 후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을 배경으로 삼은 계기는 무엇인가? 또 각본을 쓸 때 배경 설정은 어느 단계에서 이뤄졌는지 궁금하다.

배경 설정은 시나리오 초기 단계에 이루어졌다. 애초에 영화의전당에서 진행하는 ‘미래내일일경험’ 프로젝트를 계기로 〈고래사냥〉을 만들게 되었는데, 그쪽에서 요구하는 바가 부산 지역을 잘 살린 영화였다. 비슷한 시기에 내 관심사 중 하나가 부산이 겪고 있는 인구 소멸 위험이었고 그와 관련해 탐색한 결과 배경이 아미동으로 좁혀졌다. 

그 밖에도 부산의 많은 지역이 인구 소멸 위험을 겪고 있었으나, 아미동이라는 동네가 지닌 역사가 나를 이끌었다. 아미동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의 공동묘지였던 곳으로, 해방 이후 피난 온 사람들이 판자를 지어 살며 형성된 마을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이야기가 ‘분명 있었으나 없었던 것처럼 소멸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였기에 아미동이 배경으로 딱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과 학생과 마을 주민이 출연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을 적극 활용하셨는데, 이를 통해 어떤 효과를 기대했는지 들어 보고 싶다. 또 마을 주민들의 경우 어느 정도 정해진 대본이 있었는지, 혹은 질문을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하다. 

먼저 시나리오에 있어야 할 요소들을 임의로 적어 봤다. ‘마을에 청년이 없고 노인들만 있다는 것’, ‘마을과 고래를 연관 지어 질문하고 반응을 보기’, ‘마을에 일본인들의 묘지, 비석이 있다는 것’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런 요소들을 영화 속에 넣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질문했다. 그리고 그 장면들을 영화에 실제로 넣음으로써, 단순히 이야기를 전제하는 수단이 아니라 부산이 겪고 있는 문제를 전하는 매개로도 활용하고 싶었다. 동시에 아미동이라는 마을만의 특색도 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상영하지 못한 영화를 찾는 이야기도, 배경도, 마을 주민들도 모두 실제이기에 지금과 같은 형식으로 찍고자 했다. 

 

말은 떠돌지만 실체는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춘봉, 춘봉의 영화, 고래는 하나로 연결되는 듯하다. 그 셋의 관계에 관해 말씀해 주신다면.

이 영화는 상영되지 않은 영화에 관한 이야기이며, 분명 있었으나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 존재에 관한 이야기였다. 춘봉도 그렇고 춘봉의 영화, 그리고 고래도 마찬가지이다. 셋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하나로 보이기를 바랐다.

 

바닷물 같은 비와 OMF 파일 속 숨소리 등을 매개로 〈고래사냥〉과 영화 속 영화가 맞물리면서 그 둘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또 점차 과거와 현재, 현실과 판타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의 경계가 흐려진다. 이 기묘한 중첩을 표현하기 위해 무엇에 중점을 두었는지 들어 보고 싶다. 

(가편집본을 찾으러 다니는) 우진이 자신이 영화를 했던 과정이 헛되었다고 느끼지 않기를 바랐다. 그가 치열하게 만들었던 영화가 어딘가에는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싶어 마지막에 숨소리를 넣었다. 촬영하며 땀도 흘리고 거친 숨을 내뱉은 순간이 영화를 하는 과정에서의 노력을 집약해 보여 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그 숨소리가 마지막에 이 영화의 주제를 드러내면서 현실과 소망을 중첩해 보여 주었으면 했다.

 

연기를 계속해도 된다는 증거를 찾으려는 배우는 사라진 영상을 “직접 보기 전까진 안 믿을래요”라고 하고, 이제 영화를 그만두려는 조연출은 그것이 마지막 작품이기에 “존재한다고 믿고 싶어요”라고 한다. 두 인물과 같은 영화인으로서 감독님은 지금 영화 작업과 관련해 무엇을 믿거나 믿지 않는지, 혹은 무엇을 믿고 싶은지 궁금하다.     

영화는 결과에 비해 투자되는 것이 너무 많다. 영화를 찍으며 바친 시간과 돈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기껏해야 몇십 분의 영상물이다. 이 영상물도 대개 우리에게 성취감을 안겨 주지 못하고 그저 그런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다음에 또 노력을 쏟아붓는 이유는, 어린애처럼 기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난 또 바보같이 믿는다. 영화가 나에게 무언가를 가져다줄 것을.

 

지금까지 다섯 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어 오셨다. 앞으로 영화를 통해 무엇을 어떻게 다루고 싶은가?

앞으로라는 말은 참 어렵다. 다음 영화로는 졸업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영화과를 다니면서 겪은 경험과 느낌의 일부분을 담고 싶다. 일단 거기까지만 생각했고, 앞으로 내가 영화를 만들지 못 만들지도 알 수 없으니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