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일지Sales Log
감독 강민아KANG Mina | Korea | 2026 | 25 min | Fiction | 한국단편경쟁Korean Competition for Shorts
강민아 감독의 단편영화 〈영업일지〉의 주인공 도은은 화장품 방문 판매를 하는 30대 여성이다. 차가운 가을비가 내리는 밤, 그는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동창생 민희와 마주친 뒤 자기 집에서 한잔하고 가라는 갑작스러운 초대에 응한다. 어쩌면 화장품을 팔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그로부터 며칠 뒤 민희의 어머니가 도은의 일터를 찾아 전혀 예상치 못한 소식을 전한다. 생계를 꾸리는 일에, 또 자기 자신에게 사로잡혀 타인을 보기 어려웠던 도은은 그렇게 우연한 계기로 민희의 이야기에 얽혀 들어간다.
영화는 타인의 진심을 알려고 할수록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만 알게 되는 아이러니와, 진실을 알 수 없기에 믿고 싶은 대로 믿었다가 겪게 되는 혼란을 세밀히 그려 낸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타인을 알려고 부단히 애쓰고 실패해 본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는 무언가가 분명히 반짝인다. 이 작품으로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한 강민아 감독은 “앞으로도 서툰 사람들이 세상과 부딪히며 조금씩 변해 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고 말한다.
간략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안녕하세요. 〈영업일지〉를 만든 강민아입니다. 반갑습니다.
방문 판매를 하며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 가던 도은에게 예상치 못한 만남, 예상치 못한 소식이 닥친다. 어떻게 구상하게 된 이야기인가? 또 주인공의 직업을 방문 판매원으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 시작은 ‘딴생각하느라 제대로 듣지 못한 친구의 말이 사건이 되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나는 대화 중 집중력이 흐트러져 상대의 말을 반만 이해하거나, 뒤늦게 맥락으로 짐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무심한 대화 습관을 누구나 그럴 수 있는 웃기는 소재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25년, 뉴스에서 한 사람의 자살 소식을 접하게 됐다. 그 죽음의 원인을 두고 주변 사람들이 서로 다른 해석으로 다투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바로 곁에 있던 사람들이 저렇게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나의 ‘웃기는 소재’가 떠올랐다. 만약 가까운 사람이 속마음을 털어놓은 뒤 세상을 떠났다면, 나는 그 말을 제대로 들었을까? 어쩌면 뉴스 속의 그 사람이나 내 곁의 사람이나, 내가 진실에 대해 모르는 건 매한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적 거리의 차이가 아니라 나의 무심함이 문제였다.
거기서부터 이야기의 뼈대를 다시 세우게 됐다. 타인의 죽음과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예상치 못한 계기를 통해 깊숙이 엮여 들어가는 이야기로. 도은을 방문 판매원으로 설정한 이유도 이와 연결된다. 방문 판매원은 낯선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야 하는 직업인 동시에, 서로의 욕망과 필요를 매개로 관계를 맺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우연한 만남이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얽혀 들어가는 이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시작과 끝을 비롯해 영화 전반에서 비가 내리고, 도은은 빗속에서 각각 민희, 선배, 민희 어머니를 마주한다. 쏟아지는 비의 이미지와 사운드를 통해 무엇을 보여 주고 싶었는지 들려주신다면.
〈영업일지〉를 보고 관객들이 슬픔을 느끼길 바랐다. 다만 이야기 자체가 주는 슬픔보다는 감각적인 차원의 슬픔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영화 속 비는 ‘초가을의 비’를 떠올리며 준비했다. 여름비와 달리 기온이 내려가 차갑게 느껴지고, 긴팔옷으로 갈아입는 시기라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는 불쾌함도 있다. 사람은 계절과 날씨에 민감한 존재다. 날이 좋으면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꿉꿉한 날에는 괜히 센치한 음악을 찾기도 한다. 그래서 초가을비의 감각을 잘 구현한다면 관객들도 자연스럽게 인물들의 정서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민희, 도은, 수정의 마음을 비슷한 눈높이에서 바라봐 주길 바랐다. 엔딩에서의 비로는 모두가 같은 비를 맞고 있다는 공감의 감각을 전하고 싶었다.
민희와 도은의 만남이 건조하게 기록된 영업일지를 보여 주는 화면은 곧 두 사람이 민희의 자취방에서 실제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그 시간에는 도은이 민희 어머니에게 설명한 것과도, 영업일지에 쓰인 것과도 또 다른 진실이 담겨 있는 듯하다. 어떤 의도로 이 시퀀스를 삽입했는지 여쭈고 싶다.
그 시퀀스는 민희가 편의점에서 사 온 케이크를 예쁜 접시에 담아 도은에게 내어주는 순간부터 시작한다. 둘은 술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점점 취해 가고, 자연스럽게 웃음이 이어진다. 하지만 영업일지를 통해 떠올리게 된 그날의 웃음은 민희의 죽음으로 인해 물건을 팔기 위한 영업용 미소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영업일지〉에서 플래시백은 순서상 이미 비극으로 귀결된 뒤에 떠올리는 기억이기 때문에, 도은은 기억을 되짚어 결정적인 단서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그 안에 답은 없고 알려고 하면 할수록 모른다는 것만 알게 되는 아이러니 속에서 점차 죄책감과 자괴감에 휩싸여 간다.
그러나 그날은 매번 문전박대를 당하던 도은이 환영받으며 타인의 집에 들어간 날이었고, 민희 역시 첫 손님을 위해 아껴 두었던 것을 꺼내 놓던 기쁜 날이었다. 영화가 끝난 후 도은이 다시 이 기억을 떠올린다면, 그때는 더 이상 죄책감으로 얼룩진 기억이 아니라 그저 좋았던 순간으로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퀀스는 하나의 의미로 규정되지 않는, 중의적인 기억으로 남도록 연출했다.
경계하고 날 서 있는 내면을 포장하지 않고 내뱉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소통의 가능성을 여는 도은의 캐릭터가 무척 인상적이다. 도은이라는 인물을 구축하고 대사를 쓰고 구현하는 데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도은이라는 인물을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지점은 그가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너무 사로잡혀 있어서 타인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도은의 대사가 꽤 많았는데,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먼저 구구절절 변명하고 상대의 마음을 들어 보기 전에 이미 자기식대로 해석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 태도는 결국 도은을 옥죄어 온다. 민희에 대한 기억을 되짚을수록 도은은 민희보다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물건을 팔 생각에 들떠 있던 자기 모습, 외면하고 싶었던 욕심과 비겁함이 자꾸만 눈앞에 나타난다. 그래서 오히려 민희를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도은은 계속해서 민희를 알려고 한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또 하나의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는데, 나는 그것이 그런 시간을 견뎌 낸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발견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도은의 변화는 자신의 혐오하는 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는 과정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진심이란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과 추측을 내놓는다. 이 작품에서 진심은 가장하는 것, 아닌 줄 알면서도 속아 주는 것, 자세히 들여다봐야 알 수 있는 것, 끝내 알 수 없는 것, 사실은 있었을지도 모르는 것 등으로 보인다. 영화에 진심의 어떤 면모들을 담고자 했는지, 또 그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거쳤는지 궁금하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지만 진심만큼은 ‘끝내 알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죽은 사람의 진심을 알아내기 위해 도은과 수정이 발버둥 쳐도 결국 그것이 맞다고 답을 알려 줄 민희는 없다. 남겨진 사람들은 각자 믿고 싶은 대로 믿을 수밖에 없고, 나는 오히려 그 믿음이 깨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그려 보고 싶었다.
그래서 시나리오 단계에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도 결말이었다. 이야기의 구조상 민희의 진심을 어떤 방식으로든 밝혀야 할 것 같았지만, 유서의 내용을 보여 주거나 증거들을 조립해 하나의 정답에 도달하는 방식만큼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엔딩 시퀀스에서 민희가 보고 있던 게 명함이라는 사실이 등장하면서 도은이 믿고 있던 것이 무너진다. ‘내가 민희를—’이 아니라 ‘왜 민희가 나를—’로 주체가 바뀌는 것이다. 그 순간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비로소 민희의 주체성이 드러난다. 민희는 어떤 해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 자신만의 하루를 보냈다는 사실 자체. 그것이 우리가 닿을 수 있는 최대한의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봄매미〉, 〈국물은 공짜가 아니다〉, 〈레몬썸머〉 등 여러 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어 오셨다. 그중 이번 〈영업일지〉는 감독님의 작업 이력에서 어떤 의미를 띠는 작품인가?
작품을 찍고 나면 생각보다 많은 게 바뀌는 것 같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낯선 환경을 경험하고, 이전과는 다른 시야를 갖게 된다. 그래서 작품마다 인생의 좌표를 직접 찍으면서 걸어가는 기분을 느끼는데 〈영업일지〉 역시 새로운 영역이었다.
평소에는 콘티를 같이 떠올리면서 시나리오를 쓰는 편이라 초고 이후로 수정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인데, 〈영업일지〉는 유독 정말 많이 뒤엎었던 작품이었다. 스토리업 멘토셨던 윤가은 감독님의 영향도 컸고, 시나리오를 심연까지 이해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다. 이 시나리오를 써내면 장편도 쓸 수 있을 거라는 미신 같은 마음으로 달렸던 것 같다. 정말 마지막 단편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다음 작업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해준 작품이 된 것 같다.
다음 작품이 궁금하다. 앞으로 영화를 통해 무엇을 어떻게 다루고 싶은가?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는 일에 서툴고 세상을 아직 잘 모르는 사람들이 세상에 부딪히면서 깨달음을 얻어 가는 과정이 가장 감동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누군가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순간에 마음이 움직이는데, 어쩌면 남들이 보기엔 당연한 사실일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 당연함이 처음으로 크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그런 서툰 사람들이 세상과 부딪히며 조금씩 변해 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