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는 여전히 무언가를 ‘본다’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도록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한발 물러나게 한다. 한발 물러서면 나타나는 것은 영화를 위해 작동하는 특수한 기계 장치, 그 기계 장치로부터 산출되는 다른 현실, 그리고 다른 현실을 함께 목격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가 본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선 다시금 그 이미지 속으로 걸어 들어가 방랑을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보기를 멈추지 않고 ‘본다’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까? 그것이 우리의 앎을 구성하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다른 현실적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기계 장치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우리는 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


〈포에버…포에버〉는 22개월 동안 고정된 시점으로 오텐슈타인 저수지를 촬영한 작품이다. 저수지는 초반부에는 평범하고 익숙한 풍경으로 보이지만, 영화가 전개될수록 하늘(날씨와 천체)을 추상적으로 반영하는 바탕이 되어 간다. 영화를 보고 나면, 저수지는 빛이 작용하는 인공적인 장소로서의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메타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번 작품은 군사 시설로 사용되었던 캘리포니아 모리스 저수지를 다루었던 당신의 과거 작품 〈RECONNAISSANCE〉(2012)와는 또 다른 관점에서 저수지를 다루었다고 생각하는데, 이에 관해 들어 보고 싶다.

이 영화는 거대한 시간의 규모를 포착하려는 시도다. 이때 인간이 만든 구조물을 시야의 중심에 두고자 했는데, 그래야 우리가 풍경과 더 수월하게 관계 맺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댐은 가장 견고한 건축물 중 하나로 자연의 힘을 상당한 수준까지 견뎌 낸다. 풍경을 변화시키고 오래된 강바닥을 씻어 내고 덮어 버리며 물과 땅이 만나는 선을 새로이 그린다. 수면 위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고 강의 역사는 물속으로 숨겨져 우리는 그것이 저 아래 어딘가에 존재하리라고 상상할 따름이다. 〈포에버…포에버〉에서 주요한 사건은 하늘 속 움직임과 빛이며, 호수의 거울 같은 표면을 통해 그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풍경이 아닌 추상적인 빛의 움직임이 드러나게 되는 것은 영화가 ‘가속’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프레임당 노출 시간이 (8초에서부터 시작해 24시간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으로 길어지는 구조적인 설계로 인해 생기는 효과일 것 같은데, 당신의 영화는 빠른 속도를 통해 현실에 대한 허구를 만들어 낸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줌 인/아웃을 사용한 강렬한 초기 작업 〈VERTIGO RUSH〉(2007) 또한 가속을 통한 허구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작업에서 ‘가속’은 무엇을 수행하고 또 의미하나?

‘허구’보다는 ‘경험’이라는 단어를 써보면 어떨까 싶다. 관객은 두 영화의 추상적인 부분을 무척 주관적인 방식으로 인지하며 저마다 느끼고 받아들이는 바가 다르다. 실제로 가속은 영화에 담긴 것과 같은 추상을 만들어 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우리의 감각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인간은 현재라는 통상적인 척도로 시간을 인지하는 데 익숙하다. 그 바깥에서 인간 존재를 넘어선 규모의 시간을 인지할 방법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포에버…포에버〉는 가속된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도록 해준다. 또 시간이 점진적으로, 나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고 또 빨라진다면 어떤 느낌이 들지를 경험하게 해준다. 영화는 화살처럼 한 방향을 가리키며, 나는 관객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가속된 시간의 흐름을 계속 상상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한편 그러한 가속이 상상 속에서 인위적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 카메라를 통해 실제로 촬영되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중요하다.

 

주제 측면에서는 당신이 오랫동안 탐구해 온 시각과 우주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엿보이기도 한다. 내가 처음 접했던 당신의 작품이 바로 영화에서 우주가 어떻게 묘사되어 왔는지에 대한 독창적인 탐구였던 〈★〉(2017)였는데, 그 작품을 보고 이미지에 대한 탐구는 우주에 대한 탐구와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이미지, 시각성, 영화, 우주에 관한 당신의 질문은 어떻게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나?

우주를 이해하는 일은 인간 존재에게 근본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시각과 청각은 주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지각의 수단이며 영화는 이 모든 요소를 한데 불러 모은다. 영화에 쓰인 우주 이미지의 역사는 인간이 어떻게 이미지를 가지고 연구할 수 있는지 보여 주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며, 우리는 과거의 다양한 이미지로부터 훨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한편 나는 우주의 더 먼 지점이나 미시적인 구조를 들여다보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 낸 도구들, 즉 시야 범위를 확장해 주는 장치들의 가능성에 가장 큰 매력을 느낀다. 이렇듯 이미지의 역사와 최신 기술 모두 〈포에버…포에버〉의 연구 과정과 콘셉트에 중요한 영향을 줬다.

 

이번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65mm 필름 카메라를 새롭게 발명했다고 안다. 이 장치를 고안하고 사용한 과정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

다양하게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다목적 도구로서 이번 촬영에 쓰인 카메라를 직접 만들었다. 이는 일반적인 카메라처럼 선형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각 프레임의 노출 시간을 변경함으로써 시간을 점진적으로 굴절시킬 수 있다. 하드웨어는 70mm 영사기의 스프로킷 롤, 대형 포맷 필름용 사진 렌즈, 모터, 센서, 컴퓨터 제어 장치로 이뤄져 있다. 단지 이번 프로젝트만을 위한 것은 아니고, 저마다 다른 구조를 띨 미래의 작품들에도 쓰려고 제작했다. 기본적으로 대형 포맷 스틸 카메라와 영화 촬영용 카메라의 하이브리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 카메라는 자동으로 빛을 측정할 수 있고, 알아서 작동하도록 프로그래밍할 수도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자연스레 마이클 스노우의 작품들이 떠올랐다. 한 지점을 오랫동안 주시한다는 측면에서는 파장(1967)이, 비인간적 시선으로 풍경을 본다는 측면에서는 중앙 지역(1971)이 떠오른다. 포에버…포에버와 관련하여 당신이 의식하고 있는 실험적인 영화의 역사적 맥락이 있는지.

물론 나는 언제나 마이클 스노우의 작업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

 

이 작품은 오디오-비주얼을 넘어서서, 신체의 통합적인 지각을 요구한다는 측면에서 근본적으로 영화관이라는 장소의 필요성을 강변한다고 느꼈다. 화면은 단지 이미지가 투사되는 곳이 아니라 빛의 퍼포먼스가 이루어지는 곳이고, 음악은 청각적 소리를 넘어 물질적 진동의 내러티브로 위치 지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당신의 영화는 ‘깊이를 통해 바라보기’에 대해 끊임없이 실험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당신의 영화가 영화관이라는 장소성을 지지하는 방식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영화관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내가 영화관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 공간이 우리의 감각에 꼭 맞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반사된 빛으로 이뤄진 영사 이미지는 장시간 보더라도 눈에 부담이 적고 필름의 입자 구조는 이미지에 깊이감을 만들어 내며 인간의 시각적 지각 방식과도 잘 어울린다. 우리를 둘러싸는 사운드는 섬세한 조율만으로 공간 자체를 극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영화관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모든 감각을 동원해 영화에 집중하는 데 동의하며, 그 대가로 사유하고 느끼고 영감받는 시간을 얻는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순환과 반복, 시간의 구조화는 이 작품을 비롯해 당신이 영화를 통해 탐구하는 가장 주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만약 ‘영원히… 영원히…’ 반복되고 지속될 수 있다면, 우리가 보게 될 것은 무엇일까?

나의 영화에 이미지의 반복은 결코 없다. 구조는 리듬 있게 전개되면서 항상 변주 속에서 작동한다. 매 사이클에는 어떤 변화가 포함되어 있는데, 때로는 명확하게 때로는 미묘하게 드러난다. 그런 방식을 통해 관객은 이미지와 사운드에 깊이 몰입하게 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놓쳤을 디테일을 발견해 낸다. 나 또한 내 영화를 매번 다르게 본다.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유동적이며 계속 변화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하고, 내가 이런 영화를 만드는 이유 중 하나는 관객이 무엇을 봤는지 들어 보고 싶어서다. 이따금 무척 놀라운 이야기들을 듣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