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핀Filme Pin
감독 마리아 로하스 아리아스Maria ROJAS ARIAS, 안드레스 후라도Andrés JURADO | Colombia, Portugal | 2026 | 8 min | Experimental | 영화보다 낯선Expanded Cinema
〈필름 핀〉은 발견을 기다리는 주체와 대상에 관한 시각 예술가의 작품이다. 8분의 러닝타임에 불과한 단편영화가 장구한 역사의 기록, 기억에 관한 에세이가 되도록 만드는 마법의 출발은 이웃이 다락방에서 발견한 배지를 보여 준다는 단순한 아이디어였다. 아카이브 자료로서 배지에는 망명과 정치 활동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마리아 로하스 아리아스, 안드레스 후라도 공동 감독은 배지의 기원에서부터 모양, 질감 그리고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숨겨진 이야기들을 탐사한다. 슈퍼 8mm 필름으로 촬영한 미니멀하고 매혹적인 이미지는 흔해 빠진 금속성 물건들을 재료로 하여 광활한 서사로 상상력을 확장한다. 표면과 이면을 비추는 렌즈, 촉각적인 조명은 작은 기념품을 사람들 간의 연대를 보여 주는 영화적이고 조형적인 오브제로 둔갑시킨다.
콜롬비아 출신의 시각 예술가이자 영화감독인 마리아 로하스 아리아스, 안드레스 후라도는 시각 예술, 영화 및 연극 프로젝트 연구소인 ‘라 불카니자도라La Vulcanizadora‘의 설립자이다. 영화, 예술, 아카이브를 통해 기억, 저항, 그리고 확장된 형태의 시네마를 탐구하는 두 감독에게 배지, 아카이브, 역사, 영화, 팔레스타인, 정치에 관해 물었다. 짧은 영화와 짧은 질문, 그리고 긴 대답으로 귀결된 인터뷰이다.
당신의 할아버지 집 다락방에서 발견한 배지 컬렉션에서 의미를 발견해 가는 〈필름 핀〉의 아이디어는 개인 아카이브의 맥락에 관한 참신한 영감을 제공한다. 영화의 발단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부탁한다.
무의미한 구분일 수도 있지만, 영화 속 할아버지는 우리들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할아버지다. 〈필름 핀〉에서 할아버지와 손녀, 두 인물은 점점 일종의 원형archetype이나 유령 같아지는데, 그래서 질문과 같은 혼선이 자연스레 또 흔히 발생하는 것 같다. 이 혼선은 유용하게 작용한다. 개인 아카이브는 집단 투쟁의 보관소이며, 배지는 본질적으로 민중들의 공통 역사에 속한 공공성을 함축한 물건이다. 개인 아카이브에 들어간 기념물은 바로 이 때문에 유동적이다. 더는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공동의 무언가에 참여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우리들이 포르투갈에 망명해 있을 때 시작했다. 우리는 동네 친구들을 몇 사귀었고 팬데믹 기간에 그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던 중 배지 상자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배지 주인은 40대 영국 여성으로, 우리는 그가 각 배지에 관한 기억을 말하는 동안 배지를 촬영할 수 있을지 물었다. 그를 카메라에 담을 계획은 전혀 없었다. 배지가 모든 것의 중심이었으며, 우리는 그와 함께 배지를 발견해 가며 그녀의 반응에 귀 기울였다.
몇 주 뒤 녹음기와 카메라를 들고 다시 방문했다. 인터뷰를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더 연극적이며 영화적인 태도를 가지고 오브제의 극적 속성을 끌어내고자 했다. 카메라를 설치하고 친밀한 느낌을 주는 작은 세트를 제작했다. 우리는 촬영 대상인 배지가 마치 주체이자 조각, 기억이자 욕망, 영화이자 소문이 되기 직전인 것처럼, 말 그대로 오브제로서 대했다. 촬영 자체가 프로젝트의 시작점으로, 이때 우리는 이미지를 극장 화면에 맞게 확대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배지 제작은 우리들의 프로덕션이자 연구소인 ‘라 불카니자도라’가 영화에 관해 소통하는 한 방식이기도 하다. 예전 작품인 〈야로카메나Yarokamena〉(2022)에서도 배지를 제작한 적이 있다. 배지와 같은 대중적이고 상징적인 사물을 활용해 영화를 스크린 너머 사람들의 손으로 확장하는 방식이 매력적이다. 〈필름 핀〉의 배지 컬렉션도 같은 방식으로 해석한다. 수집된 컬렉션은 사적인 것을 넘어 집단적 영역으로 진입하고, 아카이브이면서 동시에 아카이브라는 무게를 짊어질 의도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각각의 배지와 마찬가지로 컬렉션도 노동자, 서민, 그리고 영화감독을 포함한 민중의 수많은 이야기에 속한다. 이러한 해석은 수차례 상영을 거치며 계속 확인되는데, 많은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와 자신들의 집에도 가족 중 누군가 수집한, 유사한 컬렉션이 있다고 말한다. 이들 연대의 국제주의가 다락방 어딘가 상자 속에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E acho curioso porque não sei de onde vieram(이 기념품들이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재미있다)”라는 내레이션의 의미는 무엇인가? ‘기원을 알 수 없는 아카이브’가 당신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핵심적인 질문 중 하나다. 영화 촬영 덕분에 날조되지 않은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화자의 욕망을 반영한 기억을 지어낼 수 있었다. 화자의 목소리는 떠올림과 지어냄 사이에서 망설이며, 이 망설임은 일종의 오염된 기억, 무엇을 경험하고 회상하고 싶은지에 대한 투사가 깃든 기억으로 이어진다. 기억은 불멸이 아니다. 명백히, 화자는 배지에 대해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 오히려 화자는 배지들을 발견해 나가고 있으며, 우리는 바로 그 발견의 경험을 전달하고자 했다.
어느 시점에 화자는 그 사물들 중 일부를 예전에 촬영한 적이 있노라고 말한다. 실제로 촬영이 이루어졌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발언에서 우리는 어떤 욕망, 사물 안에 모인 단순함에 대한 깨달음, 촬영을 위해 사물을 연출하는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어떤 마음을 읽는다. 그 순간은 자신도 영화감독이 되고자 하는 화자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다. 눈앞에 다가온 미지는 호기심, 즉 탐구하고 지식을 나누고 기억의 시공간을 만들고 영화를 기념하는 마음을 통해 해소된다.
이 영화는 상기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상기와 소환의 대상은 그저 순수한 기억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기억이 개인적 욕망과 투사로 가득함을 보여 준다. 이처럼 배지가 집단적 서사를 지니며, 망명과 투쟁의 역사는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소유할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필름 핀〉의 정치적 작동이기도 하다. 아밀카르 카브랄과 만델라의 이야기, 유수프 살만 유수프나 모잠비크 해방 전선, 콜롬비아 학생 운동의 이미지 등은 공동의 기억이면서 개인의 기억으로, 무수한 연대의 장을 가로질러 공유된다. 〈필름 핀〉에서는 특정한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 위에 올라서 홀로 도드라지지 않는다. 영화는 서민적 사물과 대중적 이미지의 자기장을 품은 기억들을 소환한다.
배지들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에 관한 순수한 궁금증에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그것들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아 가는 작업이 되었다. 우리는 배지를 필름(영화) 속에 두기로 했다. 라 불카니자도라의 지향과 가장 가까운 영화제 중 하나인 전주에서 〈필름 핀〉을 상영하게 되어 영광이다.
다락방에서 발견한 배지를 모두 사용했는지 궁금하다. 선택적으로 사용했다면 그 근거는 무엇이었으며 영화에서 보여 주는 순서는 어떤 맥락에 의해 결정되었나?
두 번째로 방문했을 때 상자 속 배지를 전부 촬영했고, 현상 후 촬영본의 품질에 따라 일부는 편집 과정에서 삭제했다. 배지들이 작아서 초점을 유지하기 쉽지 않았다. 확대를 위해서는 수퍼 8mm 카메라와 호환되는 접사 렌즈를 이용했다. 배지 대부분을 목소리 내레이션의 전개와 영화를 통해 전하려는 바에 따라 사용하기로 했고, 이 과정에서 대화의 순서 역시 결정되었다.
필름이 현상될 때까지 몇 년을 기다렸는데, 작업을 재개했을 때 배지가 시간 순서대로 있지 않고 뒤죽박죽인 것을 알게 되었다. 뒤섞인 아카이브였고, 그 뒤섞임은 아마도 기억의 혼선에서 왔을 것이다. 캐나다 배지처럼 출처를 알 수 없는 물품도 영화에 담았다. 우리는 자체적으로 리서치를 했지만 꼭 영화를 위해서 한 것은 아니다. 〈필름 핀〉은 그저 정보 전달을 위한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순서는 어떤 순간에 싱크를 맞추고 싶은지, 관객이 어떤 장면을 기억했으면 하는지에 따라 결정했다. 편집 작업은 비동시적으로 이루어졌다. 초기 가편집본에서는 영상과 음향의 싱크를 맞추었으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보다 우리가 원한 것은 기억을 활성화·역동화하고, 관객들이 놀이처럼 참여하게끔 하는 것이었다. 목소리가 지금 회상하고 있는 배지는 당신이 1분 전에 본 배지일까, 아니면 특정 배지가 등장할 것을 화자가 예상한 것일까? 과거 투쟁의 현현과, 도래할 또 다른 투쟁의 잠재적 유령 사이. 이것이 우리가 설정한 스펙트럼이다.
촬영 콘셉트는 단순하다. 슈퍼 8mm 필름으로 검은 배경을 이용하여 배지들을 찍었다. 검은 배경은 어떤 이점이 있나? 이런 미장센을 택한 이유에 관해 설명을 부탁한다.
리스본의 자연스럽고 너그러운 햇빛을 활용하고 싶었다.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 현장에서 가장 햇빛이 잘 드는 위치가 어딘지 물었는데 창가 근처였다. 리스본의 햇빛은 금속을 빛나게 할 만큼 강하고, 어두운 배경을 활용해 사물의 입체감을 강조하려 했다. 창작자로서 고려한 측면 중 하나는 배지라는 작은 사물의 조형적 특성이다. 이미지를 확대함으로써 배지의 부피감과 보존 상태를 강조하고, 녹, 질감, 치수 등 시간의 흔적을 드러내려 했다.
스크린에서 배지는 실물보다 크게 보인다. 바로 이때, 확대된 사물과 기준이 되는 신체 사이를 매개하는 손이 정말로 중요해진다. 배지를 다루는 행위는 진실한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사물에 집중하여, 그것들이 어떻게 관객과 다양하고 대비된 관계를 만들어 내는지에 주목했다. 의미를 부여하기에 앞서 물질 자체가 말하게끔 했다.
배지를 카메라 앞에 놓고 치우는 손동작까지 촬영했다. 우매한 질문일 수 있겠지만, 배지 자체만이 아니라 손의 움직임까지 보여 준 이유가 있는가?
단순한 사물과 기본적 욕구의 소박함을 강조하고자 했다. 우리에게 촬영은 남들과 나누고 싶은 순간이자 권리로, 우리는 촬영을 비롯해 하는 일을 함으로써 연대한다. 배지는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상상, 욕망, 기억, 우화를 동반한다. 〈필름 핀〉은 우리가 마치 배지가 되어 그 시선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스스로를 기억하는 감각을 제시한다.
손은 설명하는 목소리와 연결되어 우리가 그것을 따라가고, 귀 기울이고, 질문하게 한다. 촬영 중 화자는 반지를 빼는 게 좋을지 물었고, 우리는 마치 눈을 갖고 카메라를 마주 보는 듯한 반지가 매우 마음에 들어서 계속 끼고 계시라고 했다. 손톱에 관해서도 나중에 이야기를 나눴으나, 우리가 중심에 둔 것은 사물들이었고 편집 과정에서도 이를 분명히 했다. 우리는 각종 소장품, 특히 작은 책을 주의 깊게 살폈다. 라 불카니자도라에서도 책에 특별한 애정을 품고 있다. 현장에는 우리가 배지를 소개하기 위해 촬영, 확대, 소환하고 싶은 사물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 하나인 『공산당 선언』의 미니어처 판본을 영화의 기점으로 삼았다.
배지 컬렉션이 그 자체로 아카이브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카이브를 촉발하고 가능케 하는 것은 촬영 과정이다. 즉 컬렉션은 영화를 통해 아카이브가 된다. 그렇다면 배지가 보다 넓은 대중적 상호 작용, 영화 자체보다도 삶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영화적 상호 작용(그런 것이 존재한다면)의 일부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영화의 중간에 휴지부가 있다. ‘FREE PALESTINE’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배지를 보여 준 뒤 잠시 검은 배경만 보이다가 두 번째 파트가 시작되고, 그때부터 배지의 뒷면을 보여 준다. 앞면에서 뒷면으로의 전환, 팔레스타인에 대한 메시지 이후의 전환에 관해 설명을 부탁한다.
몽타주 과정 중 팔레스타인 배지에서 멈추기로 결정했다. 수년 전의 촬영본으로부터 어떤 시간성이나 하나의 우주를 재창조하던 우리로서는, 거기서 멈춰야 한다는 점이 명백했다. 그 시점 이후로는 배지 뒷면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뾰족한 금속 핀 부위, 인프라, 조형적인 몸체, 무게감, 이미지를 뒷받침하는 한편 가슴, 즉 배지를 꽂는 신체 부위를 소환하는 금속. 영화 전반부 동안 보이지 않는 이 부분은 잔혹한 집단 학살에 희생되고 있는 수천수만 명의 사람들을 말한다. 거기서 영화를 잠시 멈춤으로써 장막을 뚫듯, 여러 대의명분이 한데 모이는 현재의 특정한 순간을 의미화하고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작가 나세르 아부라메Nasser Abourahme가 말했듯, 급진적이며 보편적 해방이라는 정치적 주체를 명명하는 이름으로서 팔레스타인은 어디에나 있다. 이스라엘 군사 개입의 여파를 경험했고 이스라엘 군대로부터 훈련받은 콜롬비아 민병대가 살인, 납치, 학살을 자행하는 것을 보아 온 콜롬비아인으로서 우리는 이 사실을 감각적으로 알고 있다. 이것은 형식적으로 이용하고 마는 개별적 의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이 공통된 투쟁의 장을 인식할 수 있다.
우리는 배지를 달고 있는 유령과도 같다. 마치 유령이 착용하기라도 한 것처럼, 배지의 뒷면을 볼 수 있다. 바늘 끝에 무엇이 고정되어 있는지 볼 수 있다. 배지는 거대한 금속 조각 작품처럼, 그 안에서 녹과 낡은 흔적을 읽을 수 있다.
당신들은 공식 및 비공식 기록을 사용하여 국가 담론, 정치, 식민주의와 같은 주제를 탐구해 왔다. 이러한 방식, 즉 역사와 기억과 아카이브의 관계에 기초한 작업에 관심을 두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예술가로서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우리의 욕구, 그리고 이미지와 사운드는 발견의 대상인 동시에 그것들이 우리를 발견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온다. 가면 갈수록 우리 자신이 아카이브의 일부라고 믿게 된다. 식민지였던 콜롬비아는 제국주의가 심화한 식민 지배의 상처를 여전히 안고 살아간다. 식민 지배는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었으며 그러한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우리가 참여하거나 지지하는 여러 투쟁에 기여하는 여정에서, 우리 특기는 아카이브를 통한 작업이 되었다.
이미지를 다루는 것이 권력을 다루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이해한 많은 작가, 사상가, 영화감독에게 영향을 받았다. 무엇이 보존되고 무엇이 지워지는지, 무엇이 가시화되고 무엇이 침묵이나 자기 검열을 강요받는지. 아카이브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아카이브는 의사 결정, 배제와 욕망의 결과물이며, 영화가 개입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필름 핀〉의 매력은 사랑, 비판적 시각, 호기심에 기초해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이다. 이 영화는 간단한 것, 가벼움의 미학, 거의 아무런 무게가 없으면서도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물건의 무게 등을 인식하는 작은 행동을 요청한다. 콜롬비아 작가 후안 카르데나스Juan Cárdenas는 예술의 무게 없음에 대해 쓴 적 있는데, 그 개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 배지들이 정확히 그렇다. 가슴에 달 수 있을 만큼 가볍고, 역사를 담고 있을 만큼 무거운.
번역: 고아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