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푸 드롭Post Poo Drop
감독 강승호KANG Seungho | Korea | 2026 | 22 min | Fiction | 한국단편경쟁Korean Competition for Shorts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도로 가까이에 장발의 남자가 서 있다. 그는 그 자리에 서서 자신도 모르는 새 할아버지처럼, 아버지처럼 길게 기르던 머리카락을 잘라 낸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단편 실험극 〈포스트 푸 드롭〉에서 강승호 감독은 아버지의 살아생전 옷과 신발을 입고 신은 채 등장한다. 그는 제목이 암시하듯 위에서 아래로, 하수도를 따라 이동해 바깥으로 배출된 뒤 차오르는 물에 잠겨 모습을 감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먼저 겪은 사회 바깥, 세상 바깥으로의 배출을 자기 몸으로 다시 쓰면서 의미화해 읊조리는 과정은 오직 그가 만들고 홀로 치러 낼 수밖에 없는 고독한 의식처럼 보인다. 그 의식을 통해 강승호 감독은 세상의 속도에 저항해 보지만 결국 그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몸들, 정신없는 흐름과 효율성에서 밀려난 몸들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천천히 그 몸들이 되어 본다.
간략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포스트 푸 드롭〉을 만든 강승호입니다.
어떻게 구상하게 된 이야기인가?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시게 된 사건에서 출발한 기획이었다. 아버지의 장례식 중에 할아버지 이야기도 듣게 되었는데, 할아버지 또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예순 살이 되던 해에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나도 그런 운명을 타고난 듯한 공포를 느꼈다. 우리는 너무 닮았고, 얼굴과 몸뿐만 아니라 취향까지 닿아 있었다.
장례 이후, 건축가인 아버지가 지으시고 준공을 앞두었던 건물에 유품을 정리하러 갔다. 그 건물을 마주했을 때 그것은 단순한 건축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 건물에 아버지의 손길이 담겨 있다’, 이런 느낌도 아니고 건축물 자체가 아버지로 느껴지는 경험을 했다. 이런 경험이 나에게 묘한 감각을 주었다. 그런 경험과 감각이 내가 원래 관심을 두었던 속도와 건축에 대한 생각과 겹치면서 영화로 이어졌다.
중국어 각본을 쓰기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각본을 써 내려간 방법과 과정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사실 너무나 감정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나의 개인적이고 비극적인 사건이 직접적으로 귀를 통해 전달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중국어 각본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중국어에는 성조가 존재하고 표현이 한국어와 사뭇 다르다. 조금 더 시적으로 다가오는 부분이 있다. 관객들이 하나의 장치를 거쳐 이야기를 받아들였으면 하는 마음에 중국어를 선택했다.
아버지는 속도에 동경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오토바이를 타셨고, 오토바이를 타던 중 대로변에서 쉬셨고, 그 앞에서 사고가 있었고, 아버지는 사고를 목격하고 수습하려 하셨고, 그러다가 본인도 사고를 당하시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속도가 미웠다.
나는 아버지가 속도를 동경하게 된 장소가 중국의 들판이라고 생각했다. 넓은 들판에서 아버지는 긴 머리를 휘날리며 말을 탔고 이후 한국에 와서 오토바이를 타게 되셨다. 중국의 그 들판이 모든 서사의 시발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중국어로 만들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중국에 10년 이상 거주한 형과 함께 각본을 작성했다. 내가 한국어로 쓰고 형이 중국어로 번역했다. 중국어와 한국어 사이에는 묘한 차이점이 있어 형이 세세히 수정해 줬다. 가령 내가 ‘눈을 감기듯이’라고 쓴 부분을 형은 중국어로 ‘내가 그의 눈을 감겨 줬듯이’라고 번역해 줬다. 이런 부분들이 관객들에게 영화가 더 와닿게 한 것 같아서 기뻤다.
도로변에서 출발해 다리를 건너고 건물 옥상에서 지하까지 훑어 내려간 뒤 하수도를 통과해 배출되는 흐름은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것으로도, 구조에 관한 것으로도 읽힌다. 이 흐름에 관해 들려주신다면.
이 영화를 기획하면서, 또 아버지의 사고 이후 사고 지점에 가보았을 때 그곳이 출발점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영화를 준비하며 리서치하던 중, 할아버지의 사고 지점이 한강이라는 사실과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작업한 건물이 바다 근처에 있다는 사실이 느슨하지만 강하게 연결된 듯 느껴졌다. 하나의 흐름을 갖고 나아가는 물처럼, 또 몸속에서 소화되어 가는 무언가처럼 영화가 빠르지 않은 속도로 흘러가기를 바랐다.
이전에 관심을 두었던 건축물과 신체의 관계 역시 이 영화의 흐름에 영향을 준 것 같다. 건축물의 기능, 도시의 기능, 신체의 기능은 묘한 유사성을 갖고 작동한다. 필요 없는 것을 제거하고 배출하며 끊임없이 끝을 향해 달려가는 가속성의 사회와 우리의 몸. 이런 유사성이 영화의 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영화를 만들며 나는 스스로를 어떤 잔여물처럼 느끼기도 했다. 아버지의 몸 자체인 건물, 그 사후의 신체 안에 끝내 배출되지 못한 무언가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곧 나 자신이라는 생각을 했다.
감독님은 영화의 유일한 등장인물로 직접 출연했다. 본인이기도 한 등장인물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려고 했는지, 어떤 부분에 가장 중점을 뒀는지 들어 보고 싶다.
개인의 서사는 강한 동력이 되지만 개인적인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이 문제의 근본에 다가가고 싶었다. 개인은 사회의 작은 픽셀이지만 그 작은 부분을 통해서 구조를 엿볼 수 있는 구멍을 만들고 싶었다.
이 영화에 내가 아닌 다른 인물이 나와서 연기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전문 배우는 아니지만 내가 역할을 직접 수행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애초에 배우를 쓸 생각을 못 했던 것 같다.
촬영감독에게 스토리보드를 공유한 뒤 아버지가 생전에 입으셨던 옷을 입고 사고 당시 신고 계셨던 신발 등을 신은 채 의식을 치르듯, 무언가를 마주하듯 촬영을 진행했다.
또 촬영 단계에서 배우를 쓰기 미안한 장면들도 있었다. 몸이 낄 정도로 좁은 하수도관에 들어가는 장면이라든지, 갯벌에서 물이 차오르는 장면이라든지, 나 자신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끝까지 수행해 보고 싶었다.
느리고 묵직한 음악과 사운드 사용이 인상적인데, 이에 관해 자세히 들어 보고 싶다.
영화의 스코어를 고민하던 중에 ‘세컨드 마우스 랩Second Mouth Lab’의 음악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 팀은 항문을 ‘두 번째 입’이라고 정의하며 방귀 소리와 같은 신체의 배출음을 기반으로 음악을 만든다.
그들의 곡 중 〈너무 사랑해서 시간이 느려지는 현상〉을 아버지의 장을 묘사하는 장면에 사용했다. 방귀 소리를 길게 늘여 만든 사운드였는데, 그 소리가 하수도 장면과 겹치며 마치 거대한 생명체의 장기 안으로 들어간 듯한 감각을 만들어 줬다.
직접적으로 설명되지는 않지만 내가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신체와 배출, 속도와 느려짐의 감각을 음향적으로 확장해 준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속도에 포함되지 않은 몸, 속도를 거부하지 않은 몸, 속도를 잃은 몸을 다루면서 속도가 없는 사물들을 비추고 재발견하는 듯 보인다. 속도에 관해 말하고자 했던 바를 더 들어 보고 싶다. 또한 속도를 잃은 것은 무엇을 남겼을까?
속도는 효율이다.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속도는 점점 더 중요해진다. 더 빠른 처리 속도와 더 빠른 이동은 경쟁력이 되고 현대 사회는 그런 속도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지하철과 기차는 정시성을 기반으로 사람과 화물을 운반하고, 디지털 환경에서도 모든 것은 더 빠르게 처리되기를 요구받는다. 속도는 이제 하나의 감각이라기보다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구조에 가까운 것 같다.
그 속도는 동시에 폭력적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과속 차량에 사고를 당하셨고 나는 그 사건 이후 속도가 단순히 편리함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을 살게 만드는 속도가, 동시에 한순간에 인간을 죽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영화는 느린 호흡의 형식을 택했다. 슬로우 시네마의 리듬을 통해 속도에서 밀려난 것들, 효율에 포함되지 못한 몸과 사물 들을 오래 바라보고 싶었다. 하수도나 갯벌, 버려진 공간 같은 장소들도 그런 이유에서 등장한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앞으로 이동하고 그 과정에서 남겨지는 것들은 쉽게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안에서 속도를 완전히 거부하는 인물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속도를 비판하면서도 결국 그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몸을 보여 주고 싶었다. 저항하려 하지만 끝내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는 상태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아버지는 사고 이후 속도를 잃으셨고, 남겨진 나는 그 이후의 속도로 계속 살아가게 되었다. 〈포스트 푸 드롭〉은 어쩌면 그 속도의 차이를 바라보는 과정이었다.
이제까지 두 편의 실험 영화를 완성했다. 앞으로 영화를 통해 무엇을 어떻게 다루고 싶은가?
여전히 건축물과 신체, 도시의 구조 같은 것들에 관심이 많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고백으로 끝나기보다 사회 구조와 연결되는 지점을 계속 보고 싶다.
특히 요즘엔 건물의 오수와 관련된 요소들에 관심이 있다. 오수와 같이 너무 흔하게 존재하지만 우리 생활을 유지해 주는 것, 혹은 우리가 매끈하다고 생각했던 건축물에 균열을 주는 누수와 같은 것들을 다뤄 보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