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졌다고 알려진 필름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복원이 이루어지며 한 편의 다큐멘터리 또한 제작되기 시작했다. 기적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은 60년의 세월에 담긴 침묵과 저항과 삶과 죽음과 얼굴과 이름을 불러내고 역사와 정치와 예술 또한 부활시킨다. 부식된 필름은 프레임 가장자리에 있는 유령의 흔적과, 겹치고 흔들리며 자신을 드러내는 이미지를 되살리며 영화와 현실과 일상과 기록과 얼굴들을 되살린다. 산티아고 세인은 사명감과 헌신으로 기록물을 복원하고, 영화에 대한 열정과 역사에 대한 책임감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동시에 국가 폭력으로 인해 고문과 투옥과 추방과 죽음으로 내몰린 희생자를 애도하고 기억한다. 총 한 자루가 만들 수 있는 것은 영화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시와 일기와 진혼제가 되기도 한다.


코르도바대학 시네클럽 ‘블루 파빌리온’ 창고에 쌓인 필름 캔과 박스들을 발견한 후 감독님은 두 가지 역할을 병행하며 영화를 완성했다. 하나는 기록물 관리자, 다른 하나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두 역할은 감독님 영화에서 어떻게 인식되었으며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으로 이어졌는지 듣고 싶다.

처음에는 아키비스트로서의 역할이 먼저였다. 필름을 구해 내고, 우리가 무엇을 복원하고 있는지, 그 창작자는 누구인지, 또 어떤 맥락에서 제작되었는지를 이해하고 싶은 충동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어느 시점에 정치 영화의 파편들을 보고 그 창작자들에 관해 알게 되면서, 그간 모르고 있던 어떤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키비스트로서 나는 자료 발견과 보존의 과정 자체가 영화에 드러나기를 바랐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시청각 유산 보존을 위한 정책이 전무하다시피 하고 이를 전담하는 국립 필름 아카이브도 없기 때문이다. 

한편 지방에 거주하는 필름메이커로서 나의 위치는 과거 영화인 세대와 교감하고 그들이 마주했던 어려움을 이해하게 해줬다. 가장 불리한 정치적, 물질적 조건 아래서도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그들의 시도에는 영화에 대한 사랑이 뚜렷이 담겨 있다.

 

이 영화는 검열과 파괴를 겪고도 살아남은 필름 캔의 운명과 마주하는 태도를 보여 준다. 또 억압과 투옥, 망명과 죽음을 겪은 당대 영화인들을 되살려 내는 부활의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한 죽음들과 대면한 후 어떤 경험을 했는지 듣고 싶다.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초까지 지속된 독재 정권은 영화와 필름메이커를 포함해 지역 문화의 한 시기를 역사에서 능란히 지워 버렸다. 그 시기에 벌어진 일은 국가 폭력의 희생자 다수가 여전히 실종 상태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더 고통스럽다. 영화 속 움직이는 신체들의 이미지는 오랜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음을 상기시켜 준다. 우리의 목표는 언제나 당대 학생들, 교사들이 남긴 필름과 작업물을 복구함으로써 그들 세대의 영화를 되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회수한 파편들을 모아 하나의 작품을 만들었다.

 

감독님은 제목도, 감독명도 제대로 표기되어 있지 않고 극영화와 기록물이 혼재된 자료 더미에서 필름들을 살펴보고 복원한다. 부식된 필름 표면, 그리고 이중 인화 된 듯한 프레임은 초현실적이고 아름다운 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필름의 물성에 대해 누구보다 발달한 감각을 지녔을 감독님이 필름을 발굴하고 손으로 매만지면서 이 영화를 어떤 방식으로 만들지 구체적으로 떠올리게 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상태가 좋지 않은 자료를 많이 발견했다. 시간의 흐름과 열악한 보관 환경이 필름 위에 선명한 흔적을 남겼다. 영화의 몇몇 부분, 특히 폭력과 추격이 중심인물들과 마을 전체를 공포의 분위기로 에워싸는 마지막 챕터에서 그러한 흔적을 활용했다. 이중 인화 된 필름, 곰팡이, 얼룩, 심지어 이미지 일부가 사라진 필름은 어떤 낯섦의 감각과 연결되어 있어 예술적으로 활용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편 그 프레임들과 복원된 사진 네거티브들에는 어딘가 유령 같은 느낌도 있다. 신체는 얼룩 뒤로 사라졌고 우리는 슬레이트의 흔적이나 얼굴의 윤곽, 그림자, 눈의 테두리 같은 것들을 통해서만 그 사라진 존재를 희미하게 감지할 수 있을 따름이다.

 

필름뿐 아니라 무비올라, 스틴백, 볼렉스 카메라와 같이 1990년대 이후 사라져 버린 도구와 기계를 사용했고, 1960~1970년대 선배들이 영화를 만들던 방식을 이 영화에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또 무엇을 발견하길 기대했는지 궁금하다.

필름들을 복원하고 그 창작자들의 이야기를 파악하려 애쓰던 중 우리는 독재 정권 시기에 오래된 학내 장비로 프로파간다 영화가 한 편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화를 만든 이는 바로 학교가 폐쇄된 이후 필름 아카이브 및 장비 관리를 맡았던 사람이었다. 장비들은 민주화 이후 회수됐지만 더는 사용되지 않고 수십 년간 대학 창고와 강의실에 방치되어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그것들을 수리해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대의 영화 제작 과정 자체를 되살려 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그 장비들로 추모 행진을 촬영하는 것은 과거에 벌어졌던 일에 맞서는 한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한때 사회적, 정치적 참여 영화에 쓰이다가 이후에는 군부 독재 정권의 프로파간다 영화에 쓰였던 바로 그 장비들이, 이제 당대 필름메이커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영화를 만드는 데 쓰이게 된 것이다.

 

영화는 3부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필름을 발견하고 복원하는 과정에 감독님이 내레이터로 참여해 기록물 관리자의 역할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 준다. 2부에서는 가상의 화자를 내레이터로 등장시켜 필름들을 재구성하면서 영화와 혁명, 아르헨티나 역사와 영화, 서구와 라틴 아메리카의 상황을, 픽션과 다큐멘터리와 기록물을 오가면서 ‘새로운 영화’로 창조한다. 3부에는 인터뷰이 네 명의 증언과 그들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다. 그중에서도 특히 흥미로운 것은 2부인데, 감독님은 폐기되었다고 전해지던 필름들을 발견한 뒤 미완성으로 남은 푸티지를 모아 한 편의 에세이 영화를 만들었다. 이는 영화 전체 제작 과정의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2부를 위해 어떤 고민을 했는지 듣고 싶다.

2부는 두 가지 요인에서 비롯한 서사적 선택으로 만들어졌다. 첫 번째는 사운드 대부분을 복원할 수 없다는 데서 온 좌절이었다. 특히 오픈 릴 자기 테이프는 세월의 흐름과 열악한 보관 상태 탓에 무척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정치 영화와 관련된 자료 상당수가 소리를 잃은 상태로 남아 있다. 두 번째는 프레임 속 한구석, 대체로 가장자리에서 녹음하는 모습을 가끔 드러내던 어떤 인물에 대한 흥미였다. 그 인물이라면 당시 겪은 일들에 대해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줬을지 상상하면서 일종의 사운드 다이어리 같은 서사를 만드는 데 도전해 보고자 했다. 조사를 해나가던 중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이미지들을 만든 이들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얻었다고 느꼈고 비로소 사운드 다이어리를 구축하는 데 뛰어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코르도바대학 영화과 학생들이 찍은 다양한 영화를 보며 당대 아르헨티나 영화학도들의 관심사와 작업물을 보여 주는 귀중한 기록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의 활기찬 일상, 단편영화 촬영 현장, 대규모 시위 현장과 경찰의 탄압과 정치적 구호와 선언은 모두 함께 ‘혁명 영화’, ‘정치적 표명으로서의 영화’를 이룬다. 그중에서도 청년들의 일상, 토론 장면처럼 영화 제작 전후의 상황을 기록한 영상이 무척 인상적이다. 그러다가 영화의 마지막에서 가장 중요한 애도와 선언이 이루어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국가가 저지른 폭력과 실종자들이 담긴 영상, 그리고 그들의 이름 및 실종 날짜가 표기된 화면은 현재 아르헨티나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너무도 슬프고 비통하게 다가온다. 이 영화는 그들을 애도하기 위해, 상상 속에 존재하는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고도 느꼈다. 이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을 듣고 싶다.

이 영화는 아주 특수한 정치적 기류 안에서 만들어졌다. 2023년에 들어선 아르헨티나 극우 정부가, 우리가 이미 합의에 이르렀다고 여겼던 독재 정권기의 인권 침해 사안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이곳에서는 최근까지도 당시 반인륜 범죄에 가담했던 이들에 대한 재판이 이어졌는데, 가해자들은 끝내 회개하지 않았고 희생자들의 유해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도 밝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문제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다시 떠오르고 있다.  

우리는 몇몇 필름을 복원했고 영사기의 빛이 그 위를 통과하면서 이미지들이 되돌아왔다. 2026년 3월 아르헨티나 법의학 인류학 팀은 코르도바의 ‘라 페를라La Perla’ 수용소 근처, 독재 정권이 증거를 인멸하려 훼손해 놓은 매장지에서 실종자들의 유해를 발견했다. 국가가 희생자들의 시신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진상을 규명하기 전까지 우리는 이 오랜 상처를 봉합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제라르, 피에르, 루디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총 한 자루면 충분히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실천했던 독재 정권기에 동떨어진 행동을 한 영화감독 페데리코 알레그레와 같은 인물도 함께 보여 준다. 하지만 그에 대해 치우친 생각을 쉽게 드러내진 않는다. 이 점에서 영화와 정치의 관계를 설파하거나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영화는 어떤 것이라고 단언하기보다, 그 시대와 인물을 두루 살피며 생각할 여지를 남기려는 사려 깊은 태도를 느꼈다. 이 점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하다.

3부에서는 증언과 문서를 활용했는데, 우리가 다루려는 것이 그간 충분히 연구되지 않은 복잡한 이야기라 영화를 만들기 전에는 그에 관해 거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 페데리코 알레그레가 동료들을 배신하고 독재 정권과 공모한 일은 매우 중대한 문제다. 아르헨티나 바깥에서는 생소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페데리코 알레그레는 독재 정권 시기에 코르도바에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던 루시아노 B. 메넨데스 장군과 결탁했다. (이제까지 누구도 찾아보지 않았던) 학내 아카이브에서 발견된 문서들이 이 사실을 분명히 입증한다. 우리는 남아 있는 증언과 문서, 당시의 장비를 통해 그 이야기를 전달했을 뿐이다. 목적은 투옥, 망명, 혹은 죽음에 가로막혀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열망이 좌절됐던 이들을 위해 일종의 시적 정의를 구현하는 데 있었다. 우리는 영화라는 매체와 그것의 도구들을 통해 이를 완수해 냈다. 어떤 주제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 작업이 사건들에 대한 하나의 입장을 견지하며 그것을 영화의 형식과 언어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고 믿는다. 복원된 이미지들에 걸맞은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