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오랑Sandra, The Primate Citizen
감독 하시내HA Sinae | Korea, Argentina | 2026 | 84 min | Documentary | 한국경쟁Korean Competition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동물원. 그곳에 살던 1986년생 산드라는 오랑우탄 최초로 법적 ‘인권’을 획득한다. 그때부터 인간들은 다시 한번 난상 토론을 시작한다. 산드라는 과연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무엇이 진정 그를 위한 길일까? 동물원, 보호 구역, 브라질, 미국이 거론되고 여러 의견이 충돌한다. 그렇게 8년이 흐르는 동안 산드라는 줄곧 담요 아래 몸을 숨긴 채 말이 없다. 하시내 감독은 산드라의 거취가 확정되기까지의 그 기나긴 여정을 끈질기게 좇는다. 그의 소리 없는 말을 들어 보려 애쓰면서.
간략한 자기 소개를 부탁드린다.
두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연출작 〈시민 오랑〉으로 인사하는 하시내라고 한다. 15년 전, 첫 장편 다큐멘터리 〈내일도 꼭, 엉클 조〉를 기획 개발하면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피칭한 바 있다. 그 뒤 매년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서, 멘토로서, 프로그램 파트너로서 전주를 찾아 왔는데 작품 상영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매우 설렌다. 1986년생 오랑우탄 산드라는 인생 최대 난제였다. 지독하게 따라다닌 것 같다. 그리고 기나긴 편집을 마치며 산드라와 함께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최초로 법정에서 비인간 인격체로 인정받은 오랑우탄 산드라의 이야기를 다뤘다. 산드라가 처한 상황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등장인물들과 연결이 닿은 경위 또한 궁금하다.
자료 조사를 시작한 2015년쯤 상황을 보면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유인원에 관한 소송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원피스를 입고 쇼를 하던 오랑이가, 미국에서는 침팬지 토미가 소송에 참가했다. 동물 전담 변호사가 등장했고 인신 보호 영장을 법원에 신청해 유인원들을 더 나은 곳으로 옮기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패소했고, 그들이 법적 ‘사람’의 지위를 부여받지도 못했다. 동물은 사적 소유물이며 동물 보호법 아래서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다고 판단된 것이다.
그때 산드라 케이스를 알게 되었다. 처음 법원에서 승소한 건이었고, 오랑우탄 산드라에게 ‘비인간 인격체’라는 법적 지위를 주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살고 있는 친구이자 프로듀서에게 연락해 이 프로젝트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그다음 산드라 담당 변호사와 판사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지금 생각하니 참 무모했던 것 같다. 그들도 지구 정반대편 한국에서 연락해 온 일 자체가 흥미로운 것 같았다. 이런 두 호기심이 만나 문이 열렸고, 엘레나 리베라토리 판사가 방문 허가증을 발부해 줘서 2016년 처음 산드라를 만나게 되었다.
촬영 기간이 8년에 달한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는지.
산드라가 미국으로 출발하기 일주일 전, 아르헨티나 프로듀서에게 갑자기 연락이 왔다. 산드라의 출국일이 정해졌다는 것이었다. 4년을 기다려 온 순간이 이렇게 순식간에 정해지다니 정신이 없었다. 부랴부랴 짐을 싸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갔다. 그 전날 미디어에 산드라의 모습이 잠깐 공개되었고, 동물원 측은 비밀리에 산드라의 출국을 준비했다. 당일, 우리 촬영 팀은 산드라를 태운 트럭을 뒤쫓으며 공항까지 따라붙었다. 공항에 촬영 허가서를 미리 보내 놓긴 했지만 들어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트럭 뒤꽁무니를 능숙하게 쫓던 택시 기사는 꼭 액션 영화를 찍는 것 같다는 농을 하기도 했다.
공항 출입구 앞에서 허락이 떨어졌다. 산드라를 실어다 준 트럭 회사 대표와 엘레나 판사가 우리 촬영 팀을 출국 터미널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게 산드라가 미국으로 떠나는 순간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 장면을 찍고 나오는 순간 눈물이 났다. 이제 정말 이 프로젝트를 끝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에 도착한 산드라만 찍으면 끝!’ 그런데 오산이었다.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미국 촬영이 전면 중단되었다. 유인원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어 외부인 출입이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3년을 기다렸고 마침내 산드라를 새 보금자리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직접 의사를 물을 수 없는 산드라를 담아낼 때 가장 신경 쓴 점은 무엇인가?
산드라 촬영은 제한적이었다. 동물원 측은 하루 30분에서 1시간 정도 관찰 시간만 할당해 주었다. 담당 사육사가 항상 동행했다. 매일 조금씩 산드라의 아침, 식사 시간, 놀이 시간, 휴식 시간, 잠자는 시간 등을 나누어 촬영했다. 처음엔 나무 뒤에 숨어 관찰했고, 조금씩 익숙해지면 앞쪽까지 천천히 이동하는 방식으로 거리감을 좁혀 나갔다. 그래도 산드라의 마음을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영장류학자 알도가 관찰에 참여하며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행동으로 드러나는 산드라의 생각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인간을 기준으로 산드라의 표정과 행동을 해석하지 말자’라고 되뇌었다.
초중반에 산드라를 존중하지 않는 이들의 가벼운 조롱이 산드라의 무겁고 초점을 잃은 눈빛, 그리고 그를 위해 행동하는 이들의 진심 어린 눈빛과 뚜렷이 대조된다. 그러다가 후반부 재판장에서 알도 박사가 웅변하는 순간에는 모두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진 점이 인상적이었다. 결말이 나기까지 직접 목격한 변화들에 관해 들려준다면.
알도 박사를 통해 법정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관객들에게 산드라의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 표정으로 묵직하게. ‘넌 날 보러 왔지만, 나를 보며 즐기게 그냥 두지 않을 거야’라며 산드라가 날리는 ‘빅엿’을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느낀 충격이기도 했다.
이후 난상 토론이 이어졌다. ‘익숙한 동물원이 최선’이라는 쪽, ‘브라질의 보호 구역으로 옮기자’라는 쪽, 그리고 ‘이민을 가는 순간 다시 오랑우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판사까지······. 수많은 딜레마가 공존한 그 순간, 그 치열한 과정 자체가 산드라를 단순히 보호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 느끼게 하는 솔직한 변화의 모습이었다고 생각했다.
산드라를 인격체로 존중하는 이들이 함께한다고 해도, 한편으로는 그의 거취가 오로지 인간 손에 달린 상황 자체가 무척 인간 중심적으로 느껴졌다. 무엇이 진정 산드라를 위하는 길이었을까라는 질문이 남는다. 이와 관련해 덧붙여 주실 말씀이 있다면.
‘무엇이 산드라를 위한 길일까’라는 질문 때문에 작품의 완성이 늦어졌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나도 답을 못 내렸다. 미국에 살게 된 산드라를 만나기 전까진 말이다. ‘최선이라 생각했지만, 그곳이 동물원과 무엇이 다를까?’라는 질문이 계속 떠올랐다.
그러다가 산드라가 사는 미국 플로리다 유인원 센터에 갔는데, 그 안의 ‘메모리얼 파크’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그곳은 생을 다한 유인원들이 잠든 곳으로, 비석에 쓰인 그들의 이름이 영원히 기억되는 추모 공원이다. 그 앞에서 ‘산드라도 마지막엔 여기에 머물겠구나’, ‘이것이 우리가 줄 수 있는 마지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심이 되었다. 물론 이런 안심도 무척 인간 중심적인 사고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동물원에서 태어나 인간과 소통하며 자란 산드라는 야생 오랑우탄과는 이미 다르다고 생각한다. 숲으로 둘러싸인 조용한 공간, 제한적이지만 여기저기로 이동할 수 있는 우리, 언제든 치료받을 수 있도록 준비된 전문 인력, 그리고 서로 소통할 오랑우탄 친구들, 그것이 이 기나긴 여정이 낳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판사 엘레나는 억류된 산드라를 구출하는 일이 자신의 업무라고 했다. 영장류학자 알도는 산드라를 위해 숨은 진실을 밝히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했다. 그렇다면 다큐멘터리스트로서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했는지.
좋아하는 문구가 있다. 매번 작품을 마주할 때마다 되새기는 말이다. “정답을 던지는 영화는 극장에서 끝나지만,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극장을 나서는 순간 시작된다.” 냉정하게 말해, 이 소송의 법적 효력은 오직 산드라에게 국한된다. 수많은 다른 유인원과 동물들은 여전히 그 바깥에 있다. 그렇기에 다큐멘터리스트인 나의 역할은 ‘산드라의 선례를 통해 그 범주를 어디까지 넓혀 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사회에 던지는 일이라 생각한다.
다음 작품이 궁금하다.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다루고 싶은가?
〈시민 오랑〉을 만드는 동안 너무 깊이 고민했고 그 곁을 오래 서성였기에,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 작품이 저의 은퇴작이다’라고 선언하고 싶다. 저의 30대를 다 쏟아부은 것 같다.
하지만 산드라 곁을 지키며 동물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니 여타 수많은 동물 범죄를 목격하게 되었고, 이제 그와 관련한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다. 만약 또 다른 ‘비인간’이 소송을 제기하는 날이 온다면 다음 편을 만들 것 같다. 그 주체는 동물, 혹은 AI나 로봇일 수도 있을 듯하다. 내게 ‘인간과 비인간’이라는 존재들은 거부할 수 없이 매력적인 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