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계절을 보낸다는 건Living Through the Same Season
감독 고승현GOH Seng-hyeon | Korea | 2026 | 127 min | Fiction | 한국경쟁Korean Competition
〈같은 계절을 보낸다는 건〉은 최근 한국 독립 영화 중 보기 드문 로맨스 영화다. 장거리 연애를 시작한 오랜 연인 세훈과 정이.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도 다른 그들은 길게 이별한다. 겨울, 봄, 여름, 가을을 지나 다시 겨울이 돌아오는 사이, 달라지는 바깥 풍경에 따라 마음과 관계도 서서히 변화한다. 2년에 걸친 촬영 끝에 완성된 이 영화에는 계절의 흐름 속에서 두 인물이 보낸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강원도 원주에서 독립 영화관 ‘고씨네’를 운영해 오기도 한 고승현 감독이 이 영화와 함께 보낸 계절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간략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강원도에서 영화를 틀고 있고, 영화제 일도 했었고, 영화를 만드는 고승현이다.
어떻게 구상하게 된 이야기인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많이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 내가 제일 많이 영향받고 부딪히거나 깨어지는 관계가 연인 관계다. 한번 연애를 시작하면 꽤 오래 하는 편이고, 한국 로맨스 영화 중 장거리 연애를 다룬 영화가 드물지 않나 생각했다.(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장거리 연애’와 ‘장기 연애’를 키워드로 두고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 세훈과 정이가 사는 원주와 강릉, 두 지역 사이의 거리감을 보여 주려고 했다. 강원도는 지리적 특성상 자연을 다양하게 보여 줄 수 있기에 이를 풀어내기에 적합한 배경이라고 생각했다. 또 시간의 흐름을 가장 시각적으로 잘 보여 주는 게 뭘까 고민했는데, 계절이었다. ‘거리가 멀어지면 자연스레 마음도 멀어진다’를 표현하고 싶진 않았다. 그보단 노력하는 삶 속에서도, 세상에서 가장 가까웠던 관계가 가장 낯설어지는 순간과 과정을 보여 주고 싶었다.
2024년 작 단편영화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오면 하루를 보내〉에도 장거리 연애를 하는 동명의 주인공 세훈과 정이가 등장한다. 두 작품이 어떤 관계인지 궁금하다.
제작 과정에서 발생한 시차로 인해 단편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오면 하루를 보내〉가 세상에 먼저 나오게 됐다.
단편 감독이던 시절에 장편으로 넘어가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단편 제작 지원을 다섯 개 받아서 이어 붙이면 장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강원독립영화협회로부터 기회를 얻어 겨울 장면을 촬영했다. 그 뒤로 시나리오를 쓰고 준비하다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장편 제작 지원을 받았다. 큰 금액의 세금이 쓰인다고 생각하니 촬영에 들어갈 엄두가 쉽사리 나지 않했다. 시나리오를 더 탄탄하게 준비해 촬영을 마치고 보니, 처음에 찍었던 겨울 장면이 디테일이나 톤의 차이로 이 영화에 쓰이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그 부분을 티저 느낌의 단편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오면 하루를 보내〉로 먼저 선보였다.
사진을 찍는 행위와 그 결과물을 중요한 요소로 다뤘다. 이에 관해 더 자세히 들려준다면.
세훈이와 정이가 마음을 표현하고 생각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 주고 싶었다. 세훈의 경우 현재에 머물며 순간을 붙잡고 싶어 한다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사진이라는 장치를 선택했다. 정이의 경우 순간순간 직접적인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워하지만, 혼자 보낸 시간들이나 하고 싶었던 말들을 기억해 뒀다가 시차를 두고 마음을 전달하는 캐릭터로 표현해 보고 싶어 편지를 활용했다.
촬영 현장에서 필름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 결과물을 관객에게 어떤 방식으로 보여 주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계절별 챕터 사이사이에 배치해 앨범을 넘기듯 한 장씩 보여 주게 됐다. 한편 세훈을 사진 찍는 캐릭터로 설정하면서 엔딩은 어떤 모습이면 좋을지 결정해 놓고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좋아하고 영향받은 로맨스 영화의 계보가 궁금하다.
너무 많은 영화들을 말하고 싶다. 설레는 영화보다 여운이 남는 영화를 훨씬 많이 좋아한다.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허진호 감독님의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를 꼽을 수 있겠다. 국외 영화로는 왕가위 감독님의 〈해피 투게더〉나 〈아비정전〉, 자비에 돌란 감독님의 〈로렌스 애니웨이〉, 요아킴 트리에 감독님의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도 좋아한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와 〈남과 여〉도 좋아하고, 로맨스 장르는 아니지만 이윤기 감독님 영화 중에서는 〈멋진 하루〉를 제일 좋아한다.
강원도 원주에 기반을 두고 독립 영화관 ‘고씨네Go-Cine’를 운영한다. 독립 영화관 운영이 작품 활동과 어떻게 연결된다고 보는지.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영화를 공부하고 배울 방법은 보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개봉하는 영화를 전부 봐야 한다는 집착이 생겼던 시기도 있고, 영화제에 도는 모든 단편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자연스럽게 영화가 좋아졌는데, 영화를 보려면 강원도를 떠나 서울이나 다른 지역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런 생각으로 처음 시작한 영화 활동이 춘천의 독립 영화관 ‘일시정지시네마’ 일이었고, 이후 원주로 돌아온 뒤 고씨네를 만들어 단편을 상영했다. 그러다가 원주옥상영화제도 병행하게 됐고, 프로그래밍을 하거나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1년에 300편가량의 영화를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화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또 지역 내 창작자 동료들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배우 이제훈 님이 운영하는 ‘제훈씨네’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고씨네를 소개하기도 했는데, 사실 영화 트는 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워 요즘에는 거의 활동을 못 하고 있다. 쉰 지 꽤 되었다. 영화를 상영하는 고승현이 ‘고승현 시즌 1’이면 영화를 만드는 지금은 ‘고승현 시즌 2’이지 않을까 싶다.
〈같은 계절을 보낸다는 건〉은 감독님의 작품 이력에서 어떤 의미를 띠는 작품인가?
무척이나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영화다. 시나리오 소재는 2022년에 처음 떠올렸다. 촬영하는 데 2년이 걸렸고 편집도 무척 오래 했다. 계절을 나눠서 촬영하다 보니 시간차가 있었다. 다음 계절을 촬영할 때 시나리오를 다시 보면 아쉽거나 부족한 부분이 많았고, 편집 과정에서도 오래전에 촬영해 놓은 소스를 보다 보면 더 재미있게 연출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지점이 자주 보였다. 특히 편집을 할 때 이런 상황들이 종합적으로 보였다. 나란 사람이 어떤 창작자이고 어떤 결로 관객들에게 말을 건네고 싶은지 고민하고 성장하게 해준 과정이었다.
스태프들이 정말 고생했다. 키 스태프 친구들과 배우님들의 경우, 이 작품을 위해 일정을 맞추느라 더 좋은 기회의 일자리나 작품을 건너뛴 적도 있다. 이렇게 제작 과정에서 모아 준 마음에 보답하고 싶어 더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던 면도 크다.
다음 작품이 궁금하다. 앞으로 영화를 통해 무엇을 어떻게 다루고 싶은가?
세상에는 좋은 영화가 정말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죽기 전까지 세상의 모든 영화를 다 볼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이런 시기에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많이 돌아보게 된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와중에 영화라는 장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도 계속 생각해 보는 중이다. ‘영화와 극장은 아직도 건재해! 여전히 유효하고 여전히 매력적이야!’라고 말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이렇게 첫 영화를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한편으로 다음 작품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는 요즘이다. 아직 써 내려가진 못하고 있지만 머릿속을 부유하는 단어들이나 상황들은 있다. 친한 친구들이 극장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경찰에 끌려가고 법정에 출석한 과정, 불합리한 행정, 자원 순환 센터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본, 우리가 버린 쓰레기의 처리 과정, 쿠팡에 다니면서 느낀 노동의 의미,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이란 무엇인가 등등······. 다음 작품은 훨씬 더 좋은 이야기로 잘 만들 수 있단 자신감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