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다, 말이A Lot Talk
감독 파스칼 보데Pascale BODET | France | 2026 | 78 min | Documentary | 가능한 영화Possible Cinemas
〈많다, 말이〉는 프랑스에서 17년을 살았음에도 여전히 프랑스어에 서툴기만 한 이민자 암르의 행정 절차를 따라간다. 다정한 이웃이자 집요한 감독인 파스칼 보데는 카메라 뒤에 숨는 대신 암르의 곁에서 함께 걷고 논쟁하며, 한 개인의 우여곡절이 어떻게 거대한 국가 시스템의 모순과 맞닿아 있는지를 증명해 낸다. 영화는 전형적인 이주민 서사의 비극성을 탈피하여, 일상의 유머와 오해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기묘한 생동감을 포착하는 데 집중한다. 동시에 언뜻 가볍게 흘러가는 대화와 농담 사이에 웃음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고민과 불안이 스며드는 순간 또한 포착한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이웃의 여정은 과연 어느 곳을 향해 갈까. 완벽한 언어로 소통하지 못해도, 속내를 일일이 파악하지 못해도 함께할 수 있는 걸까. 타인의 신비를 섣불리 파헤치지 않으면서도 그 곁을 묵묵히 지켜 낸 이 기록은, 배제의 시대를 통과하는 이들에게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존중과 태도가 무엇인지 묻는다.
암르와 동행하면서 영화는 점차 이민자를 ‘관리’하는 사회 제도의 민낯을 드러낸다. 감독에게 이 영화는 한 인물의 초상에 가까운가, 구조에 대한 관찰에 가까운가?
화가는 초상을 그릴 때 인물을 중립적 배경 혹은 특정한 세팅 속에 배치한다. 〈많다, 말이〉는 특정한 세팅과 비중립적 배경을 갖춘 초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세팅은 우리가 사는 동네 곳곳, 즉 거리, 카페, 제과점, 공원이다. 배경은 행정 절차가 이뤄지는 장소들로 구성되었다. 판결이나 제도 차원의 결과가 확정되는 공간은 촬영하지 않았기에, 배경은 대체로 ‘오프스크린(프레임 바깥)’에 머문다. 결국 나는 동네라는 세팅 안에서 행정 절차가 암르의 몸과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담고자 했으므로, 이 영화는 일종의 초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암르를 통해 그가 속해 있고 의존하는 시스템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또 그보다 큰 시스템, 즉 이주민이 자기 권리에 접근하려는 시도가 재차 짓밟히는 현실 역시 영화의 일부다. 암르의 초상을 통해 그 거대한 시스템을 관찰하고 증언하며 고발하고자 했다. 그의 초상이 더 넓은 의미에서 시스템을 향한 관찰로 확장된다면 기쁠 것이다. 나는 작고 일상적이며 친밀한 주제나 대상을 주로 다루는데, 그것들이 의미를 얻어 폭넓은 논의가 이어지기를 바란다.
‘암르는 주거 허가 서류를 받으려 하고, 나는 그를 도우며 기록한다’라는 기본 설정은 간결한데, 영화는 생각보다 복잡한 길을 걷는다. 주된 요인은 암르라는 인물 자체에 있다. 그는 말하자면 ‘전형적 이주 서사’를 펼치기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다. 일부러 어려운 선택을 했던 이유가 있을까?
암르는 상당히 영화적인 인물이다. 절망 속에서도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다. 또한 거의 알아듣기 어려운 프랑스어로 말한다. 새로운 행정 절차가 약속하는 듯 보였던 변화는 결국 기만임이 드러났는데, 암르가 단 한 장의 서류를 얻는 데만도 영겁의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렇듯 모든 일이 역설적이고 모순적이며 어려웠다. 암르의 삶은 말한 대로 ‘전형적’ 이주민 서사에 들어맞지 않는다. 그는 투쟁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나 역시 그를 피해자로 묘사하지 않으려 했다. 그는 수동성에 갇혀 허우적대는 듯하지만, 한편으로는 즐겁게 산다. 그와의 상호 작용은 가볍고 유쾌했으며 대개 시시콜콜한 수다와 농담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러니 맞다, 이는 도전적인 접근 방식이었다.
촬영을 포함한 제작 과정 또한 수월하지 않았으리라 짐작한다. 많은 장면에서 연출과 촬영을 병행하기도 했는데, 구체적인 제작 조건과 기간 등을 알려 준다면.
촬영은 2021년 3월부터 2023년 9월까지 진행했고, 일정은 행정적 결정에 맞춰 단계적으로 전개됐다. 암르가 접수증을 받거나 체류 허가증을 취득한 때처럼 ‘결정적’ 순간에 촬영팀이 함께할 수 없을 때면 나 혼자 촬영하기도 했다. 행정 절차가 암르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기록할 때면 대부분은 카메라맨, 사운드 엔지니어와 함께했고, 혹은 사운드 엔지니어와 둘이서 움직이며 내가 직접 촬영하기도 했다. 촬영 시작할 당시에는 카메라맨과 내가 찍은 영상이 어울리지 않을까 봐 걱정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영화 전체를 붐 마이크 없이 아이폰8 플러스로 찍었다. 가능한 한 가볍고 ‘보이지 않게’ 움직이기 위해서였다. 직접 촬영하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몸으로 영화에 참여하고, 프레임을 잡고, 촬영 감독이자 (이 경우 나 자신이라는) 캐릭터로서 반응하는 방식이 무척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내가 포착한 암르의 표정은 곧장 카메라 렌즈로 들어왔다. 암르는 점점 카메라 쪽으로 다가오는 경향이 있어서 나는 종종 뒤로 물러서야 했고, 때로는 그를 아주 가까운 샷으로 담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는 나도 그와 함께 카메라 앞에 등장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그래야 관객들이 내가 이주민을 돕는 여성의 사회학적 프로필에 들어맞는 ‘보보(부르주아 보헤미안)’라는 점을 인식하며, 암르와 나 사이의 사회·문화 차이를 가늠할 수 있을 테니까.
암르와 나누는 대화를 ‘장면’으로 의식했다는 뜻인가? 촬영 과정에서 감독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어떻게 정했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그저 이웃일 뿐, 친구도 연인도 아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는 영화에서 주연을 맡는 데 동의했고, 나는 그의 서류 작업을 도왔다. 몇몇 장면은 미리 염두에 두었고, 편집 과정에서는 영화가 장면 단위로 진행되도록 구성했다. 행정 절차가 중단되거나 지연되면 그를 만나서 질문을 던졌고, 각 대화는 카페와 제과점 등 동네의 구체적 장소와 연결되었다. 카메라 위치와 프레이밍까지 계획한 장면도 일부 있긴 했으나, 그렇게까지 연출한 경우는 드물었다. 그밖에는 내가 던진 아이디어가 결과로 이어지기도, 그렇지 않기도 했다. 물론 나는 등장인물이었기에 촬영에 깊이 관여했다. 직접 참여한 장면들을 바탕으로 다큐멘터리를 구성한다는 점은 중요했는데, 퍼포먼스의 측면에서 보면 나와 암르는 같은 위치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카메라 앞에서는 무엇을 말하고 어떤 상태로 존재할지 완전히 통제할 수 없고, 그 사실이 오해와 이해의 가능성 속에서 우리를 대등한 위치에 놓았다. 나는 상황을 지배하는 감독이 아니었다. 해프닝이 연속하는 가운데, 때마다 떠오르는 아이디어에 반응했을 뿐이다. 이 영화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상호적 노력에 기반하며, 우리 사이에 통역자가 없다는 것이 기본 전제다. 그래서 암르의 알제리 친구 모크타르가 대화에 합류했던 날에는 그가 없었다면 시도하지 못했을 질문을 던질 기회를 잡기도 했다. 어쨌거나 프랑스어 원본에서는 어떤 언어가 나오든 자막을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
아랍어, 프랑스어, 그리고 깨진 프랑스어가 영화 내내 섞이고 어긋난다. 감독은 대체로 암르에게 상황을 정확히 전달하고자 애쓰지만, 때로는 엉켜 버린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기도 한다. ‘설명하고 교정하기’와 ‘그대로 두기’ 사이에서 어떤 고민을 했나?
영화 속 나의 캐릭터는 평균적인 프랑스 관객의 대표이자 중재자에 가깝다. 촬영과 연기를 병행하면서, 복잡한 행정 절차의 맥락을 요약하고 분명하게 제시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변호사 사무실 장면이 그 예다. 프랑스가 이민자의 합법 노동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합법 고용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이 모순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싶었고, 그 설명을 변호사에게 요청했다. 나 자신을 위한 질문이기도 했지만, 관객 역시 궁금해할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암르가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서류를 도둑맞았을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시민권에 대해 질문하던 순간처럼, 제과점의 파티시에 카림이 함께 있던 자리에서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두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그에게 묻고 싶은 질문은 더 많아졌다. 왜 결혼하지 않았는지, 왜 프랑스어를 배우려 하지 않는지, 어린 시절 왜 오랫동안 학교에 다니지 않았는지 같은 것들이다. 나는 이러한 질문과 상황들을 촘촘히 엮어 하나의 초상을 구성하고자 했다.
작품에는 분명 유머가 존재한다. 하지만 암르의 언어 문제가 강조될수록 그 웃음은 관객의 머릿속을 복잡하게도 한다. 이러한 감정의 충돌은 의도적으로 설계했나, 아니면 촬영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 쪽에 가깝나?
시놉시스에서 영화를 이렇게 요약했다. “프랑스에서 17년 살면서도 프랑스어를 못하는 남자는 코미디다. 쉰을 앞둔 나이에 프랑스어를 못하면서 계속 자신의 서류 이야기만 하는 남자는 한 편의 드라마 자체다.” 극적인 상황을 다루기 위해 오히려 가볍고 비극적이지 않은 톤을 찾고자 했다. <많다, 말이>의 핵심 과제는 바로 그 톤을 구축하는 일이었다. 암르는 때때로 자신과 자신의 상황을 향해 유머를 발휘한다. 그와 카림 모두 웃음을 자아내는 인물이라, 내가 찾던 유머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조건이 이미 갖춰져 있었다. 나는 유머를 현실에 관한 코멘터리이자 현실로부터 얼마간 거리를 확보하는 방식, 그리고 기존의 믿음에 균열을 내는 장치로 본다. 암르가 내게 변호사의 이메일을 재차 읽어 달라고 요구하면서, 결국 내가 읽는 내용을 스스로 의심하게 하는 장면처럼 말이다.
암르는 제도에 완전히 저항하지도, 순응하지도 않는 상태에 놓여 있는 듯하다. 이런 ‘중간 상태’가 오늘날 이주 경험을 이해하는 데 어떤 의미를 띤다고 보는지.
<많다, 말이>는 실패한 통합과 어마어마한 낭비에 관한 이야기다. 프랑스 정부는 이민자의 사회 통합을 가로막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언어 능숙도에 관한 최근의 법적 규정은 미등록 이주민을 통합의 가능성으로부터 전면 배제한다. 17년간 공식적으로 체류 자격 없이 살아온 암르가 얼마나 지쳐 있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공원 시퀀스에 우리가 와이드 샷 안에서 농담을 주고받으며 함께 걷는 모습을 담으려 했다. 그의 상황이 몇 년만 일찍 나아졌더라면 가능했을지도 모를 어떤 관계, 어느 평범한 커플처럼 보이는 순간을 상상했던 거다. 일종의 꿈 같은 것, 현실이 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가능성의 이미지였다.
전 세계적으로 이주민을 향한 혐오와 배제가 강화되는 추세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암르와 감독이 끝까지 함께한다는 점이다. 서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모든 여정을 나란히 통과했던 힘은 어디서 나왔다고 보나. 영화를 완성한 후에도 감독이 계속 붙들고 있는 질문이 있다면 무엇인지도 듣고 싶다.
그 힘은 우리가 대화를 멈추지 않고, 관계를 단절하지 않으며, 타인에게 손을 내밀고 연대하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바벨탑과 같은 상황에 있더라도 공통의 기반을 찾아야 한다는 믿음. 암르에 대한 나의 애정은 즉각적이었다. 그는 잘생겼고 유머러스했으며,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새로운 프랑스어’ 단어뿐 아니라 그의 몸짓과 고유한 표현 방식까지—도 매력적이었다. 아주 단순한 출발이었다. 최소한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했지만, 인물과 공간, 그리고 어떤 가능성만으로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영화가 암르를 둘러싼 신비의 베일을 벗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화가 끝날 무렵 그 신비는 더 커진다고 본다. 나는 암르가 프랑스어를 배우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고, 어떻게든 배우게 하려고 애썼다. 그가 배우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성장 배경, 문화, 사회적 계급에 의해 형성된 내 신념을 흔들었다. 독립적으로 살기 위해, 직장에서 착취당하지 않기 위해, 나를 포함한 모두와 수월하게 소통하기 위해, 그는 프랑스어를 배워야 했으나 원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괴롭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저항과 거부는 그의 자유다. 이 작업은 그 거부를 이해하도록, 적어도 들여다보도록 해주었다. 영화엔 그가 우리에게 보여 주기로 한 것, 그리고 내가 관객에게 보여 주기로 한 것이 나란히 담겼다. 마지막에 남는 어떤 멜랑콜리는 우리가 함께한 경험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암르는 이 영화가 자기 시련의 모든 단계에 동행한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여겼다. 난 이웃의 비밀을 밝히거나 속내를 투시하려 들지 않았다. 사생활과 결점까지 포함해 타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나란히 걸어온 여정의 특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