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영 감독은 곧 서른이 되는 나이에 이미 단편과 장편, 뮤직비디오와 미술관 영상 작품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필모그래피를 만들어 왔다. 제작의 순서가 뒤섞이는 과정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모텔 같은 임시 공간에서 오히려 영원한 시간을 발견하며, 사물의 움직임과 질감에서 서사의 힘을 끌어오는 그에게 영화를 만드는 일은 질문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질문을 만들어 내는 행위다. 주목할 만한 속도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는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다.
촬영된 하나의 원본을, 후보정 과정에서 색온도, 노출, 속도 등을 조절하여 여러 결의 화면으로 변주해 내는 작업에 큰 관심을 둔 것처럼 보인다. 〈땅거미〉에서는 숲 풍경이 시시각각 달라지고, 〈지느러미〉에서는 바다 표면이 결국 용암처럼 보이게 된다. 〈원령공주〉에서도 물가의 모래알이 비슷한 방식으로 다뤄진다. 촬영 이후의 가공 단계에서 이미지를 변형하는 작업이 필모그래피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러한 관심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과정에서 ‘빛’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언급하신 작업 중 〈원령공주〉와 〈땅거미〉는 프리프로덕션 때 스크립트, 일촬표, 기술적 측면, 그리고 접근 방식 위주로 준비했다. 촬영 기간에는 현장에서 발생하는 것들을 최대한 영화의 결에 맞게 담으려고 했으며 포스트프로덕션 때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미지를 포착하는 데 어떤 명확한 기준이 있다기보단 콘셉추얼한 접근법과 룰을 어느 정도 가정해 둔 후에 접근했다. 후반 작업이 시작되고 자연스럽게, 주어진 이미지 속 서사와 프레임 사이사이 발생하는 운동성, 감정 들을 최대한 이해한 뒤 연결하고 붙이고 조작하면서 이야기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을 거쳤다. 이런 다소 분절된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엔 스크립트를 쓰기 이전 각 작업을 시작하게 된 콘셉추얼한 계기와 동기에 큰 원을 그리듯 돌아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느러미〉의 경우 작업 기간이 길었으며 프리프로덕션, 프로덕션, 포스트프로덕션을 그 순서대로 진행하면서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 후시 녹음 후에 추가 촬영을 하고 추가 촬영 후에 편집을 하고 편집한 후에 또 촬영을 하는 등, 굉장히 분절된 과정 끝에 영화를 완성하게 됐다. 선형적이지 않은, 직선적이지 않은 과정을 통과해서 그런지 완성본에서 말씀하신 인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미쉘〉을 보면 클로즈업이 압도적으로 많고, 배우들의 연기 톤이나 대사의 결이 절제보다는 과잉 쪽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전체적인 스타일이 의도적으로 넘치는 쪽을 택한 것처럼 느껴졌는데, 이 영화에서 지향한 감각이나 온도가 있었다면 무엇인가? 그것이 관객에게 어떻게 도달하길 바랐는가?
저랑 정반대의 인상을 받으신 것 같다. 저는 절제돼 있다고 생각한다. 클로즈업도 최소한의 정보, 연기 방식도 최소한의 것만 남겨 비우고, 영화가 주는 정보 또한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해석의 여지 및 말하지 않거나 설명하지 않은 감정들이 자리 잡을 수 있게 하려고 했다.
〈미쉘〉은 모텔(여관)을 배경으로 하고, 〈1993〉 뮤직비디오 역시 모텔이 주요 공간이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하지 않는 다른 작품들에서도 모텔이라는 장소가 등장했던 걸로 기억한다. 모텔 혹은 여관이라는 공간에 끌리는 이유가 있는가?
임시 공간에 관심이 있다. ‘집’이라는 공간도 어떻게 보면 우리 세대에겐 임시 공간 같다. 1~2년짜리 계약을 하고 살아서 계속 이사를 다니고 있다. 모텔이나 호텔 등은 이런 임시 공간을 보여 줄 수 있는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위 질문에 대한 답변처럼 최소한의 것들을 프레임에 담으면서 ‘중요한’ 것들에 집중할 수 있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랬다.
임시 공간이 〈1993〉에서는 임시적이지 않은, 영원히 머무는 공간처럼 보이기도 하고 〈미쉘〉에서도 비슷한 인상이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시로 머무는 것이겠지만 거기에 있을 때 시간을, 또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등을 더 의식하게 되는 것이 재미있다. 그 안에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성이나 상황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했다.
초기작 〈캐쉬백〉이나 근작 〈지느러미〉 모두에서 인물보다 사물이나 물질이 더 강한 중력을 지닌 것처럼 느껴진다. 〈지느러미〉에서 반복되는 끈적한 액체 자국의 이미지도 그렇다. 사물이 서사를 끌고 가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러한 관심은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또 어디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캐쉬백〉부터 〈지느러미〉까지 화면 속 운동성, 그리고 질감에 관심이 많았다. 일반 서사가 제공하는 감정과 ‘공감’의 화면이 아니라, 외계적인 혹은 전혀 인간적이지 않은 소품과 운동성, 질감 들에서 비롯되는 감상과 감각이 서사에 어떻게 보탬이 될 수 있는지, 영화를 보는 감각에 어떤 상호 작용을 할 수 있는지 많이 고민하려고 했던 것 같다.
〈지느러미〉에는 체제 선전 광고가 등장하는데, 북한의 선전물과 묘하게 닮아 있다. 이 유사성은 의도된 것인가? 더불어 이 영화에서는 실제 존재하는 장소를 디스토피아의 재료로 전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픽션을 만드는 입장에서 그에 대한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북한의 선전물과 닮았다고 생각하면서 접근하진 않았다. 오히려 한국적인 것을 만들고자 했다. 우리가 보통 ‘남한적’이라고 하는 것은 미국의 자본 논리를 빌려온 광고나 선전물을 말하는데, 반면 소련, 북한 혹은 중국의 선전물과 닮은 이미지를 볼 때는 ‘북한적’이라고 하는 것 같다. 통일 한국의 이미지들은 미국의 자본 논리하에 만들어진 것들을 덜 닮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눈에 잘 띄고 자극적이고 투박하고 화려한 것이 중요했다. 다만 그걸 표현하는 방식과 관련해서는, 대자본의 논리에 맞게 나오는 광고들을 보면 동시대 유명인, 연예인 등이 출연하거나 스펙타클적인 풍경이 나오기 마련인데 우리 영화에 등장하는 광고는 그보다는 명확한 내용 전달에 포커스를 뒀다.
실제 존재하는 장소를 디스토피아 재료로 전유한다는 것에 관해선, 로맨스ˑ멜로 영화건 공포 영화건 모든 영화가 실제 장소를 그 영화의 재료로 ‘전유’하지 않나. ‘디스토피아 재료로 전유를 해야지’라고 생각하진 않았고 ‘근미래의 한국은 어떻게 생겼을까? 보통 sci-fi 영화에서 보이는 메탈릭한 질감이 아니라 오히려 낙후되고 쇠퇴한 것들로 더 가득 차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낚시터의 경우, 지금은 허물어지고 없는 어느 지하 낚시터 사장님께서 영업 중이지 않은 공간을 빌려주셔서 그곳을 꾸며 촬영했다.
〈원령공주〉를 보면서 몇 가지 인상적인 지점이 있었다. 유령의 목소리 같은 보이스오버와 화면 사이의 관계가 느슨하게 설정되어 있다는 점, 재중 동포 인터뷰 신에서 여러 대의 카메라가 인터뷰이가 아닌 주변의 풍경을 더 중점적으로 담는 데 쓰인다는 점이 그렇다. 이 작품은 미술관에서 상영되었던 것으로 아는데, 상기한 것들이 미술관이라는 상영 조건을 의식하고 작업한 부분이었는지 궁금하다.
보이스오버와 화면 사이의 관계 설정이 느슨하고 타이트하고의 문제는 고민하지 않았다. 둘이 평행하게 나아가며 맞닿기도 하고 전혀 다른 것을 지향하기도 하는데, 발생하는 의미들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배치’를 했다. 질문에서 언급한 것들은 미술관이라는 상영 조건을 의식하고 작업한 것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담게 된 커뮤니티와 계속 함께하며 촬영했고, 그 후에 미술관 의뢰가 들어와서 그분들에게 여쭤보고 허락받은 후에 어느 정도 완결성을 갖춘 형태로 전시를 한 것이다. 상영 조건에 대한 의식은 루핑 형태로 영화를 제작한 것에 영향을 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윈도우리커〉(2020)에서 〈지느러미〉(2025)까지, 약 5년간의 필모그래피를 돌아봤을 때 스스로 가장 크게 변화했다고 느끼는 지점은 무엇인가? 반대로,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이 변했다. 이제 곧 생일 지나면 서른이다. 더 열심히 살겠다.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 혹은 다음 작업에서 시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말해 달라. 더불어 지금까지의 작업에서 아직 풀리지 않은 질문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모든 질문이 풀리지 않았다. 질문을 풀려고 영화를 찍지는 않는 것 같다. 해당 질문의 문법에 맞춰서 답하자면 오히려 더 많은 질문을 하려고 영화를 찍는 것 같다.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가 많다. 똑같은 것들을 더 밀도 있게 시도하고 아직 시도해 보지 않은 것들도 치열하게 시도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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