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의 그림자〉(1978)의 제작 배경이 궁금하다. 첫 장편 데뷔작으로, 직접 주연 중 한 명으로 출연해야 했을 만큼 제한된 예산을 가지고 제작했음에도 부재와 상실, 그리고 사랑의 불가능성을 직조해 내는 미장센과 카메라 워크가 깊은 감명을 줬다. 특히 전적으로 파리에서 촬영했다고 들었는데, 유럽과 아시아 양식이 혼종된 가구, 의상, 공간의 구현이 놀라울 정도로 정교했다. 인물의 부재와 상실감을 표현하기 위해 텅 빈 공간을 유랑하는 카메라의 움직임 역시 탁월했다. 당시 어떠한 제작 과정과 스태프들의 협업을 통해 〈비단의 그림자〉를 완성하셨는지, 그리고 이 작품이 전체 영화적 궤적에서 어떠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 말씀을 부탁드린다.

〈비단의 그림자〉는 몬트리올 콩코르디아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 아트 학사 과정을 마친 후 위스콘신대학교의 ‘파리 1년 유학’ 석사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파리에 도착한 해에 만들었다. 홍콩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나는 지역 시네클럽과 학생 신문 『홍콩 차이나 위클리』를 통해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를 접한 이래로 언젠가 파리에 가보고 싶다는 바람을 늘 품고 있었다.

나와 파트너 존 크레시John Cressey는 파리에 도착하고 나자 영화 이론을 공부하기보다 영화를 직접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무척 이론 중심적이었던 석사 프로그램을 중도에 그만두기로 했고, 몇 주 사이에 사귄 몇몇 친구들과 함께 등록금을 환불받은 다음 자원을 모아 〈비단의 그림자〉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파리에 도착한 첫 주에 보았던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영화 〈인디아 송〉에 대한 나의 응답이었다.

 

이 영화의 도입부에는 〈히로시마 내 사랑〉의 구절이 인용되었고, 말씀하셨듯 마그리트 뒤라스의 〈인디아 송〉이 미친 강력한 영향력 또한 엿보인다. 그런 면에서 〈비단의 그림자〉 자체가 뒤라스의 텍스트 위에 겹쳐 쓴 하나의 ‘팔림프세스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이 작품은 〈인디아 송〉이 간과하거나 소외시켰던 ‘아시아 여성’의 관점, 즉 대항적 시선을 통해 서사를 다시 쓰는 작업을 수행한다. 식민지의 백인 지배자가 아닌 피식민 여성 주체의 시선으로 1930년대 서사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전경화하고자 했던 미학적, 정치적 목표는 무엇이었나?

당시 뒤라스의 스토리텔링 방식과 스타일에 충격을 받고 완전히 매료되었는데, 동시에 나는 이야기의 이면을 보여 주고 싶었다. 아시아에 거주하는 백인 식민 지배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1930년대라는 같은 시대적 배경 속 부유한 아시아 현지인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했다. 

무엇보다 운명이라는 굴레에 ‘갇힌’ 두 여성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부유한 가정이라는 화려한 환경에서 살아가지만 한편으로는 특정한 사회적 규범에 얽매여 있고, 뿌리 뽑힌 채 살아가며 순수함과 유년기에 작별을 고하는 데서 비롯한 혼란과 고통을 겪는 그들의 모습을 그려 내고자 했다.

 

〈비단의 그림자〉는 중첩된 소수자성을 지닌 여성 주체들을 탐구한다. 고향을 상실한 두 여성은 연대감 속에서 서로의 고향이 되어 주며, 강한 우정을 나누는 단짝이자 불가능한 사랑을 열망하는 연인으로도 읽힌다. 인물이 부재한 텅 빈 공간과 정물들, 끊임없이 부유하는 보이스오버 사운드, 그리고 무빙 이미지 사이에 돌연 기입되는 정지된 이미지의 결혼식 장면 등은 퀴어적이고 탈식민적인 멜랑콜리를 짙게 발산한다. 최근작인 〈팔림프세스트〉로도 이어지는 보이스오버의 활용, 현존과 부재의 병치 등 감독님 고유의 매체 미학적 방법론에 관해 듣고 싶다.

나는 ‘부재’의 서사에 깊은 관심이 있다. 그리고 작업에서 특히 보이스오버를 일종의 부재로 사용한다. 그것은 단지 사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친밀한 목소리일 뿐 아니라, 관객이 대화를 나누는 바로 그 상대가 부재함을 뜻하기도 한다. 마치 ‘직접 마주 보고 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기에 내 목소리만을 여기 남겨 둡니다’라고 전하는 것과 같다. 이는 또한 편지 쓰기(혹은 오늘날 디지털 방식의 글쓰기)와도 비슷해서 하나의 친밀한 공간을 만들어 내고 우리는 마치 다른 시선으로부터 보호받는, 안락하고 은밀한 내부에 있는 듯 느끼게 된다. 선(禪) 철학에서 말하는 ‘이심전심’과도 비슷하다. 내 영화에서 보이스오버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사용된다.

 

감독님은 저명한 편집자로서 오랜 기간 독보적인 경력을 쌓아 오셨다. 편집자는 감독이 마련한 질료들을 바탕으로 그 이면의 의도를 파악하고 시공간적 리듬을 직조하는 존재이다. 그 과정에서 특정 질료를 덜어내고 지움으로써 남겨진 부분들을 더욱 첨예하고 강력하게 세공한다. 그런 맥락에서 〈팔림프세스트〉는 진정한 ‘편집자의 영화’로 다가온다. 시인이었던 어머니와 아마추어 영화감독이었던 아버지가 남긴 방대한 사적 아카이브를 영화적 질료로 다루는 과정에서 특히 편집자로서의 정체성이 강하게 요구되었을 것 같다. 단순한 기원 추적의 다큐멘터리에 머물지 않고 기록들을 유희적으로 해체하고 재조립하여 새로운 차원의 오토 픽션을 직조해 냈다고 보았다. 연출자일 때와 편집자일 때 경험하는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며, 이 영화의 편집 과정에서 직면했던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팔림프세스트〉는 분명 ‘편집자의 영화’다. 실제로 해체와 재조합, 이탈과 재배치, 지우기와 다시 쓰기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애초에 전기 영화나 고전적인 설명 중심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어쩌면 ‘나의 뿌리 찾기’나 ‘가족 이야기’와 같은 전통적인 서사를 기대한 일부 관객은 혼란을 느낄지도 모른다.

사실과 허구, ‘진실’과 ‘재발명’ 사이에 놓인 ‘유희’와 같은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편집은 곧 쓰기였으며 매우 섬세하고 복잡한 작업이었다. 위치 전환과 미묘한 균형 잡기가 수도 없이 이뤄졌다. 이는 편집자로서의 기술과 역량에 대한 큰 도전이었다. 

나는 이 서사의 작가이자 편집자이기도 했기에 때로는 자아가 분열된 듯 느껴졌다. 그래서 편집과 관련해 편집자이자 작가, 예술가, 영화감독인 샤기그 아르주마니안Chaghig Arzoumanian의 보조가 필요했다. 그는 내가 아카이브 자료를 더 면밀히 바라보고 나의 목소리를 신뢰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비단의 그림자〉와 〈팔림프세스트〉를 관통하며 강렬하게 감각되는 요소 중 하나는 바로 모계 및 여성 예술가들의 유산이다. 어머니와 할머니, 중국의 신여성 작가들, 버지니아 울프, 마그리트 뒤라스에 이르기까지, 세대와 국경을 넘어 이 여성들의 유산을 물려받고 다시 쓰는 행위의 의미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버지니아 울프, 마르그리트 뒤라스, 패티 스미스, 조앤 바에즈, 조니 미첼 등 여성의 강력한 목소리를 남긴 선구자들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우리는 그 발자취를 따라 용기 있고 자유롭게 나아가는 한편으로 그들이 지녔던 연약함과 취약함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또 삶에서 시행착오를 겪거나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오늘날의 우리는 전보다 큰 축복을 누리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전 세대에게는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지만 우리는 실수로부터 회복하고 다시 시도해 다른 길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서구식 성인 스티븐의 기원을 추적하는 과정은, 20세기 아시아의 식민지적 근대성 속에서 한 가문이 경험한 계급적 상승과 타협의 역사를 폭로한다. 동시에 이 영화가 딸과 손자로 이어지는 모계 혹은 여성 중심의 서사로 마무리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나의 세 자녀가 각자의 사적·직업적 삶에서 어떤 이름을 사용할지 스스로 선택한 것만 보더라도 우리가 전과는 분명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고 느낀다. 과거에는 자신이 사용할 이름을 직접 정할 수 없었고 특히 여성의 경우라면 더더욱 그랬으니 말이다. 때로는 불만을 말할 일도 있지만, 이런 선택권은 여성으로서 우리가 먼 길을 걸어 더 자신감 있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었음을 보여 준다. 물론 모든 여성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누리고 있는 것들에 감사하는 한편으로 여전히 할 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다른 여성들에게 연민과 공감을 품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다음 세대는 문화와 연령대를 넘어 우리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또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 누벨바그와 누보로망, 중국 6세대, 대만 뉴웨이브 등 다양한 국가와 사조를 가로지르며, 또한 아날로그 필름과 디지털이라는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해 오셨다. 〈팔림프세스트〉 역시 폭넓은 횡단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초국가적이고 매체 횡단적인 경험과 정체성을 지닌 입장에서, 동시대 예술 영화 혹은 디아스포라 시네마가 나아갈 미래에 대해 통찰을 들려주신다면.

내가 사는 프랑스에서는 ‘아시아계’ 예술에 대한 인식이 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북미에 비하면 다양성을 무척 더디게 받아들이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예술과 영화는 우리가 무엇을 경험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점점 더 많이 반영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점점 더 문화적으로 다양한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만큼 영화 역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리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어딘가에 뿌리내리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자신의 ‘친족kin’으로부터 인정받고 받아들여지고자 하는 바람은 본질적인 무언가로 보인다. 이 양극, 즉 안정적으로 뿌리내린 상태와 자유롭게 ‘탈-정착된’ 상태 사이를 오가는 움직임이 앞으로 매력적인 작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아름다운 긴장의 불꽃을 일으키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