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그 자체로 공란이지만, 그 안에 사람이 거주하면 시간의 퇴적에 따라 역사가 쌓인다. 이란 출신의 피루제 호스로바니가 연출한 〈가족의 투시도〉는 감독 본인 가족의 역사를 투시하듯 살피는 다큐멘터리다. 197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중심이 된 가족사에는 이들 개인의 사연은 물론 이란의 현대사와 그에 얽힌 사회적 분위기가 모두 담겨 있다. 이에 대해 감독은 사적인 개인과 공적인 집단의 경험을 연결하여 확장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전한다.


현대적인 아버지와 전통적인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다큐멘터리다. 어떤 계기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을 전후한 가족의 사연을 카메라에 담았나?

어느 날, 부모의 양분된 모습이 우리 사회를 대변할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영화 제작자로서 아버지의 현대적 삶은 이슬람혁명 전의 시대, 어머니의 종교적 독실함은 혁명 후의 시대와 여러 유사점을 지녔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 집이 마치 집 바깥의 현실을 대표하는 소우주와 같이 느껴졌다.

 

영화 중간중간 아버지와 어머니의 집안 내 위상이 바뀔 때마다 그에 맞춰 영화 속 집 안 풍경도 바뀐다. 그 때문에 집 내부의 미장센을 설치미술처럼 작업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찍기 위해서 특별한 공간을 마련했다. 현재의 어머니 모습이 등장하는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만 진짜 부모님 집에서 촬영했다. 집의 내부는 일부러 길고 널따란 공간으로 구성했다. 집을 통해 어머니의 영역과 아버지의 영역이라는 두 극을 은유적으로 나타내고 싶었다.

 

바로 그와 같은 공간 구성의 의도 때문에 영화의 제목이 더욱 와닿는다.

집 안, 그러니까 영화의 ‘내러티브 공간’을 카메라로 추적하는 것은 꼭 방사선 촬영기로 집을 스캔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데올로기가 어떤 식으로 우리 집과 우리 가족 앨범에 침투해 있는지, 그 이야기를 보여준다.

 

집 내부를 채우는 가구와 물건들은 어떤 기준으로 구성했나?

집의 장식은 의미 있는 물건, 죄가 되는 물건, 금지된 물건 등 여러 가지를 염두에 두며 혁명 이후에 실내가 어떻게 변형됐는지 드러날 수 있도록 채웠다. 바깥(큰 역사)과 안(작은 역사)이 모두 표현되도록 신경 썼다. 내러티브 구조가 혁명 전과 혁명 후, 이렇게 둘로 나눠진 형태다. 아버지와 어머니 각각의 생활 양식, 이데올로기 중 어느 쪽이 우세한지, 누가 실권을 행사하는지가 영화 중간마다 변화한다. 가정 내에서의 권력 이동은 당시 가정 밖에서 벌어졌던 권력 이동과도 상응한다.

 

부모의 과거를 다룰 때 아버지가 찍은 사진과 함께 비디오 카메라로 찍은 듯한 영상이 활용된다. 이 영상은 부모님이 당신들의 젊은 시절을 직접 촬영한 건가?

가족 앨범의 사진들이 이번 영화의 주요 아카이브가 됐다. 과거에 찍은 가족 앨범의 사진들을 많이 활용했다. 그 밖에도 가족사진이 지닌 이야기들을 확장하기 위해 공식적이거나 일상적인 기록 화면들이 들어갔다. 또한, 슈퍼8카메라를 이용해 아웃 포커스로 촬영한 장면들도 사용했다. 우리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기억의 어렴풋한 질감과 닮았다.

 

사진과 함께 편지도 이 영화의 중요한 아카이브다. 아버지와 어머니 목소리를 연기할 배우를 캐스팅할 때 고려한 사안은 무엇인가?

목소리를 연기해 줄 배우들을 뽑기 위한 캐스팅 과정이 있었다. 어머니 목소리에 대해서는, 적절한 목소리와 연기실력을 갖춘 사람이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았다. 이란의 유명 배우인 소헤일라 골레스타니였다. 소헤일라는 영화 전반부에서는 소심하고 연약하며 스위스는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고 느끼는 어머니를, 후반부에서는 자신만만하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어머니를 표현해냈다. 아버지 목소리를 연기할 배우를 찾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프랑스어를 할 수 있으면서, 프랑스어로 노래도 부르고 클래식 음악을 휘파람으로 불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싶었다. 그러다 잘 알려진 작곡가이자 이란계 프랑스인 뮤지션인 크리스토프 레자이를 발견하고 정말 기뻤다. 최고의 선택지였기 때문이었다. 크리스토프는 자신의 커리어 사상 처음으로 성우로서 연기해달라는 협업 제안을 승낙했다. 아버지 목소리를 연기하기에 아주 흡족할 만큼 따스하고 다정한 목소리를 가진 뮤지션이었다. 두 사람과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도 영광스럽다.

 

결혼을 전후하여 부모의 시간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길게 다루면서 극 중 감독이 등장하는 장면은 유아 시절로 한정했다.

이슬람혁명(1979)이 일어났을 때 나는 일곱 살이었다. 달콤한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가진 나이대에 상징적으로 머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였다.

 

현대적인 아버지와 전통적인 어머니 사이에서 감독은 좀 더 아버지 쪽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머니와 생각 차이는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하다.

세대차도 고려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서로 다른 세대는 거의 언제나 극명한 가치관, 신념, 정치적 입장의 차이를 보인다. 우리는 삶을 살아 나가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생각의 차이를 존중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가족의 투시도〉를 보면서 가족은 개인적인 듯해도 자라난 환경과 사회와 국가에 영향받을 수밖에 없고, 그 결과로 가족이 사는 공간에 반영된다고 느꼈다.

일반적으로 가족은 사랑과 존중을 기반으로 형성되고 유지되는 개념이다. 〈가족의 투시도〉에서 우리 부모는 굉장히 상징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분은 서로 다른 두 가지 현실, 이데올로기, 생활 양식의 대표자다. 나는 사적인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장하고, 개인적 경험과 집단적 경험을 연결하고 싶었다.

 

아버지는 작고하셔서 〈가족의 투시도〉를 볼 수 없다. 어머니는 딸이 만든 영화를 보셨는지, 보셨다면 어떤 감상평을 들려줬는지 궁금하다.

축하한다고 말하면서 굉장히 감격했다. 딸이 어머니 당신의 삶에 대해서 스토리텔링을 했으니. 내가 어린 시절의 기억에 의지해 쓴 허구적 대화들이 진실을 담고 있다고 인정해 줬다. 나는 내가 태어나기 전의 대화들에 대해서도 창의적으로 쓰려고 애를 썼다. 대화와 내레이션이 일상적인 어조로 전개되는 것도 좋아하셨다. 작품의 시각적 스타일이나, 어머니 배역을 연기한 배우의 목소리, 사운드 디자인과 음악을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가족의 투시도〉를 끝내고 현재 준비 중인 작품이 있다고 들었다.

이제 시작 단계다. 작품을 만들기 위한 초기 단계에 있다. 어떤 나라를 떠나거나 떠나지 않거나, 이민을 하거나 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결정,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초래되는 결과에 관한 이야기랄까, 그런 작품이 될 것 같다.


피루제 호스로바니
밀라노에서 수학했다. 졸업 후 이란으로 돌아가 〈삶의 열차 Life Train〉(2004)를 연출하여 감독으로 데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