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 2022 | 104min | 한국경쟁
서른아홉까진 평범한 주부였던 심혜정 감독은 2012년 극영화 단편 〈김치〉로 늦깎이 데뷔했다. 시위 현장(〈노래는 노래한다〉)부터 부모님 댁에서 간병 일을 하는 재중 동포 아줌마(〈아라비아인과 낙타〉)까지 자신의 주변을 단편 다큐멘터리로 담아온 그는 극영화에서도 가까운 삶의 민낯을 들춰낸다. 친정 엄마가 담가준 김치(〈김치〉), 아내를 간병하는 초로의 남자(〈욕창〉)까지 익숙한 일상에서 낯선 얼굴을 길어 올린다. 올해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된 두 번째 장편 〈너를 줍다〉는 사랑에 배신당한 지수가 타인의 쓰레기를 뒤지는 여정을 그린다. 쓰레기에서 버린 사람의 진면목이 보인다고 믿는 그는 쓰레기 속에서 진짜 사랑을 주울 수 있을까. 2015년 〈물구나무서는 여자〉, 2017년 〈동백꽃이 피면〉이 단편경쟁 부문에 초청됐고 2019년 첫 장편 〈욕창〉이 한국경쟁 부문에 상영됐다. “4년 만에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아 더욱 기쁘고 설렌다”는 그가 이웃의 쓰레기봉투까지 뒤져가며 만든 신작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쓰레기를 뒤지는 여자의 사랑이란 소재를 착안한 계기는 무엇인가.
요즘 많은 사람들이 데이트 상대를 만나기 전 SNS에서 신상 정보를 찾아본다. 타인에 대한 불안일 수도 있고, 효율성 때문일 수도 있다. 상대방의 정보를 많이 안다는 건, 여러모로 안전하다. 하지만 그 정보는 진실에 가까운가? 상대방의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것과 사랑에 빠지는 게 연관이 있는 걸까? 궁금했다. 그리고 오래 전 재밌게 읽은 하성란 작가의 단편소설 「곰팡이 꽃」이 생각났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쓰레기 정보로 아파트 주민들의 취향과 습관을 파악한다. 그런 사람이라면 해피엔딩의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서 시작하게 됐다.
전작들에서도 인간의 죽음(〈동백꽃이 피면〉), 구제역 대량 살상(〈사라진 목소리〉), 쇠퇴하는 신체 변화(〈욕창〉) 등을 다뤄왔다.
타자화된 것들에 관심이 많다. 여성, 늙음, 병듦, 이주 노동자, 성 소수자 등이다. 이런 주제에 끌리는 이유는 〈너를 줍다〉의 주인공 지수의 대사로 대신 답하겠다. “버려지는 게 더 많은 걸 얘기해주니까.”
영화 제목이 원래 ‘곰팡이 꽃’이었다가 바꿨다고.
‘곰팡이 꽃’은 원작 소설 제목이기도 하고 어떤 존재가 사라져가는 순간에 피는 꽃이다. 그렇기에 가장 강렬한 욕망이기도 할 것이다. 처음 영화를 기획할 때 원제가 워낙 좋아서 동일한 제목으로 생각하다가, 시나리오를 다 쓰고는 한국어 제목을 〈너를 줍다〉로 바꿨다. 좀 더 주인공의 행동이 느껴지는 제목으로 하고 싶었다.
“그의 쓰레기는 품위가 있다” 등 쓰레기에 대한 표현이 재밌다. 어떻게 구상했나? 실제 조사한 결과를 반영하기도 했는지.
사람들은 매일매일 쓰레기를 버리며 산다. 쓰레기를 어떻게 버리는지를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쓰레기가 품위 있는 사람은 분명 그 자신이 품위 있는 사람일 거다. 버려지는 것에 공을 들이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사랑하던 사람에게 함부로 버려졌던 지수는 그런 사람에게 끌린다. 촬영을 준비하며 아파트에서 내놓은 쓰레기봉투를 수거해 열어보기도 했다. 그중 몇 개는 실제 영화 소품으로 사용했다.
주인공 지수는 식품 통신 판매 일을 한다. 진상 고객을 응대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데.
인터넷 식품몰은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정보를 깊이 있게 알 수 있다. 쓰리기만큼이나 무엇을 먹는지도 그 사람을 잘 설명해주니까. 주인공 지수는 많은 정보를 알아야 안심하는 사람이고 그 정보를 통해 일 처리도 잘한다. 지수가 택할 만한 직종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항상 변수가 발생한다. 그게 고객의 전화다. 정보를 아는 것만으로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싶었다.
지수가 쓰레기를 조사하는 상황과 로맨스 감정을 한 화면에서 동시에 쌓아나가는데.
사랑은 그 사람에 대해 계속 알고 싶고, 조사하고 싶어진다. 쓰레기를 조사하는 과정이 사랑의 과정과 닮았다.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큰 고민은 관객이 지수에게 공감할 수 있을지였다. 쓰레기를 뒤져서 정보를 캐낸다는 설정이 재밌지만, 그런 행동을 꽤 오랫동안 지속해오고 있는 지수를 공감할 수 있게 만들기가 가장 어려웠다. 엄마와의 관계,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 주민들에게 당하는 모멸, 불안 등을 잘 표현하려고 더욱 고민했다.
장면이나 인물 사이의 여백이 도드라지는 건 어떤 이유인가.
지수는 겁도 많고 생각이 많다. 관찰할 수 있는 거리, 즉 안전한 거리와 생각의 여백들을 주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캐스팅이 쉽지 않았겠다.
지수 역의 김재경 배우가 가진 맑음, 자연스러움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연약함과 씩씩함이 공존해서 좋았다. 상처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는 사람, 그 상처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는 씩씩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 지수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우재는 안심이 되고 따뜻하고 착한 사람이다. 현우 배우가 그런 사람이다. 첫 미팅 때 우재의 전사까지 깨알같이 적어와 놀랐다. 연기는 대본 리딩을 많이 하면서 캐릭터를 완성하고 합을 맞춰나갔다. 연기 톤에 대해선 김재경 배우에겐 말과 몸의 속도를 늦춰달라고, 현우 배우에겐 추격하거나 언성을 높일 때도 공격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머지는 배우를 믿고 갔다.
정말 쓰레기로 그 사람을 알 수 있을까?
쓰레기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진실에 다가간다는 의미로는 그렇다. 하지만 사랑이 진실과 상관있을까? 어쩌면 사랑은 환상과 더 가깝지 않을까?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그렇다.
다음 작품이 궁금하다.
나는 주변 사람부터 먼 과거의 사람까지 ‘사람’에게 끌린다. 어떤 인물은 징글징글해서, 어떤 인물은 답답해서, 어떤 인물은 지나치게 활력이 넘쳐서 등 각자 다른 이유로 끌린다. 결국 그런 인물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최근에 관심이 간 한 인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시작했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니는 국립대 남자 교수의 이야기다. 극영화로는 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연령층 여자들의 욕망이 충돌하는 코미디를 쓰고 있다.

심혜정 SHIM Hye-jung
데뷔작 〈욕창〉(2019)은 2019년 전주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되었고, 로스엔젤레스아시안퍼시픽영화제에서 사회이슈코멘터리상, 브졸국제아시아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