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정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소설가 김애란의 동명 단편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명지와 지은은 한날한시 남편 도경과 동생 지용을 잃는다. 이후 명지는 폴란드 바르샤바로 긴 여행을 떠나고, 지은은 동생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병원에서 식음을 전폐한다.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절망의 시간을 건너 희망을 응시하는 회복의 시간으로 나아간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내게 무척 특별한 영화제 중 하나다. 디지털 대안영화를 기치로 시작해서 예술영화와 독립영화를 주목하고 발굴하는 영화제의 행보에 항상 관심이 있었다. 특히 전주국제영화제만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극장들이 비교적 가깝게 포진되어 있고 가맥집들도 가까워 사람들도 쉽게 만날 수 있으며 관객 분위기도 가깝게 느낄 수 있다. 축제 분위기를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는 영화제다. 특히 올해 10주년을 맞는 전주시네마프로젝트로 〈설행_눈길을 걷다〉(2015)를 제작할 때부터 뭔가 가족적인 느낌이 됐다고 할까. 애정하는 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선정되어 정말 기쁘고 영광이다.
청량한 오프닝을 보고 이 영화가 죽음과 상실과 애도를 다루는 작품일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이야기는 어디서 싹을 틔웠고, 어떻게 발전시켰나?
김애란 작가의 동명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참 흥미로운 게, 원작 소설이 실린 소설집 『바깥은 여름』을 2017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작가에게 직접 받았다. 김애란 작가가 마침 바르샤바에 레지던시 작가로 와 있었고, 나는 한국문화원에서 주최하는 한국영화제에 ‘김희정 감독 특별전’으로 초청받아 갔다. 〈열세살, 수아〉(2007) 상영 때 평소 친분이 있던 윤성희 소설가의 소개로 만나 책도 받은 것이다. 그때는 소설을 너무나 감명 깊게 읽고도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러다 2020년, 오랜 시간 함께 영화를 만들어온 유병옥 대표의 제안으로 영화화를 결정했다. 그동안은 내가 직접 쓴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연출을 했다. 각색 시나리오로 작업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단편소설을 장편영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더 필요했다. 그래서 새롭게 만든 인물이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소년 해수다. 해수 캐릭터가 만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지용, 지은과 함께하는 장면이 만들어졌고, 해수의 부모와 지은이 일했던 빵집 주인 아저씨, 쉼터 아이들 등의 연결 고리가 생겼다.
명지와 지은 사이 메신저 역할을 하는 소년 해수가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모습이 묘하게 영화에 운동성을 불어넣는다.
지은이 몸을 마음대로 쓸 수 없고 도움을 받아야하는 입장이다 보니 해수가 움직이는 게 중요했다. 해수라는 새로운 인물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다니는 소년의 이미지가 그려졌다. 푸른 녹음 아래 청량하게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십대 소년의 모습이 중요한 이미지였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두 여성, 명지와 지은의 이야기가 나란히 흘러가다 결국 만나는 구조다. 명지와 지은의 마음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편지’를 통해 확인되는데, 두 사람의 시간이 어떻게 만나고 포개지길 바랐나. 또한 편지를 통한 대화는 어떻게 표현하고 싶었나.
이전의 내 영화에는 내레이션이 없었다. 그런데 김애란 작가의 소설에 나오는 편지를 살리려다보니 보이스 오버를 많이 활용하게 됐다. 지은이는 명지에게 편지를 쓰고, 명지는 현석에게 이메일을 쓰고, 해수는 지용을 생각하며 일기를 쓴다. 이런 요소가 인물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장치가 되었다. 더불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명지의 질문에 답하는 시리(siri) 역시 극에 중요한 목소리로 역할을 하게 된다.
“삶이 죽음에게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게 뛰어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마지막 명지의 편지를 읽고 나서, 결국 영화 속 인물들의 목적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 쪽으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제목에 담고 싶었던 의미가 있다면.
언급한 대사가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드러내는 대사라고 생각한다. 원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다. 명지는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죽은 남편을 이해하게 된다. 제목에 대한 답은 관객들이 내게 얘기해주면 좋겠다.
폴란드 바르샤바를 영화의 주요 공간으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원작에선 바르샤바가 아닌 에든버러였지만 내가 잘 아는 폴란드 바르샤바로 바꾸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이 영화에는 두 도시, 광주와 바르샤바가 나오는데 두 도시는 역사적인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어 서로 공명한다고 생각했다. 해수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지나가는, 분수대가 있는 광장은 예전 전남도청이 있던 자리다. 현재는 오월광장이라고 부르는 공간으로, 지금도 5·18 추모제를 하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영화에도 등장하듯 바르샤바에는 제2차 세계대전 추모벽이 세워져 있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그것의 영향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8월 1일 바르샤바 봉기를 추모하는 5분 동안의 묵념은 그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중요했다.
폴란드 우츠 국립영화학교에서 유학했다. 그래서 촬영이 더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 같다.
폴란드에서 영화를 찍은 경험은 정말 좋았다. 예전에 폴란드에서 단편영화들을 찍었고 20년 만에 돌아가 다시 영화를 찍는 거였는데 새롭지 않고 익숙했다. 특히 촬영감독인 아르투르 주랍스키는 영화학교 동기이고, 폴란드 배우로 유일하게 출연한 카샤 흐마라는 클레르몽페랑 단편영화제에 초청받았던 내 단편영화 〈만남〉(2000)에 주인공으로 나왔던 친구로 이번 영화에서 짧지만 중요한 역인 택시 기사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현지의 언어를 안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영화 촬영 현장도 결국은 의사소통의 장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폴란드 스태프들이 일을 전문적으로 잘했다. 한국 스태프와도 서로 잘 통해, 미팅 주선자로서 대성공한 기분이다. 하하. 다음에는 영화 전체를 폴란드에서 찍고 싶다.
전체 촬영은 몇 회차였고, 폴란드에서의 촬영은 얼마나 진행했나.
한국 광주 분량 촬영은 11회차, 바르샤바 촬영은 6회차, 총 17회차로 찍었다.
인물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영화와 배우 박하선의 차분한 분위기가 잘 어울렸다. 박하선 배우와는 어떻게 인연이 닿아 함께하게 됐나.
우연히 박하선 배우가 출연한 TV 프로그램을 봤는데, 미술관에 가면 방명록에 자신의 이름이 아닌 죽은 남동생의 이름을 적는다면서 그렇게 하면 동생이 어디에선가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말을 했다. 어쩐지 우리 영화의 정서와 잘 맞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바르샤바에서 의도치 않게 거짓말을 하는 명지를 이해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보이스 오버가 중요한 영화라 명지의 목소리가 매우 중요했는데, 박하선 배우의 조금은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명지와 어울린다고 생각해 시나리오를 건넸다. 다행히 박하선 배우가 나의 전작인 〈프랑스여자〉(2019)를 좋게 봤던 터라 어려움 없이 잘 연결됐다.
이번 영화를 만드는 데 영향을 준 것들, 혹은 이번 영화를 만들며 자주 떠올린 생각들이 있다면.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광주와 촬영지였던 바르샤바 생각을 많이 했다. 원작과는 다르게 시나리오에서 많이 첨가된 부분이 이 두 도시 부분이 아닐까 싶다. 개인의 애도는 역사적인 애도와도 연결된다는 생각을 했다. 폴란드가 배경인 이유가 큰데, 이미지적으로는 (폴란드 출신인)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을 떠올렸고, 사운드적으로는 쇼팽의 음악을 많이 생각했다. 쇼팽의 멜랑콜리와 고국에 대한 향수 같은 것들. 〈프랑스여자〉의 음악감독이었던 마줴나 마이헤르가 이번 영화의 음악도 맡았고 그와 쇼팽의 음악 얘기를 많이 나눴다.
김희정(KIM Hee-Jung)
2007년 〈열세살, 수아〉로 장편 데뷔 후 〈청포도 사탕: 17년 전의 약속〉(2011), 〈설행_눈길을 걷다〉(2015), 〈프랑스여자〉(2019)를 쓰고 연출했다. 한국과 폴란드에서 촬영한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2023)는 그녀의 신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