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산 The Invisible Mountain
USA┃2021┃83min┃영화보다 낯선
르네 도말의 『마운트 아날로그』(1952)에 묘사된 미지의 산, 즉 바다에 떠 있는 허구적 산을 찾아 핀란드에서 그리스까지 여행하는 남자에 대한 환각적 초상.
〈보이지 않는 산〉은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 큐레이터인 벤 러셀의 연금술이다. 바다에 떠 있는 보이지 않는 산을 찾기 위한 이 환각적 여행기는 헬싱키의 전위적 밴드 올림피아 스플렌디드의 공연과 나란히 놓인다. 다큐멘터리와 실험영화, 퍼포먼스, 뮤직필름, 로드무비로 모습을 바꾸는 영화는 부단한 의식의 확장을 통해 초월의 봉우리를 향한 영적 탐사를 그린다.
〈보이지 않는 산〉은 작가 르네 도말의 소설 『마운트 아날로그 Le Mont Analogue』를 토대로 했다. 도말의 소설이 어떤 영감을 주었는가?
도말의 소설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산을 찾아 나선 탐험가들을 좇는다.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도말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그가 어떤 유토피아를 상상했는가는 소설에서 빠져 있다. 논픽션의 틀 안에서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찾는 불가능성은 이중부정이 되었다. 그것은 투오모 투오비넨(그리고 그와 함께한 우리들)의 여정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구성은 올림피아 스플렌디드의 공연과 익명의 장소들을 배회하는 투오모의 행적을 교차한다. 교차 구조가 불가능한 목표점을 향한 탐사라는 모티프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우리는 핀란드 북부에서 그리스까지 이동하였고 그 과정에서 각 나라의 가장 높은 산 정상을 가로질렀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출발했을 때 이미 산 위에 있었던 것 같다. 경로는 모든 방향—안쪽, 바깥쪽, 왼쪽, 오른쪽—으로 우리를 이끌었지만 항상 위쪽을 향하게 했다. 산을 오르는 길은 결코 하나가 아니다.
이상향을 찾는 여정을 그린 이야기가 처음이 아니다. 〈아틀란티스 Atlantis〉(2014)에서는 몰타로 여행하였고, 〈어둠을 밀어내는 주문 A Spell to Ward Off the Darkness〉(2013)의 주인공 역시 에스토니아, 핀란드, 노르웨이 등지를 여행한다. 당신 영화에서 유랑하는 인물들이 좇는 것은 무엇인가?
위에 언급된 모든 영화에서 목적지는 주인공들이 여정에서 겪는 사건들만큼 중요하진 않다. 이러한 탐사들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은 시네마이므로 의미가 드러나게 하는 것은 결국 시네마의 경험, 즉 일시적으로 다른 시공간에 공존하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전작들은 보이지 않는 영역들, 보이지 않는 사람,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루어왔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산〉의 모티프로부터 일관성을 발견했다. 비가시 영역이라는 테마와 당신의 비전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영화는 재현에 최적화된 매체이기 때문에 우리는 영화의 진정한 힘이 보이지 않는 것을 전달하는 데 있음을 종종 잊는다. 내러티브 영화 안에서, 이것은 감정의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과 연관된다. 하지만 나의 비전은 영화가 고도의 지각/체화된 상태를 창조하는 것과 더 관련이 깊다는 것이다. 나는 영화를 변형의 공간,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게 되는 현장으로 활성화하고 싶다.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비가시 영역은 ‘사운드’에 의해 대변된다. 이런 관점에서 이미지와 사운드의 관계 설정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나는 〈보이지 않는 산〉이 투오모의 초상일 뿐 아니라 그가 세상을 지각하는 방식의 초상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사운드스케이프는 투오모, 그리고 그가 이동하는 풍경과의 관계 속에서 수축, 팽창하는 청각적 환각이다. 목소리가 잔향을 모으고, 메아리가 기원으로부터 해방되며, 안정적인 이미지가 주관적 불확실성에 의해 불안정해진다. 이 영화에서 소리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한 상태에서 더 높은 상태로 이동하는 수단이다.
감독인 당신이 나타나는 순간이 있다. 이미지는 흑백으로 변하고 당신은 투오모와 걸으며 대화를 나눈다. 엔딩 신에서는 아예 카메라를 내려놓고 함께 산을 오른다. 영화 속 캐릭터가 되기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산〉은 영화이기 이전에 투오모, 그리고 촬영 팀과 함께한 탐색의 여정이었다.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우리는 정말 바다 위에 떠 있는 그 산을 찾고 있었다. 우리는 정말로 변형되고, 초월하고, 용해되기를 바랐다. 이 탐색의 프로듀서, 감독, 카메라 오퍼레이터이자 동행인이었던 나는 이미 꽤 드러난 존재라고 느꼈다. 그 시점에 스크린 위에 나타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보다 정직한 제스처라고 느꼈던 것 같다.
흑백 푸티지의 촬영을 벤 리버스가 맡았다. 흑백 촬영만 그에게 맡긴 이유가 무엇인가?
벤 리버스가 이번 작품에 얼마간 관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산〉은 우리 두 사람이 같이 연출했던 영화 〈어둠을 밀어내는 주문〉의 스핀오프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번 작품은 협력작이 아니었고, 따라서 최종적으로 그가 여정의 마지막 삼분의 일 중 일주일 동안 함께하는 편이 가장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영화에는 장 루슈가 주창하였던 시네-트랑스(cinetrance)적인 순간들이 있다. 촬영 주체와 촬영 대상이 자아를 초월하여 수행적인 역할을 하는 장면들이다. 이런 전환적인 상태는 왜 중요한가?
촬영을 하든 촬영의 대상이 되든, 나는 영화에서 특별히 자연스러운 것을 발견한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픽션의 퍼포먼스를 근간으로 영화산업이 구축되었을 것이다. 일단 카메라가 없다고 가장(假裝)하고 나면 다른 사람인 척하는 것이 한결 수월하다. 시네-트랑스에 대한 루슈의 묘사는 카메라가 돌아갈 때 촬영의 대상과 주체가 모두 수행적인 자아가 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자기 자신을 연기해도 좋다는 허가는 무척 깊은 영역으로까지 우리를 이끌기도 한다. 물론 늘 그런 것은 아니다.
당신의 영화는 현실 너머의 환각, 초월의 영역을 갈망하고 그것을 장인적인 손길이 묻은 16mm 필름에 담는다. 이 두 요소는 어떤 상관관계에 있는가?
나는 영화의 형식과 영화의 내용을 구별하지 않는다. 묘사된 세계가 곧 영화의 형식이다. 그러나 영화와 세계를 혼동하지는 않기 때문에 투오모와의 여정을 마친 후 그 자체로 여행이 될 수 있는 영화를 창조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관객이 영화 속 주체와 함께 움직이다 끝내 그 주체가 되기를 바란다. 그들이 외부에서 내부로, 무지에서 이해로 이행하기를 바란다. 내가 원하는 것은 변형이다! 영화의 능력을 감안할 때 이건 아주 작은 바람에 불과하다. 적절한 조건만 주어진다면 정말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믿는다.
〈보이지 않는 산〉은 2020년 프랑스에서 설치 형식으로 전시되기도 했다. 영화 버전과 설치 버전을 위해 어떻게 다른 접근이 이루어졌는가?
〈보이지 않는 산〉은 멕시코시티에서 모뉴멘탈 사운드 설치 작품으로 처음 선을 보였다. 이 버전의 제목은 「라 몬타냐 인비지블레 La Montaña Invisible」로, 대륙 횡단 여행 중 녹음한 소리들을 바탕으로 사운드의 산을 만들었다. 두 번째 전시는 파리에서, 「라 몽타뉴 앵비지블 La Montagne Invisible」이라는 제목의 6채널 비디오 설치로 풀었다. 3시간 이상 반복되는 여정을 그리며 꿈을 꾸는 듯한 최면에 빠뜨리는 작품이었다. 비디오 신시사이저로 제작한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크고 깊은 울림과 소리에 따라 관람자는 천천히 정상을 향해 오른다(그리고 다시 내려온다). 이번 장편영화를 포함한 상이한 버전들은 하나의 정상에 도달하기 위한 서로 다른 길이다. 각각이 제시한 여정은 확연히 달랐다. 이에 따라 이들이 대변하는 정상은 각기 유일무이한 것으로 감지 되었으리라 확신한다.

벤 러셀
1976년 미국 스프링필드 출생. 단편영화 30여 편, 장편영화 4편을 만든 영화감독이자 설치미술, 퍼포먼스, 큐레이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 활동을 펼치는 아티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