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아 감독의 〈동두천〉(2017)은 1992년 기지촌에서 일어난 윤금이 피살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관음으로서의 카메라의 시선이 아닌 공감으로서의 체험을 끌어내며 VR 매체의 영화적 가능성을 입증했다는 평을 받았다. 신작 〈소요산〉은 미군 위안부 여성들을 감금하고 치료했던 소요산 낙검자 수용소에 초점을 맞춘, ‘미군 위안부 3부작’에 해당하는 VR 연작이다. 이 글은 단행본 『보더리스 스토리텔러』에서 발췌, 수록했다.


VR과 영화의 내러티브 구축에 차이가 있다면?

VR영화와 일반 2D영화의 내러티브 구축의 차이는 엄밀히 말해 연출자와 관객 사이의 권력 관계가 달라지는 것이다. 2D 극영화의 연출자는 프레임 바깥의 세상을 다 배제할 수 있고, 편집을 통해 관객이 순차적으로 무엇을 보고 생각하고 느낄지 미리 정해놓을 수도 있다. 그러나 360도 몰입형 매체는 그런 통제가 불가능하다. 이런 VR의 특성에 반감을 느끼는 영화 감독들도 많지만 나는 VR의 이런 점이 혁명적이라고 느꼈다.

 

〈소요산〉 작업 시 〈동두천〉 작업에서 깨달은 무언가를 새롭게 반영한 부분이 있는가?

〈동두천〉을 만들며 깨달은 것은 3D 360도로 촬영된 이미지가 문자 그대로 실감형 경험(immersive experience)을 관객에게 제공하기에 공간을 아카이빙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사실이었다. 〈소요산〉에서는 소요산 낙검자 수용소를 VR 매체에 담아내는 것이 수용소에 갇혀 강제 치료를 받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과 함께 주된 목표가 되었다.

 

〈소요산〉의 이야기를 구성한 과정이 궁금하다.

〈동두천〉에서는 피해자의 이동 경로, 그 공간의 점진적 변화가 서사의 축이 되었다. 〈소요산〉의 경우는 달랐다. 한 특정 여성이 아닌, 수용소 건물에 갇혔던 다수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했다. 이번에는 수용소 벽에 붙어 있던 일과표, 즉 공간의 이동이 아닌 시간의 점진적 변화가 서사의 축이 되었다. 고풍스런 손 글씨로 적혀 벽에 붙어 있던 수감 여성들의 일과표에는 빡빡하게 짜인 일과가 적혀 있었다. 이 일과표를 기반으로 수감된 여성들이 감내해야 했던 수용소 내부의 하루를 재구성하는 것이 〈소요산〉 서사의 기초가 되었다.

 

관객이 어떤 경험을 하길 기대했나?

미군 ‘위안부’라는 거대한 숙제가 지식이나 정보가 아닌 감각으로 와닿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군 ‘위안부’에 얽힌 복잡하고 정치적인 이슈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누구도 감히 부인할 수 없는 이 여성들의 빼앗긴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런 작은 VR 작품으로 그렇게 큰 이야기가 전달이 될까 반신반의하면서도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나 사전 지식 없이도 그냥 피부로, 귀로, 가슴으로 여성들의 고통이 느껴지기를 바랐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관객들은 그렇게 느껴주었다.

 

프레임이 사라진 VR 작업 자체가 갖는 의미가 있지만, 소요산처럼 매우 조심스러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카메라의 시선을 어떻게 세팅하는가?

나는 몸으로 영화를 만든다. 오죽하면 미국 듀크대에서 준비하고 있는 회고전 제목이 ‘The Embodied Cinema of Gina Kim’(김진아의 체화된 영화)이다. 카메라의 시선을 예로 설명하자면, 나는 내 몸이 제공하는 직관에 따라 카메라의 위치를 정한다. 그건 어쩌면 내 첫 작품이었던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에서 유래한 접근 방식이 아닐까. 내게는 카메라로 무언가를 촬영한다는 행위 자체가 ‘보존’의 시도이고 상징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포옹’의 시도이다. 그런 행위에는 당연히 시간을 거슬러 망각으로부터 지켜내고 껴안고 싶은 피사체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담겨 있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진행하는 전주컨퍼런스에 대해 소개해달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마련되는 마스터클래스는 미군 위안부 3부작에서 중심 질문이 되었던 재현 윤리에 대한 미학적 논의와 함께, XR, AR, VR을 총망라하는 실감미디어(Immersive Media)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자리이다. 시네마틱 VR영화인 〈동두천〉 〈소요산〉의 제작 이야기와 더불어 현재 작업하고 있는 〈몽키 하우스의 증강현실 The Augmented Reality of Monkey House〉과 낙검자 수용소 복도의 메타버스 버전 등을 관객에게 살짝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전주의 극장에 오신 대면 관객들에게는 AR 시연에 직접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려고 준비 중이다. 마스터클래스의 형식 역시 온/오프라인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형식으로 독특할 것이다. 전주국제영화제 현장의 대면 관객과 줌으로 참석하는 국내 오프라인 비대면 관객은 물론, 한영 동시통역이 제공되는 유튜브 실시간 중계로 해외의 관객까지 함께 하는 자리로 마련될 것이다.


김진아

최초의 한미합작 〈두번째 사랑〉(2007) 등 다섯 편의 장편영화와 〈동두천〉 등의 미디아 아트로 국제무대에서 먼저 인정받았다. 한국 여성감독으로는 최초로 제57회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의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하버드대학 시각예술학과에서 영화제작과 이론을 가르쳤다. UCLA 대학 영화과 종신교수로 재직 중이며 할리우드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