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존 스미스 John SMITH | United Kingdom | 2024 | 27min | Documentary | 마스터즈 Masters
존 스미스의 신작 〈존 스미스 되기〉는 언어유희를 즐기는 이 실험영화 작가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영화다. 언어학자의 개그처럼 들리는 스미스의 목소리는 수도사 같은 영화제 관객들에게조차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어느 정도 ‘괴짜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스미스의 영화는 부조리를 조롱거리로 만들면서 강력한 사회·정치적 맥락을 도입한다. 〈껌을 씹는 소녀〉와 〈블랙 타워〉 같은 영화에서 그는 독창적인 서사, 무질서하고 직관적인 편집을 실험하거나, 〈존 스미스 되기〉에서처럼 자전적인 스토리를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한다.
런던의 일상이나 주변에 있는 것들로부터 작품의 영감을 얻는 것 같다. 자신으로부터 소재를 얻는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접근 방식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정기적으로 관찰해 온 것들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를 만들고, 자연스럽게 그런 반복적인 관찰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내가 사는 집 근처다. 예를 들어 처음 〈블랙 타워〉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 침실 창문에서 그 건물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건물 위로 반사되는 빛이 하루 중 시간대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또 건물 꼭대기에 빛이 반사되지 않는 검은색 부분이 가끔 하늘에 뚫린 구멍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그 건물을 딱 한 번 마주쳤다면 이런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작업이 나 자신의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나는 익숙한 환경 밖에서 소재를 찾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철학적으로 나는 우리가 충분히 주의만 기울인다면 모든 의미는 근접한 곳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블랙 타워〉에는 검은색 무지 화면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무지 화면에 내레이터의 목소리, 사운드만 존재한다. 무지 화면은 말과 이미지를 대비하여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검은 타워를 추상화하고 새롭게 보이도록 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이 작품에서 말과 이미지의 배열에 대해 설명해 달라.
〈블랙 타워〉를 기획하면서 나는 검은 화면이 추상적인 의미에서 이미지의 부재로, 밤하늘의 표상으로, 혹은 맑은 날 타워의 벽을 클로즈업한 모습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영화에는 검은 화면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 나는 극장의 관객들이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지 않으면서 각자의 이미지를 상상한다는 발상이 마음에 들었다. 마치 집단으로 라디오를 청취하는 것처럼 말이다. 〈블랙 타워〉를 만들고 있을 때, 1950년대에 어린이 TV 방송을 시작한 BBC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어린이 라디오는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BBC는 아이들이 어린이 TV라는 새로운 매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아이들은 “괜찮지만, 라디오에서 나오는 그림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나도 똑같이 생각했기 때문에, 〈블랙 타워〉의 검은 화면이 상상력의 공간으로 기능하도록 했다.
〈껌을 씹는 소녀〉는 400피트 길이의 16mm 필름 롤 한 개, 100피트 길이의 롤 한 개로 촬영했다. 모든 숏은 단 한 번만 촬영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선택에 담긴 아이디어에 대해 설명해 달라.
〈껌을 씹는 소녀〉의 거리 장면을 찍을 때엔 한번 촬영이 시작되면 카메라 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제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분주한 거리에서 행인들과 자동차, 트럭의 움직임을 담을 뿐, 촬영 중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는 예측 밖의 일이었다. 나는 늘 뜻밖에 생기는 기회와 우연에 매료되어 왔기 때문에 내게 시각적 질료들에 대한 선택권이 없는 것은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나는 어떤 일이 벌어지든 거기에 맞춰 대본을 고안하고 보이스오버를 추가해야 한다는 나만의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 또 영화의 길이에 대한 선택권도 배제하고 싶었기 때문에 촬영을 언제 멈출지 결정하는 대신 필름 롤의 길이에 따라 두 숏의 지속 시간이 결정되도록 했다. 작업 과정에서 이런 제약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예술가들에게 주어지는 무한한 가능성은 때때로 벅차게 느껴지고, 그래서 의도적으로 선택의 여지를 없애는 것이 나를 더 집중하게 한다고 느낀다.
〈껌을 씹는 소녀〉 〈블랙 타워〉에는 당신의 목소리가 화면 바깥 음성으로 삽입되어 ‘존 스미스’의 존재감이 시종을 지배한다. 그는 자연인 존 스미스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는데 당신 영화 속의 존 스미스는 누구인가? 그것은 당신인가, 당신이 표현하고 싶은 캐릭터로서의 존 스미스인가? 또 이런 자의식적인 형식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블랙 타워〉 같은 초기작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사용하려고 시도해 본 적도 있지만 결국은 거의 매번 내 목소리를 썼다. 내가 보이스오버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눈으로 보이는 캐릭터의 외형이 관객들이 캐릭터에게 가지는 인상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나에게 중요한 건 발화되는 말이고, 그 말을 하는 사람에 대해 떠오르는 이미지는 최대한 막연했으면 한다(내가 화면에 해설을 삽입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는 개성이 너무 강하게 느껴져서, 관객들이 말하는 사람에 대해 너무 구체적인 심상을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반면 내 목소리는 내게 너무 익숙한 나머지 독자적인 특성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완전히 감정을 배제한 목소리를 사용한다고 해도 여전히 내 억양에서는 어떤 종류의 개성이 묻어 나올 테니까. 하지만 나는 내 목소리의 개성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편집실에서 작업하는 게 덜 고통스럽다! 또, 시간이 흐르며 내 목소리의 기능이 바뀌어 왔다는 점도 중요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적어도 두 명의 존 스미스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초기작에서 보이스오버가 가상의 캐릭터에 속한다면, 〈홈 스위트 Home Suite〉(1993~4)부터 후기 작품들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종종 자전적이며, 허구보다는 실제 사건에 관해 이야기한다.
〈껌을 씹는 소녀〉의 대다수 촬영 장면들처럼 당신은 우연의 저력을 믿는 예술가이다. 다른 한편으로, 우연의 범위를 넘어 당신은 ‘구성’의 힘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것은 〈존 스미스 되기〉에 해당하는 말이다. 이 영화에서 일어나는 일은 명백히 허구화되어 있고, 모든 것이 구성된 숏에 의해 진술된다. 영화 제작에서 우연과 구성이라는 모순되는 개념의 조화, 긴장을 어떻게 만들어 내는가?
우연과 질서가 상호 작용하게 하고 관객의 기대를 깨뜨리는 것이 내 작품 형성에 핵심 요소인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당신이 〈존 스미스 되기〉의 사건들이 허구라고 말하는 것이 흥미롭다. 왜냐하면 그 영화에서 내가 묘사하는 모든 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존 스미스 되기〉에서 내가 지어낸 건 아무것도 없다. 가끔 유머와 극적인 효과를 위해 내 이름이 정신에 미친 영향을 과장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일부러 사건들이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들리도록 묘사했다. 다른 영화들에서와 마찬가지로 관객들이 나를 신뢰할 수 없는 내레이터로 여기고 내가 하는 말을 완전히 믿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관객들이 영화의 구성적인 특성을 인지하고 그들이 듣고 있는 이야기의 진실을 의심하기를, 그래서 작품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대신 작품과 상호 작용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껌을 씹는 소녀〉 〈존 스미스 되기〉는 풍자와 유머로 가득 찬 작품이다. 유머는 존 스미스 영화의 주된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하다. 프레이밍이나 카메라 움직임, 편집, 언어유희 등이 모두 농담처럼 구성되었다. 양식화된 농담이 작품 안에서 어떻게 기능하도록 설계하는가?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유머는 나를 둘러싼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것이다. 영화를 구상할 때 처음부터 웃긴 걸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하진 않는다. 유머는 종종 모호함에 대한, 그리고 우리가 이미지를 보는 방식을 결정하는 말과 소리의 힘에 대한 나의 호기심이 낳은 부차적 결과일 때가 많다. 예를 들어 〈껌을 씹는 소녀〉에서 평범한 행인을 두고 “저 사람이 방금 강도짓을 했고 주머니에는 총이 있다”라고 말하면 관객들은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웃는다.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흔히들 유머는 “타이밍이 전부”라고 말한다. 영화 구성과 관련해 말하자면 편집에서 “타이밍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나는 편집 과정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유머는 나에게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 공포로 가득한 세상에서 유머는 생존을 위한 필수 메커니즘이자 정신 건강을 보존하는 방법이다. 영국에서는 예로부터 불행한 일이 닥쳤을 때 사람들이 종종 하는 아이러니한 말이 있다. “뭐, 웃어야지.”
당신의 영화는 실험영화가 건조하거나 난해할 것이라는 편견을 깬다. 장난기가 넘치고, 중독성이 있다. 리드미컬한 구조는 내러티브 구성에 관객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기도 한다. 이런 기질은 어디서부터 온 것인가?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내 작품을 이해하기를 원한다. 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거나 예술 이론, 혹은 실험영화 이론에 정통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일상적인 경험 외의 것에서 레퍼런스를 가져오는 것은 피한다. 내 영화는 대부분 주류 영화의 관습을 활용하는데, 이것은 관습을 전복하면서도 열린 마음을 가진 주류 관객들이 영화를 이해하고 즐기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나는 엘리트들을 위한 영화를 만드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감독 존 스미스 John SMITH | United Kingdom | 1987 | 24min | Experimental | 마스터즈 Masters

감독 존 스미스 John SMITH | United Kingdom | 1976 | 12min | Experimental | 마스터즈 Mas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