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어쩌다 활동가가 됐을까?’ 박마리솔 감독은 시민 단체 활동가인 엄마 이윤정을 이해하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30년 넘게 집과 교회만 오가던 엄마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외국인 이주민을 지원하는 일에 이토록 헌신적으로 자신을 쏟아붓게 된 것일까. 〈어쩌다 활동가〉는 이 질문에 대답을 찾는 일을 시작으로 어느새 엄마 곁에서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와 함께하는 감독에게까지 확장해나간다. 서로를, 세상을 향한 이해가 만들어낸 너른 실천의 동심원이 이곳에 있다.


딸로서 활동가인 엄마를 바라보는 복잡한 심경이 영화의 출발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세월호 참사가 있고 몇 년 후였다. 평생을 교회 집사님으로 살던 엄마가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그런 엄마가 굉장히 낯설었고, 기록해두고 싶었다. 그 무렵 엄마가 이주민 관련 시민 단체에서 반상근 활동가로 일하기 시작했다. 마침 2020년 인디다큐페스티발 단편 다큐멘터리 제작 지원 프로젝트 공모가 나와 지원했다.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엄마의 유년기, 엄마가 교회를 그만둔 계기, 엄마의 현재까지 다 보여줘야겠더라. 단편은 단편대로 완성하고 장편을 기획했다. 사실 장편을 구상할 때만 해도 딸이자 감독인 나의 존재가 영화에 많이 드러나는 걸 생각지는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카메라로 엄마의 상황을 지켜보는데 화가 나더라. 활동가인 엄마에게 무례하게 굴고, 함부로 말하고, 엄마를 속이는 사람들 때문에 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런 나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영화에 녹아들었고 엄마를 바라보는 내가 영화의 한 축이 됐다.

 

촬영하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의 반응은 어땠나.

감사하게도 엄마는 거부감을 보이거나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신보다 더 똑똑하고 말 잘하는 사람도 많은데 자신이 영화에 나오는 게 괜찮겠느냐고 걱정하더라. 그럴 때마다 이론으로 무장한 언변 좋은 사람들보다 나는 엄마가 훨씬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카메라 앞에서 엄마는 본인의 활동에 관한 얘기를 정말 많이 했다. 처음에는 그런 게 답답했지만 그렇다고 ‘엄마의 일상을 보여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이상했다. 그저 열심히 찍 와서 생각해보면, 엄마는 자신이 보고 겪은 일을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해소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젠 카메라 없이도 우리 대화의 많은 부분이 활동에 관한 것이 됐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빠를 영화에 많이 담지 못한 것이다. 아빠는 가족이 세상에 공개되는 것 자체를 불편해했다. 영화에는 아빠가 최대한 노출되지 않되, 그 존재감이 드러나게끔 했다. 아빠의 영화 출연보다 아빠와 잘 지내는 게 내겐 더 중요하다.

 

교회에 대한 회의감과 시민 사회 활동까지, 세월호 참사를 목격한 이후 어머니의 삶에 커다란 변화가 일었다. ‘엄마는 어쩌다 활동가가 됐는가라는 질문에 명시적인 대답을 찾을 수 있는 지점인데, 영화는 생각보다 이 부분을 빠르게 처리하고 나간다.

촬영 초반에는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과 세월호를 기억하는 일산시민모임 활동을 꽤 비중 있게 다뤘다. 세월호 추모 행사 때마다 진행 요원으로 참여하고 청와대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는 엄마의 모습도 정말 많이 찍었다. 그러다 편집을 앞두고 내가 이 영화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다시 생각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개인, 세월호 참사를 몸과 마음으로 겪은 사람이 어떻게 그 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진입했는가’를 말하고 싶었다. 한 시대의 아픔을 공유한 이들이 어떻게 다른 아픔도 이해할 수 있게 됐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다만 그게 영화의 중심 줄거리가 되는 건 원치 않았기에, 아쉽지만 세월호 관련 푸티지를 많이 덜어냈다. 대신 엄마처럼 슬픔의 자리에서 지금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을 보여주려 했다.

 

어머니를 도통 이해할 수 없다에서 시작해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하며 짐작하다가 마침내 어머니의 일을 직접 돕기에 이른다.

촬영하며 내 또래의 미등록 이주민 분들을 만나며 많은 생각을 했다. 단지 특정 국가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 어떤 시도조차 할 수 없게 되거나 존재 자체가 불법화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엄마의 딸로서 바뀐 지점도 있다. 이주민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을 때마다 엄마는 얼마나 속상하고 아팠을까. 언제부터인가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엄마를 조금이나마 덜 힘들게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를 억지로 쉬게 하는 게 아니라, 엄마가 당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마음껏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곁에서 응원하고 지지하고 연대하고 싶었다.

 

어머니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감독 자신의 정체성과 활동,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로까지 확대된다. 영화를 찍으며 겪은 자신의 변화에 관해 좀 더 말해달라.

영화를 시작할 땐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꿔보자!’는 마음이었다면, 영화를 마무리하는 시점에는 ‘세상이 조금이라도 덜 나빠지게 하자!’는 생각이 들더라. 감독으로서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나가는 데 좀 더 조심스러워졌다고 할까. 카메라로 찍은 것들이 영원히 박제될 수도 있다는 사실의 무게감을 생각한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게 사실이지만, 동시에 나의 관점과 입장으로 재구성된 장면들이기도 하니까. 다큐멘터리는 끝이 났지만, 영화에 출연한 사람들은 계속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하니까. 혹시라도 영화에 드러난 어떤 면모가 그들에게 족쇄가 되진 않을지도 돌아본다.

 

영화는 자연스럽게외국인보호소라 불리는 시설, 시스템, 정책과 관련된 문제점을 짚어보게 한다. 곁에서 지켜보며 개선이 시급하다고 생각한 지점이 있다면.

활동가들에게 늘 빚지고 사는 마음인데 영화를 통해 이렇게나마 목소리를 낼 수 있어 정말로 다행이고 기쁘다. 문제가 많지만, 그중 하나를 꼽자면, 외국인보호소에서 기한을 두지 않고 사람을 구금한다는 점이다. 범죄자도 구금 기한이 있는데 말이다. 영화 속 엄마의 말처럼 누군가를 해치거나 사회에 해악을 끼친 것도 아닌데, 단지 행정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무기한 구금하는 건 부당하다. 그런 법은 없어져야 하고, 잘못된 법은 바꿔야 한다.

 

어머니의 활동을 이해하고 스스로 활동에 참여하기까지 꽤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촬영 기간은 어느 정도였나.

먼저, 자신의 삶을 투신하는 활동가들 앞에서 나의 활동을 활동이라 부르려니 많이 부끄럽다. 2020년 4월에 시작한 촬영은 2년 반 정도 걸렸다. 중간에 잠시 촬영이 뜸할 때도 있었다. 특히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각종 영화제 피칭을 다닐 때였는데 자괴감이 들었다. 심사위원들에게 내 영화를 어필해야 할 때마다 마치 영화가 상품이 된 것 같았다. 이 영화는 누군가의 삶을 엮어낸 이야기인데 그걸 팔고 있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많이 느꼈다.

 

영화 촬영 이후, 자신의 많은 부분을 내어주며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어머니의 일하는 방식에 혹시 변화가 있었을까.

별다른 변화는 없다. 여전히 엄마를 찾는 전화는 많고, 엄마는 평일 주말도 없이 일한다. 그럼에도 엄마 곁에 든든한 동료들이 더 많이 생긴 건 다행이다. 오랫동안 활동해온 화성외국인보호소 방문시민모임 ‘마중’과 ‘외국인보호소 폐지를 위한 물결’의 활동가들이 대표적이다. 동료 활동가와 만나 맥주 한 잔 마시며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그 시간이 엄마에게는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면, 〈어쩌다 활동가〉라는 제목이 좀 더 넓은 의미로 읽힐 것이다.

불안했던 20대 후반의 나, 그 한 시절이 고스란히 담긴 영화다. 영화를 찍으며 만난 이들과 출연해준 이들, 그리고 이 영화 덕분에 그 불안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었다. 〈어쩌다 활동가〉는 엄마를 비롯한 수많은 활동가, 영화를 통해 만난 이주민들과 함께 만든 그야말로 모두의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박마리솔 Marisol PARK

1994년 대한민국 태생. 단편 〈교회언니들〉(2016)을 포함해 3편의 작품을 연출했다. 〈어쩌다 활동가〉는 첫 장편 연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