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의 형제 감독 장 피에르와 뤽 다르덴은 가장 순수하게 정제된 시네마의 표상이다. 사회 정치적 관점에서 조형된 이들의 영화는 동서고금의 시네필들이 존중해왔던 스타일의 일관성을 구현하고 있다. 개막작 〈토리와 로키타〉는 글로벌 이민 위기로 인한 개인의 비극을 파괴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한편으로 초월적인 구제의 가능성을 묻는다. 전주를 방문하는 형제가 타인을 향한 우정, 연대, 책임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토리와 로키타〉는 〈프로메제〉(1996)와 유사한 상황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아프리카에서 온 이민자 여인과 정신적으로 교감하는 소년이라는 모티프 때문이다. 물론 〈프로메제〉의 백인 소년 이고르와 달리 〈토리와 로키타〉의 토리는 그 자신이 이민자이기 때문에 로키타와 정체성을 공유한다는 차이가 있다. 두 영화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는가?

〈프로메제〉는 한 소년(이고르)이 아프리카에서 온 여인(아시타)과 가까워지며 아버지(로저)로부터 독립하는 이야기다. 겉보기에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지만, 이고르는 아시타를 자신의 연대가 필요한 한 인간으로 바라본다. 따라서 〈프로메제〉는 이고르의 심적 변화에 대한 이야기다. 반면 〈토리와 로키타〉는 토리와 로키타 사이의 변치 않는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둘은 이 우정을 통해 어떻게 살아갈 힘을 얻는지, 망명자가 맞닥뜨리게 되는 난관을 극복해나가는지 보여준다. 두 영화를 구분하는 큰 차이가 있다면 〈토리와 로키타〉에서는 두 주인공 모두 아프리카 이민자이고, 〈프로메제〉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성매매와 대마초 산업을 둘러싼 상황을 기초로 한다. 조사와 취재 과정이 궁금하다.

벨기에 MENA(보호자비동반 해외아동)센터의 센터장이나 그곳에서 일하는 교육 전문가들을 만났다. 보호자를 대동하지 않고 온 이주 아동을 보살피는 의사나 심리학자와도 면담했고, 해당 아동들에 대한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들의 연구 자료도 다수 읽었다. 유럽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 동안 아이들이 겪었을 고통에 대한 내용, 로키타의 공황 발작처럼 질병을 유발하는 외로움, 고통을 연구한 자료들을 참조했다. 정신과 의사와의 대화나 관련 문헌을 통해 두 인물 간의 견고한 우정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 우리의 선택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대마초 산업과 관련해서는 몇 년째 알고 지내온 경찰 관계자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오프닝이 인상적이다. 카메라는 로키타를 비추고 화면 바깥에서 차갑게 말하는 이민국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첫 장면에서 이러한 프레이밍과 카메라워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로키타가 갇혀 있는 상황 묘사에 몇 분간 좁은 프레임 안에 가두는 것만큼 좋은 장치는 없다고 판단했다. 스토리가 전개됨에 따라 우리는 로키타가 보호자 없이 해외에서 온 미성년자 신분에 발이 묶여 체류증 발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어머니와 브로커들에게 줄 돈을 구하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는 사실을 서서히 알아가게 된다. 이후에는 대마초 재배지에 갇힌 모습도 등장한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말하는 상대가 보이지 않은 채로 로키타를 촬영함으로써 관객들이 그녀와 같은 시점에, 같은 시간만큼의 경험을 하면서 강한 공감대를 형성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로키타에게 성적인 학대가 행해지는 순간 카메라는 그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카메라 바깥에서 행위가 이뤄지는데, 카메라가 차마 그 광경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느낌도 받는다.

영화에는 로키타가 성폭력 피해자로 등장하는 장면이 두 번 있다. 구강성교를 강요당하는 첫 장면에서는 이 행위를 화면 밖에 두면 그 장면이 더욱 폭력적으로 묘사될 것 같았다. 로키타가 베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 후 무릎을 꿇고 프레임 아래로 사라지는 지점에서 신을 멈춤으로써 그녀의 치욕이 더 잘 표현됐고, 또 이러한 수모에도 불구하고 자존심을 지키는 모습이 더 효과적으로 드러났다고 본다. 구강성교 행위와 강압적 노출(두 번째 성폭력) 장면을 촬영했을 때 사형 집행인의 관점에서 미장센을 고민했다고 할 수 있다.

 

〈프로메제〉, 〈더 차일드〉(2005) 등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이라는 테마를 탐구한다. 플롯은 돈의 소유와 교환, 이동을 따라 구성된다. 로키타는 고향으로 돈을 보내기 위해 갖은 위험을 무릅쓰고, 어렵사리 번 돈을 브로커들에게 갈취당한다. ‘이라는 테마를 어떻게 다루고자 했나.

이 영화에서 돈과 돈의 이동, 교환, 소유 또는 무소유는 토리와 로키타가 당하는 지배에 관해 말하고 있다. 둘은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항상 돈을 쫓는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다른 방법으로, 더욱 비싼 값을 치르게 될 것이다. 다만 둘의 우정만큼은 값으로 매길 수 없으며, 그 때문에 둘의 우정이 그토록 중요하다. 우정은 두 사람의 유일하고도 소중한 보물이다.

 

토리와 로키타 역은 비전문 배우 파블로 실스와 졸리 음분두가 맡았다. 캐스팅에서 연기 경력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점이었는가?

벨기에에는 두 주인공 나이대의 배우가 없다. 우리에게 맞는 두 배우를 찾기 위해 캐스팅을 기획해야 한다는 것을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카메라 앞에 처음 서는 젊은 두 배우와 함께 작업함으로써 영화의 ‘리얼리즘’이 한층 강화되는 것도 사실이다. (배우 인지도 등으로 방해받지 않으므로) 관객과 인물 간에 장애물도 없다. 더불어 카메라 앞에서 새로운 배우가 탄생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는 큰 즐거움 또한 있다.

 

토리는 자전거 또는 모터사이클을 타는 당신의 인물들을 이어받는다. 영화에서 인물들이 예외없이 자전거 또는 모터사이클을 타는 이유는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자면 그런 식으로 인물을 촬영하는 것을 우리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인물들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을 좋아하고, 바람을 맞는 그들의 얼굴이나 차체 바깥에서 위험에 노출된 연약한 몸을 촬영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식으로 촬영하면 인물들이 처한 상황의 긴박함을 생생하게 살릴 수 있다. 토리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모든 이동 장면은 토리가 로키타를 구하기 위해 해결책을 찾겠다는 강한 의지의 구현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장식이 없으며 모든 장면에서 표정이 없다.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일어나야 할 장면에서도 왜 그렇게 무표정하게 보이도록 하는가?

우리는 관객이 등장인물 편에 서서 함께 고통을 느끼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우가 어느 정도 참고, 표현을 자제하고, 여백을 둠으로써 관객을 위한 여지를 만들 필요가 있다. 지나치게 격렬한 감정을 보여주는 인물과는 공감하기 어렵다. 그 인물의 쇼를 관람할 뿐이다.

 

〈로제타〉(1999), 〈아들〉(2002) 등에 비해 카메라의 움직임이 훨씬 덜 과격하다. 영화가 다루는 현실은 더욱 비극적이고 분노를 자아내는데 카메라는 안정적으로 변한 이유가 궁금하다.

프레임 안에서 최대한 단순한 움직임을 추구했다. 키 차이가 나는 두 배우의 몸을 한 프레임에 담다 보니 프레임을 더 넓게 쓰려고 했던 것 같다. 또 이 영화에서는 어떤 사건에 휘말린 인물들을 보여주고자 했다. 인물들이 만들어내거나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운명에 처한 인물들을 보여주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인물들의 움직임을 계속해서 따라가거나 인물들과 ‘함께 뛰는 것’이 아닌 인물들이 ‘뛰는 것을 바라보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닥칠 것만 같은, 프레임 안에 무언가 불쑥 나타날 것만 같은 그런 모습 말이다.

 

당신들의 영화는 사회의 병폐나 문제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를 다룬다. 이런 의제를 영화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다루는 방법에 대해 듣고 싶다.

특정한 사회적, 도덕적 상황에 갇힌 인물로부터 출발해 이 인물이 (주로 다른 인물과의 만남을 통해) 출구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여기서 출구란 처음에는 없었던 타인을 향한 고귀한 인간성, 우정이나 연대감, 책임감 등이 새롭게 싹트는 것을 말한다. 이 출구를 향한 여정에서 우리의 주인공은 자신을 유혹하거나 방해하고 냉소주의에 가둬버리는 악에 직면하게 된다.

 

작품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카메라 양식은, 카메라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상황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지 않고 상황이 발생하는 가운데로 들어가 입회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짐작한 대로 우리는 카메라를 사람들의 몸들 가운데, 몸들 사이에 두고 360도로 움직인다. 바깥이 아닌 중심에 관객이 놓이기를,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길 원하는 것이다. 동시에 몸의 중심을 비추는 이 앵글로 우리가 담는 영상에 물성이나 존재감, 입체감을 가미하고, 2차원적인 요소나 연극적 요소를 빼는 효과를 얻으려 한다. 스크린과 이미지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 사람의 몸이 사라지는 느낌이 우리에게 동기 부여가 되고, 이러한 이미지에 맞서는 이미지를 만들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즉흥적인 연출을 즐겨 하는가? 아니면 리허설을 많이 하는가?

보통 촬영 5주 전쯤을 전후로 해서 리허설을 하는 편이다. 카메라와 촬영지를 정하고 리허설을 하는데 이를 통해 카메라와 배우의 안무 연출(choreography)을 설계하고 배우들이 위축되지 않고 편하게 이것저것 제안할 수 있는 신뢰감을 형성할 수 있다. 또 실제로 맞닥뜨렸을 때 우리의 스크립트가 괜찮은지, 대사는 적절한지, 말이 없는 구간이 적합한지, 그렇지 않다면 대사를 걷어내고 침묵을 늘리는 것이 맞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숏의 연출과 리듬을 찾는 것은 필수적이다. 배우들에게 상황을 제시하고 즉흥 연기를 시키지는 않는다.

 

〈토리와 로키타〉를 포함해 당신의 작품들에 예외 없이 등장하는 장면들에 대해 묻고 싶다. 인물들이 항상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를 가로지른다. 이 순간 인물을 좇던 카메라는 길을 건너는 인물을 따라가지 않고 멈춰 선다. 왜 이런 숏이 빠짐없이 등장하는가?

도로를 건너는 숏은 인물들을 짧은 순간 위험에 빠트리기 위한 장치다. 그들의 위태롭고 불안정한 삶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토리와 로키타는 굉장히 연약하고 인정받지 못한 인물들이라 두 사람이 죽더라도 가족이 없기 때문에 크게 걱정해줄 사람도 없고, 이들의 시신을 인도할 인척이 아무도 없다. 따라서 이러한 숏은 인물들의 연약함과 위협받는 삶을 느끼게 해주는 용도이지 플롯에 필요한 요소는 아니다. 이것이 영화에 다큐멘터리적인 성격을 부여한다.

 

편집 방식에 대한 질문이다. 인물의 행위가 다 마무리되기 전에 숏을 잘라내고 행위가 진행하고 있는 도중에 다음 숏을 시작한다. 편집 스타일의 효과는 무엇인가?

그때그때 달라지겠지만 간혹 리듬감이나 속도감, 가속감을 주기 위한 경우가 있고, 충격이나 폭력, 거친 효과를 주기 위한 경우도 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숏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다고 느껴지면 숏의 앞이나 끝부분, 간혹 중간을 걷어낸다. 좀 더 유머러스하게 표현하자면 관객들이 숏의 끝이나 시작 지점에서 열까지 셀 시간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내러티브 영화를 만들기 전 여러 편의 비디오,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당신들이 만든 다큐멘터리와 내러티브 영화의 연결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극영화에 다큐멘터리적인 스타일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 그중 두 가지를 꼽자면, 먼저 카메라를 엉뚱한 자리에 두는 것이다. 가령 인물의 시선을 보여줄 수 있음에도 제대로 볼 수 없는 곳에 카메라를 둠으로써 우리가 찍고 있는 현실로 인해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에 가 있지 못하는 것처럼 촬영을 한다. 다큐멘터리에서처럼 마치 현실이 촬영되기를 거부하고 있고, 되려 현실로부터 벗어나려는 듯한 효과를 주려 한다. 또 한 가지는 롱테이크로 편집 없이 액션을 찍는 것이다. 테이크를 끊지 않고 실시간으로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이 화면 내의 액션을 실제로 겪는 듯한 느낌을 주고 화면에서 일어나는 현재의 사건과 연결된 듯한 느낌을 준다.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Jean-Pierre DARDENNE, Luc DARDENNE)

1951년, 1954년 벨기에 출생. 수많은 다큐멘터리를 감독했다. 다르덴 형제는 1975년에 데리브(Dérives)를 설립하고 자신들의 작품을 포함해 60여 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1994년에는 장편영화 제작을 위해 레 필름 뒤 플뢰브(Les Films du Fleuve)를 설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