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풀타임〉은 하루 24시간을 꽉 채워 사는 여성, 쥘리(로르 칼라미)의 이야기다. 혼자 아이를 키우며 호텔에서 일하는 쥘리는 기존 경력을 잇기 위해 틈틈이 이직에 도전하고 있다. 교통 파업으로 마비된 도시에서 전개되는 쥘리의 일과는 전투처럼 치열하다. 이 영화를 통해 파리 교외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과 이들을 두르고 있는 사회를 “모자이크”처럼 담아내고자 했다는 에리크 그라벨 감독을 화상으로 만났다.

 

〈풀타임〉의 이야기를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나는 퀘벡 출신인데 20년 전부터 프랑스에 살고 있다. 꿈꾸던 집을 구하기 위해서는 파리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야 했다. 영화 작업을 하면서 파리에 오갈 생각이었는데 차츰 파리에 덜 가고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됐다. 그러면서 매일 파리까지 통근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그게 많은 사람들의 현실인데 영화나 매체에선 이걸 별로 다루지 않는다. 이 현실을 말하고 싶었다.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기차를 타고 아주 빽빽한 하루 일과를 보내야 하는 사람들을 증언하고 싶었다. 그들의 선택이며 그들이 꿈꾸는 삶을 위한 것이지만 여기엔 치러야 할 대가가 따랐다. 물론 이 영화는 그것보다 더 복잡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차를 타고 출퇴근하고 하루 종일 뛰어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만으로는 흥미롭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한 인물을 통해 영화에 관점과 스토리를 부여할 주인공을 찾으려 했다.

 

〈풀타임〉은 혼자 육아를 하면서 직업으로 대변되는 사회적 삶 또한 포기하지 않는 여성의 이야기다. 주변에서 영감을 준 인물이나 이야기가 있나?

캐릭터의 출발점이 되었던 건 평소 기차 안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꼭 가까운 지인이 아니어도 곁에서 보기만 해도 그들이 바쁘고 긴 하루를 보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출발점에는 내 현실도 있다. 두 아이를 두고 일과 가정을 오가는 나의 현실과 그들의 현실, 이 둘을 겹쳐 보았다. 매일 기차 타러 아침 일찍 역에 오는 사람들은 혼자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일 수도 있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것을 출발점으로, 상황 너머 인물을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이상하게도 나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우리 아버지는 나를 혼자 기르셨다. 아버지는 작은 직업들을 전전하며 평생을 힘들게 일하셨다. 나는 넉넉하지 못한 집안 출신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은 부모를 모델로 성장하며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나도 고생스럽게 일을 하게 될까 아니면 나 자신만의 선택을 하게 될까. 그렇게 어려움이 많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던 시선, 어린아이로서의 불안,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은 이 영화의 주인공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쥘리의 일주일을 핸드헬드 카메라와 클로즈업으로 따라가며 마치 인물의 일상을 직접 체험하게 하는 듯하다. 몰입감을 높이고자 더한 설정들이 있나?

우선, 몰입을 위해 중요한 영화적 장치는 ‘시점’이다. 마치 ‘여기 이런 상황이 있어요, 주인공을 보세요, 그녀가 처한 조건을 보세요’라고 말하듯 주인공을 들여다보는 것을 가급적 피했다. 이건 시나리오를 쓰기 전 단계부터 그랬는데, 나는 주인공을 구구절절 소개하지 않는다. 관객들이 내면으로부터 그녀를 느끼기를 바랄 뿐이다. 관객은 언제나 인물을 현재 시제로 보게 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녀에게 필요한 게 뭔지 하나씩 알게 된다. 관객은 주인공보다 더 멀리 보지 않는다. 관객은 인물과 분리된 채 한 걸음 물러서서 관조하는 입장이 아니다. 두 번째는 ‘감각적 경험’이다. 촬영, 음악, 편집 등을 그게 마치 쥘리의 내면적 태도인 것처럼 작업했다. 쥘리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 땐 카메라도 원활한 흐름을 보이고, 쥘리가 어려움에 처하면 카메라의 움직임도 어려워지는 식이다. 일종의 이분법을 더해서 미묘한 차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카메라는 원활히 움직이는데 반대로 사운드는 불안하게 들리는 식이다.

 

사운드의 연결 혹은 충돌이 흥미로웠다. 쥘리가 트램펄린을 설치하며 내는 소리가 트램펄린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소리로 이어지기도 하고, 화면 밖의 경적 소리가 긴장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상당히 청각적인 작품이 될 거라 생각했다. 첫째로 이 영화 사운드의 기반이 된 건, 도시와 시골이라는 두 가지 청각 요소의 대비다. 영화의 감각적인 요소를 통해 말로 설명하지 않고도 관객들이 쥘리가 도시에서 경험하는 ‘거부’를 느끼길 원했다. 쥘리가 도시에 들어서면 그녀는 도시의 소리로부터 공격당한다. 이건 내가 시골 생활을 통해 직접 느꼈다. 나는 평생 도시에서 자란 도시 사람이다. 시골에서의 삶을 선택하면서 잘못된 선택은 아닐까 염려했지만 결과적으로 시골에 빠르게 적응했다. 오히려 도시에 다시 들렀을 땐 도시 소리들이 나를 공격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전엔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거다. 바로 이 느낌을 영화에 가져와 쥘리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말로 설명하지 않고도 표현하고 싶었다. 사운드의 두 번째 측면은 흔히 공포영화에서 사용하는 건데, 무언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을 불어넣는 거다. 공포영화에선 기본적이고 단순한 장치를 사용한다. 작은 소리로 사람들을 약간 소스라치게 만들면서 ‘뭔가 일어날 거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예고를 하는 거다. 나도 이 원칙을 사용했다. 미세한 사운드를 사용해 순간적인 인상을 남겼다. 물론 공포영화처럼 관객을 놀라게 할 목적은 아니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는 상태에 빠뜨리려 했다. 쥘리는 이 위태한 하루 동안 무엇이라도 망치지 않으려면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태다. 관객들도 그런 긴장 상태로 초대를 받은 것이다.

 

첫 장편 〈충돌 테스트 아글라에 Crash Test Aglaé(2017)는 자동차 충돌 테스트 일을 하는 여성에 관한 이야기다. ‘노동여성은 당신이 만든 장편영화 두 편의 키워드인데 평소 관심사는 뭔가?

두 가지를 선택했다기보단 자연스럽게 형성된 주제라 할 수 있다. 내가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그런 식이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으면 모든 것이 차츰 제자리를 찾기를 기다린다. 이 영화는 두 번째 장편인데 첫 번째 영화를 만들기 전 꽤 오랫동안 좋은 이야기가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단편 작업과 달리 장편은 2년에서 4년까지 걸리기도 하므로, 우리를 이끌어갈 수 있는 주제와 스토리가 필요하다. 무엇이 나를 이끌고 갈 수 있을 이야기일지 오래 생각했고, 일과 직업이 오래전부터 개인적으로 중요한 관심사였다는 걸 깨달았다. 인생에서 어떻게 일의 균형을 잡을 것인가? 앞서 밝힌 대로 아버지처럼 일에 매인 삶을 살게 될 것인가? 아니면 나 스스로 통제하고 결정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될까? 이러한 고민은 뿌리가 오래됐다. 이 영화는 ‘일’을 주제로 만든 두 번째 영화고, 구상 중인 세 번째 영화도 이 주제가 일부를 차지한다. 내 안엔 일의 세계와 관련해 여전히 해결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소중하게 생각하는 주제임은 분명하다. 여성이라는 주제는, 일단 나 자신이 영화 속에서 여성 캐릭터를 남성 캐릭터보다 더 흥미롭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또 나 역시 관객으로서 보고 싶은 훌륭한 여성 캐릭터를 시나리오에서 창조하는 것에 기쁨을 느낀다. 물론 이보다 더 복합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아직까진 남성 캐릭터를 많이 쓰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남성 캐릭터를 좀 더 쓰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여성 캐릭터를 창조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이 사실이다.

 

동시통역: 조혜경

에리크 그라벨

프랑스계 캐나다인 작가이자 감독. 지난 20년 동안 프랑스에서 거주했다. 장편 〈충돌 테스트 아글라에〉(2017)로 데뷔하기 전까지 영화제작 운동 ‘키노(무브먼트)’와 함께 많은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풀타임〉은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