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는 그 사회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의 ‘한국경쟁’, ‘코리안시네마’ 섹션을 통해 지금 여기의 논쟁적인 이야깃거리를 들여다보자. 동시대를 관통하는 이슈라면 팬데믹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스페셜 포커스: 코로나, 뉴노멀’ 섹션에서는 코로나가 변화시킨 세계의 풍경을 담아낸 작품들을 소개한다. 이들 섹션의 기획을 맡은 문석 프로그래머에게 올해의 경향과 묘미를 물었다. 인기 프로그램 ‘불면의 밤’ 섹션과 처음으로 시도하는 ‘골목상영’에 대한 힌트도 놓치지 말길.


우선 ‘한국경쟁’ 섹션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어떤 영화를 소개하는 섹션인가?

한국경쟁은 한국 장편 독립영화 경쟁작을 소개하는 장이다.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장편영화를 만드는 신예 감독의 독립영화를 대상으로 한다. 대략 10편 정도의 작품이 선정되는데, 최고상인 대상을 비롯해 뛰어난 작품성을 보여 준 영화들을 대상으로 후원사가 제공하는 상이 시상되며, 배우상도 수여된다. 그동안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은 한국 독립영화의 스타 감독을 발굴하는 장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새출발〉의 장우진 감독, 〈델타 보이즈〉의 고봉수 감독,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이야기〉의 민환기 감독, 〈내가 사는 세상〉의 최창환 감독 등이 이를 통해 데뷔했으며, 〈세자매〉의 이승원 감독, 〈정말 먼 곳〉의 박근영 감독도 이곳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이나 〈위로공단〉의 임흥순 감독, 〈노무현입니다〉의 이창재 감독도 초기작을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진출시키며 경력을 축적했다. 한편 한국단편경쟁은 내일의 한국영화 감독을 발굴하는 곳이다. 한국 단편영화 20여 편이 경쟁을 펼치게 된다.

 

선정 과정에서 가장 중요시한 부분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새로움을 위한 노력이다. 신진 감독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눈에 보이는 성과도 중요하지만 보다 혁신적이고 과격한 시도를 한 작품에 더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었다. 기대에 부응할 정도의 ‘새로움’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새로움을 위한 ‘몸짓’을 품은 영화들은 많았다.

 

올해 한국경쟁 부문 선정작들의 특징이라면?

올해는 사회적 소수자들을 조명하는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평소 잘 만날 수 없었던 장애인에 관한 영화나 성소수자들에 관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한국 독립영화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영화나 뜨거운 청춘을 그리는 영화도 많았다. 한편 코로나 팬데믹을 맞아 이를 소재로, 또는 주제로 한 영화가 많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뜻밖에도 장편영화의 경우 그리 많지 않았다. 사실 이는 해외영화도 비슷하다. 아마도 이 인류사의 거대한 사건이 영화적으로 해석되기엔 아직 시간이 부족한 모양이다.

 

‘코리안시네마’ 섹션의 경향에 대해 말해달라.

코리안시네마는 세 번째 장편영화를 만든 감독의 영화나 다른 영화제에서 소개됐거나 개봉됐음에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 등을 소개하는 자리다. 한국경쟁보다 다채로운 분위기의 영화들이 소개되어 관객들의 관심이 더 쏠릴 수 있는 섹션이다._이번에는 주목할 만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많았다는 것이 특징이다. 반민특위나 문익환 목사처럼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이나 인물을 소재로 하는 작품 외에도 재일동포들의 민족운동이나 금속활자의 기원 찾기 같은 다양한 이야기가 이 섹션을 통해 소개된다. 그동안 전주국제영화제를 여러 차례 찾아온 감독들의 신작과 신인 감독들의 영화들도 상영된다.

 

관객들의 반응이 기대되는 영화를 소개해달라.

EBS 프로듀서 출신 김진혁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여파〉가 있다. 그는 EBS에서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소재로 다큐를 만들다 회사의 명령으로 제작을 중단했다. 〈여파〉는 그가 절치부심의 각오로 다시 만든 반민특위 관련 다큐멘터리다. 반민특위가 왜 좌초했는지, 이후 관련자들이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생생하게 들려준다._전주를 배경으로 전주 출신 최진영 감독이 만든 영화 〈태어나길 잘했어〉도 관심을 둘 만하다. 어린 시절 친척 집에 얹혀살던 춘희라는 여성이 말 그대로 날벼락을 맞은 뒤 어린 시절의 춘희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불면의 밤’은 인기 프로그램이다. 올해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불면의 밤은 뚜렷한 색깔과 개성이 진한 장르영화들을 소개하는 부문이다. 전주국제영화제의 특성을 반영하여 상업성보다는 예술적 성취를 추구하는 장르영화에 관심을 두고 있다._올해는 방역 강화 차원에서 심야 상영을 못 한다. 하지만 검열 제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자 1980년대 영국 호러영화에 대한 오마주인 〈검열〉이나 사이키델릭 시대의 판타지가 버무려진 애니메이션 〈크립토주〉 등은 상영 시간과 무관하게 공포와 흥분을 안겨줄 것이다.

 

팬데믹 상황을 비추는 영화들을 특별전으로 다룬다.

그렇다. ‘스페셜 포커스: 코로나, 뉴노멀’에서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겪고 있는 삶의 고통과 현재의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영화들을 소개할 예정이다._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맞아 수많은 영화들이 이를 이미지 안에 새겨 넣고 있다. 팬데믹 초기의 급박한 상황을 담은 다큐멘터리들이나 변화된 상황에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며 만들어낸 뛰어난 작품들이 이번 특별전을 통해 소개된다. 이 시대의 공기를 예리하게 포착하는 6편의 한국 단편영화도 주목해 달라.

 

‘골목상영’ 구성 시 주안점은 무엇이었나? 어떤 작품들이 상영될지 궁금하다.

골목상영은 올해 처음으로 시도하는 이벤트 상영 방식이다. 전주시 곳곳에 설치한 임시 스크린을 통해 길거리를 지나치는 시민들에게 영화를 보여준다. 관심은 있지만, 극장까지 들어오지는 못한 전주 시민들도 영화제에 참가할 수 있도록 마련한 장이라 할 수 있다. 아무래도 무작위적인 관객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대중성이라는 측면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또한 복제의 위험성에서 비롯되는 작품 선정의 어려움도 있었다. 올해 상영작 중에는 코로나 사태 직후 이탈리아 밀라노의 봉쇄 상황을 담은 다큐멘터리 〈코로나의 밀라노〉도 있으니 큰 관심을 바란다.

 

올해 슬로건 ‘Film Goes On’의 의미를 개인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비틀스의 노래 ‘Ob-La-Di, Ob-La-Da’의 핵심 구절은 “Obladi, Oblada, life goes on, bra, Lala how the life goes on”이다. 그러니까 인생은 그렇게 그렇게 흘러간다, 뭐 이런 이야기다. 사실 우리 슬로건에 대해 개인적으로 ‘영화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엄숙한 느낌보다는, ‘(코로나도 지나가고) 영화도 계속 흘러가겠지’라는 느낌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개최에 앞서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점은 무엇인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영화제의 가장 큰 관심사는 방역이다. 최소한 이번 22회 행사까지는 외적 화려함이나 커다란 규모보다는 안전한 관람과 무탈한 행사 진행 등이 목표이자 이상일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영화제만이 아니라 관객과 정부 및 시 당국의 협조 또한 절실하다.


Invitation Letter

모두 좋은 봄 맞고 계시는지요? 사실 여러분 대부분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중국 시구를 떠올리고 있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회오리바람이 봄에 관한 말랑말랑한 감상과 낭만까지 날려버리고 있는 듯합니다.

 

이 민감한 시국에 우리는 전주로 봄나들이를 제안합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벚꽃이나 갓 맺힌 나뭇잎 등과 함께 전주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니 많았습니다. 지난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맹위를 떨치면서 전주국제영화제는 비공개 행사로 전환해 수많은 영화제 마니아들은 온라인 상영만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올해 우리는 영화제의 문을 다시 열려고 합니다. 한국과 전 세계 독립영화의 정신을 여러분과 함께하기 위해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정상 개최를 추진합니다. 당연히도 영화제의 첫 번째 목표는 방역입니다. 코로나 시대에 가장 안전한 공간 중 하나로 꼽히는 영화관부터 여러 행사장, 셔틀버스까지 총체적으로 꼼꼼하게 방역 조처를 할 계획입니다. 운영에 관한 모든 사항도 방역 당국과 철저한 조율 속에서 이뤄지게 될 것입니다.

 

전주에서 다시, 만나길 바랍니다. 물론 조용히 그리고 거리를 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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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석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중앙일보』 기자를 거쳐 2000년부터 영화주간지 『씨네21』에서 취재 기자, 취재팀장, 편집장, 기획위원으로 활동했으며 2017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산업 프로그래머와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