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김시아)이 아빠의 유품이 된 필름 카메라를 다시 들어 사진을 찍게 된 건 축구부 에이스에게 첫눈에 반했기 때문이다. 아빠가 고등학교 때 쓰다 만 카메라는 그렇게 여름에 의해 다시 움직이고, 여름은 현상된 사진에서 고등학생 시절의 아빠와 마주한다. 거기엔 오랫동안 비밀로 숨겨둔 아빠의 또 다른 모습이 새겨져 있다.


아버지가 고등학생 때 쓰던 수동 카메라에서 우연히 발견한 사진 한 장으로 여름은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발견한다. 〈여름의 카메라〉는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나.

영화를 만들 때 책이나 영화에서 영감을 받기도 하지만 이 영화의 경우는 나의 경험에서부터 출발했다. 상대를 사랑하는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 줄 몰랐기에 서툴렀던 첫사랑과 소중한 사람의 죽음, 이 두 가지 경험으로부터 〈여름의 카메라〉를 떠올리게 되었다.

 

아버지의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거나,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고뇌하는 청소년을 다룬 한국영화는 많다. 〈여름의 카메라〉가 이들과 조금쯤 결이 다른 건 여름이 아빠나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 없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데 있다. 여름의 캐릭터는 어떤 과정으로 태어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우리 사회가 좀 더 ‘퀴어 프렌들리한’ 사회로 바뀌어 퀴어들이 지금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얘기할 수 있고, 또한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를 바랐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미약하지만 내 영화에서 만큼은 퀴어들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 공간 속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인물, 여름을 만들었다.

 

여름을 연기한 김시아 배우는 〈미쓰백〉(2018), 〈우리집〉(2019), 〈길복순〉(2023) 등 상업과 독립영화계 모두에서 사랑받는 얼굴이다. 캐스팅은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김시아의 어떤 모습을 담고 싶었나.

나는 시나리오를 쓸 때 배우들을 직접 대입해서 쓰는 편이다. 이번 〈여름의 카메라〉를 쓸 때는 김시아 배우를 대입해서 썼다. 따라서 캐스팅을 진행할 때 1순위로 김시아 배우에게 연락을 했고, 운이 좋게도 그녀가 〈여름의 카메라〉에 합류하게 되었다. 〈여름의 카메라〉의 여름은 밝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만 아픔이 있는 다층적인 캐릭터다. 아픔이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김시아는 많이 봤지만, 밝은 에너지를 가진 김시아의 연기는 보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 지점을 담고 싶었다. 

 

배우 곽민규가 연기한 마루는 여름의 아빠인 연우의 고등학교 시절 연인이다. 중년의 나이가 된 그는 때때로 세상에 없는 여름의 아빠 역할을 대리하기도 하는데… 마루의 캐릭터는 어떻게 구상했고, 곽민규 배우가 그리는 마루는 어떠하길 바랐나.

고등학교 시절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힘들 때면 나보다 먼저 경험을 한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는 그런 인물이 없지만 내가 만드는 캐릭터, 즉 여름에게는 그런 인물이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마루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마루와 여름은 가족도 친구도 아니다. 따라서 둘은 적당한 거리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이야기를 더 편하게 공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곽민규 배우와 마루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할지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였다. 마루는 여름과 다르게 한국 사회가 퀴어에게 더 배타적일 때 자랐다. 그렇기 때문에 마루는 자신의 퀴어성을 숨겨야만 했다. 그렇지만 편한 관계에서는 자신의 퀴어성을 은연중에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그 미묘함을 담기를 원했다.

 

스틸 사진으로 시작하는 영화 오프닝이 인상적이다. 극영화라는 것을 모르고 보면 얼핏 자전적 에세이를 그린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준다. 또 영화 후반부에 스틸컷이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필름 사진을 사용해 영상에 어떤 변주를 주려고 했나.

개인적으로 나는 〈여름의 카메라〉가 ‘여름의 기억’처럼 보이길 바랐다. 선형적인 내러티브이지만 그 내러티브의 사이사이를 시간대를 알 수 없는 아빠에 대한 기억과 어린 시절 여름이 찍은 사진, 그리고 연우의 사진들로 보여 주었다. 사진을 선택한 이유는, 사진이 기억을 물질화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물질화된 기억은 결국 기억의 파편들이기 때문에 단면만을 보여 준다. 그것은 여름이 연우를 보는 시선과 관련이 있다. 또한 기술적으로는 영상 속에 사진을 배치하면서 영화의 리듬을 끊어서 관객들에게 한 번 더 물음이 생기게 하고 싶었다.

 

여름이 배경인 영화답게 이야기 내내 빛의 찬란함, 녹음의 푸르름이 두드러진다. 촬영에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여름은 말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이다. 그래서 나는 여름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기보다는 롱 숏의 무드로 관객들이 여름의 감정을 느끼기를 바랐다. 또한 여름이라는 계절감이 여름의 내면을 지지한다고 생각했다. 비가 오기도, 찬란하게 빛이 비치기도 하는 이 여름이라는 계절 안에서 여름의 감정은 흔들리고 있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핸드헬드 기법을 주로 사용하였다.

 

카메라를 든 여름의 활동 반경은 꽤 넓다. 주요 배경이 되는 학교를 비롯해 아버지와의 기억이 담긴 숲속, 마루 미용실까지 로케이션 과정에 어떤 점들을 신경 썼나.

여름의 복잡한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여름이 다니는 고등학교는 다양한 공간들이 많은 곳을 찾으려 했고, 마루의 미용실에 진입하는 길의 경우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여름이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는 터널을 원했다. 이처럼 나는 공간이 또 다른 내러티브가 되어 캐릭터성을 뒷받침하기를 바랐다.

 

전체 프로덕션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좀 더 상세히 설명한다면?

2023년 1월 〈여름의 카메라〉의 1고를 쓴 후 2023년 2월 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에 지원했고 그해 6월 제작지원이 결정났다. 그 후 두 달 동안 프리 프로덕션을 하고 18회차 촬영을 진행했다. 장편은 처음 찍어 보는 터라 생각했던 대로 구현되지 못한 것들이 있었는데 최대한 포스트 프로덕션에서 의도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고, 그러다 보니 후반작업을 오래하게 되었다.

 

런던 LGBTQIA+ 영화제에서 이미 관객과 만난 경험이 있다. 관객 반응은 어땠나.

관객들은 〈여름의 카메라〉의 세상이 퀴어 친화적한 것에 대해 보수적이었던 한국 사회가 변화했는지 궁금해했다. 그래서인지 아시아 레즈비언 관객들이 〈여름의 카메라〉를 보고 용기를 얻었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했다. 

 

영화 혹은 드라마로 다루고 싶은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면?

코미디 장르의 할머니와 손녀에 관한 아이템과 호러 장르의 기숙학원에 대한 아이템이 있다. 두 아이템은 장르가 다르지만, 내가 만든 다른 영화들이 그러하듯 둘 다 죽음과 소수자에 대해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