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마음〉은 어린 시인의 시와 함께 구성된 다큐멘터리 영화로 천더밍 감독은 특유의 감수성과 진정성으로 영화 자체를 한 편의 시로 완성했다. 제작 단계부터 많은 관심과 기대를 모았던 이 작품은 지난 3월 코펜하겐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CPH:DOX)에서 세계 최초 상영됐으며, 대상의 영예까지 안았다. 5월 전주에서 아시아 최초 상영을 앞둔 〈시인의 마음〉 천더밍 감독과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어린 시인, 공유빈을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됐나. 그리고 왜 그 삶을 따라가 봐야겠다고 결심했는지 궁금하다.

친구를 통해 아이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처음 아이들의 시를 읽었을 때 깊은 감동을 받았다. 소박하고 진실한 단어였는데, 아이들이 온 힘을 다해 이 세상에 맞춰 가려는 것이 느껴졌다. 그 노력 속에는 시적인 감수성과 철학적인 사고, 그리고 내가 영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마을에 들어섰을 때 마치 내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땅과 아이들은 내 어릴 적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 역시 부모님의 부재 속에서 자라면서 조부모를 따라 친척 집을 전전했고, ‘가족’이라는 개념이 모호하고 낯설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엔 한밤중에 베개 밑에서 어머니 사진을 꺼내 보며 몰래 눈물을 훔치곤 했다. 그래서 ‘버려진다’는 감정이 어떤 건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유빈의 침묵과 외로움은 내 마음 깊은 곳의 울림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단지 한 아이가 아니라 종종 외면당하는 수많은 아이들을 대표한다. 영화는 그 아이의 이야기지만, 그 아이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침묵의 땅, 시간의 순환, 기억에 남을 반짝임을 담고 있다. 이 땅을 바라보는 나의 방식을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로 한 편의 간결한 시를 쓰고자 했다.

 

영화 속에서는 자연의 일부를 배경으로, 때로는 가족의 이미지를 곁들여 여러 시가 배치된다. 시들을 영화 안에 구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이었나. 또한 시의 리듬을 영화의 리듬으로 확장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듣고 싶다.

시를 풍경 속에 담아낼 때, 그것은 시적인 감수성의 확장이자 감정의 투영이기도 하다. 풍경은 이러한 시들의 조용한 증인이며, 속삭이듯 독백하는 순간들을 묵묵히 들어주는 존재다. 하지만 시가 가족이라는 배경 안에 놓일 때, 그것은 일종의 ‘존재의 목소리’처럼 느껴진다. 상상력과 낭만이 깃든 언어는 복잡한 감정이 얽힌 가족 환경에서 비롯되었지만 동시에 이곳에 완전히 속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그것들은 일종의 도피이자 저항이기도 하다. 리듬을 다룰 때는 영상과 시의 운율이 최대한 일치하도록 했다. 시는 멈춤, 여백, 반복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편집에서도 롱테이크와 정적인 화면을 사용하고 화면 구성과 움직임의 대비를 통해 관객이 시청각으로 ‘시를 읽는’ 듯한 리듬감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시는 주변의 삶에서 비롯되었고, 풍경은 그 시의 영원한 증인처럼 고요하게, 아름답고 속삭이는 순간들을 귀 기울여 들어준다. 가족이라는 배경은 시를 ‘존재의 메아리’처럼 만든다. 이곳에서 태어났지만, 이곳에만 속하지는 않는다.

 

영화는 개미 무리가 죽은 나방을 옮기는 장면을 오랜 시간 포착한다. 실제로는 들리지 않을 개미들의 움직임이 귀를 간지럽히듯 묘사되는데, 이 장면의 연출 의도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나.

이 장면은 미시적인 세계를 담은 순간이다. 카메라를 통해 그 세계는 확대되고, 디테일과 의미가 더해진다. 만약 카메라의 기록이 없었다면 우리는 과연 매일 일어나는 이 움직임들을 볼 수 있었을까? 이 장면은 단순한 관찰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미시적인 힘을 장면 안에 담고자 한 시도이기도 하다. 자연 세계를 비추는 이 장면은 단지 작은 생물의 움직임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차지하는 위치와 생명 순환, 저항에 대한 은유적 이야기이기도 하다. 개미가 걷는 소리나 날개가 스치는 소리를 사운드 디자인으로 강조한 것도 관객이 이 세계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감각적으로 몰입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싶어서였다.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렇다. 이 땅 위에서 사람이든, 아주 작은 생명이든, 모두가 서로의 삶을 위해 조용히 헌신하고 있다는 것. 그 사이엔 높고 낮음도, 위대함과 미미함의 구분도 없다.

 

영화 중반부, 인물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던 감독이 갑자기 개입하여 어린 시인에게 직접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언급되지 않았던 “엄마가 보고 싶지 않느냐”는 감독의 질문은 영화의 흐름을 확연히 뒤바꾸는 계기가 된다. 인물과의 거리 두기를 멈춘 계기나 필요성에 대해 말해 준다면?

어머니의 부재는 그 아이 삶 속에서 조용히 벌어진 균열이었다. 이 질문은 어떤 답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틈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감독’이라는 역할을 유지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 장면은 촬영 계획에 없던 것이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보통 일정한 거리를 두고 피사체에게 더 많은 공간과 자유를 주려고 한다. 하지만 촬영이 계속되면서 유빈에게서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연약함을 보게 되었고, 그런 감정들이 나로 하여금 더 이상 방관자의 자세를 유지할 수 없게 만들었다. 어머니의 부재는 언제나 조용한 빈틈이다. 그 질문은 단지 그 틈을 따라 나온 것이며, 그것을 메우려 하지도 대답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 순간 나는 무언가를 억지로 드러내려 한 것이 아니라 결국은 피할 수 없는 것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어머니와의 이별은 그의 삶 속에 커다란 공백으로 남아 있었고, 그 공백은 영화 속에서도 끝내 직접적으로 다뤄지지 않은 채, 조용히 머물러 있었다. 내가 그 질문을 던진 것은 그 아이를 향한 진심 어린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나 자신의 투영이기도 하다. 아이가 그런 결핍을 어떻게 직면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었고, 또한 내 어린 시절의 어떤 아쉬움을 되묻는 과정이기도 했다.

 

영화는 후반부에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되며 소년이 청소년으로 성장한 시간의 흐름을 보여 준다. 생생해진 이미지는 과거의 흑백 장면들을 더욱 서정적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이런 흑백과 컬러의 대비에 있어 특별히 고려한 점이나 고민한 부분은 무엇인가?

흑백은 나에게 ‘기억의 질감’과도 같다. 꿈 같기도 하고 어린 시절의 파편 같기도 하다. 그것은 간결하고 순수하며, 엄숙하고 어떤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컬러의 등장은 ‘현실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복잡성’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유빈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그의 세계는 더욱 소란스럽고 화려해졌지만 그만큼 더 무거워지기도 했다. 색채는 뜨겁고 강렬하지만, 시적인 감수성은 점차 무대 뒤로 물러나게 된다. 이러한 전환은 일종의 ‘사라짐’에 대한 서사다. 유년 시절의 흑백은 색채로 덮이고, 그 속에 담겨 있던 고요하고 외로운, 그러나 상상력으로 가득했던 순간들 또한 기억 속으로 스며든다. 일종의 ‘영원함’을 상징하는 것이다.

 

영화는 시간과 존재의 속성에 의문을 던지는 시 ‘올웨이즈(Always)’로 시작해, 어린 시절에 대한 작별을 노래하는 시 ‘페어웰(Farewell)’로 끝맺는다. 영화는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시가 여전히 머물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결국 우리 모두가 한때는 훌륭한 시인이었음을 환기시킨다. 하지만 청소년이 된 유빈의 모습에서는 더 이상 시가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어린 시절’과 ‘시’의 관계, 그리고 각각이 지닌 의미가 궁금하다.

어린 시절과 시는 같은 본질을 지닌 두 가지 형태다. 어린 시절은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논리나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직관과 감각, 그리고 상상을 통해 만물을 인식한다. 한 아이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바라볼 때 그는 나무가 말을 걸고 있다고 믿는다. 밤중에 눈을 뜨면 어둠 속 어딘가에 미완성의 노래가 숨어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시’란 바로 그런 방식의 언어다.

시는 현실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는 행위다. 안타깝게도 성장이라는 건 서서히 사라져 가는 과정인데, 우리가 적응을 배우고 침묵을 배우는 과정에서 시는 조금씩 우리 곁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가 시를 버린 것이 아니라 현실이 그의 언어를 지워버린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믿는다. 어린 시절에 썼던 그 시들은 그의 마음속 가장 부드러운 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을 거라고. 사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조용히 일깨워 주는 작업이다. 모든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시를 쓰던 그 아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다만 어른이 되는 길 위에서, 잠시 그 아이를 잊고 있었을 뿐이다.

 

어린 시인 유빈은 언어를 통해 세상을 은유하고, 감독 본인은 그 모습을 영상 언어로 전달한다. 유빈에게 있어 ‘언어’란 어떤 의미였을까? 그리고 당신에게 영상 언어란 그 언어와 같은 울림을 담아내는 방식이었을지 궁금하다.

만약 영화가 없다면 이 시들은 또한 밤하늘의 불꽃놀이처럼 순식간에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가 영상 속에 담기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된다. 현실 속에서 시적인 것들은 종종 이해 받지 못한다. 나에게 영화라는 언어는 본질적으로 ‘탐색’이고, ‘찾기’의 여정이다. 우리는 고독 속에서 삶을 배우고, 그 무게를 받아들이며, 그 감정을 영상에 실어 세상에 내보내려 한다. 그리고 그 감정을 받아 줄 누군가를 찾고 싶어진다. 영화는 결국 표현의 형식일 뿐이다. 우리를 촬영하게 만드는 것은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감정이다. 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찾아가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가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믿는다.

 

 

 

  1. This film is produced by Timelight Films / HandsOn Studio LLC (U.S.A.), in co-production with Springlight Pictures (China), SaNoSi Production (France), and Rustic Pictures Ltd. (Taiwan)